경제

['눈물의 군산' 가보니] "돈 안돌아 못 버티겠다"..손님 끊긴 가게 무더기 공실로

구경우 기자 입력 2017.10.22. 17:47 수정 2017.10.2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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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사 들어섰던 원룸지역 캄캄 "보증금 없어졌지만 살 사람 없어"
인력사무소 "일거리 줄어" 한숨..근로자들 떠나며 구도심 불경기
"고용재난지역 선포·발주 지원을" 싸늘한 민심, 추가대책 목소리 높여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고 한국GM의 군산공장도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군산 경제가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다. 한때 5,000여명의 직원이 연 매출 1조원을 올렸던 군산조선소 도크는 움직이지 않은 1,650톤급 골리앗크레인만 자리를 지킨 채 텅 빈 상태로 방치돼 있다. /군산=구경우·조민규기자
[서울경제] 오식도동에서 5km 떨어진 비응도동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북문은 황량했다. 항구 쪽으로 이어진 도로 옆 인도는 잡초로 뒤덮였다. 2m 높이의 담장 위에 올라서자 축구장 4배 크기인 세계최대 규모의 ‘텅 빈’ 도크가 눈에 들어왔다. 빈 지평선 끝에는 현대중공업의 자존심이었던 골리앗크레인(1,650톤)이 서 있었다. 지난 2010년 지어져 한때 직원이 5,000여명(협력업체 포함), 연 매출 1조원을 훌쩍 넘던 군산조선소는 세계 조선업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올 7월 가동이 중단됐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남은 인원은 유지보수를 담당할 인력 50여명 정도”라고 말했다.

군산자유무역지대 현대중공업에서 7㎞가량 떨어진 소룡동 한국GM 공장. 오후6시 퇴근 시간인데도 문을 나서는 차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공장 관계자는 “물량이 떨어져 주 2회만 생산한다”며 “오늘은 생산일정이 없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1997년 대우차 시절 세워진 이 공장은 2002년 한국GM이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쉐보레’로 브랜드를 바꾼 2011년에는 주말은 물론 명절 때도 공장을 꽉 채워 돌릴 만큼 바빴다. 하지만 이젠 수출과 내수 모두 부진해 생산 가동률이 30%대로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한국GM의 철수설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해가 지자 협력업체들이 들어섰던 오식도동 원룸 지역은 암흑 단지로 변했다. 인근 D공인중개사 사장은 “보증금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며 “전기와 수도료, 월세 20만원만 내라고 해도 살 사람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만2,000명 수준이었던 전북 지역 실업자는 현대중공업이 가동중단을 준비하던 올 3월 3만5,000명까지 불어났다. 같은 기간 1.3%였던 실업률은 3.8%까지 수직 상승했다.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고 한국GM의 군산공장도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군산 경제가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다. 군산시 오식도동의 한 협력업체 공장은 정문이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군산=구경우·조민규기자
군산 경제의 40~50%를 차지하던 현대중공업과 한국GM이 흔들리자 자유무역지대에서 12㎞ 떨어진 구도심도 불경기의 쓰나미에 휩쓸렸다. 유명한 빵집이 있는 중앙로 사거리 상가 2층은 거의 비었다. 중앙로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A씨는 “노가다로라도 돈을 벌어야 고기에 술이라도 한잔하는데 (돈이) 순환이 안 되니 버틸 수가 없다”며 “그나마 신도시인 수송동 쪽은 좀 낫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찾아간 수송동도 상가가 무더기로 공실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설렁탕집을 운영하는 B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1인당 5만원선 코스를 팔던 킹크랩 집을 운영했다”며 “하지만 연말부터 사람이 뚝 끊겨 밥값이 싼 설렁탕집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호남지방통계청에 따르면 9월 전북 지역 자영업자는 24만5,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만4,000명(-9%) 줄었다. 직원을 둔 자영업자는 4만3,000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지난해보다 1만2,000명(-21.7%) 감소했다. 사장 혼자 또는 가족원을 두고 근근이 버티고 있다는 얘기다.

인력사무소도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흥남동에서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C씨는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인력을 보낼 일거리도 확 줄어들었다”고 푸념했다. 하지만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인력시장에 오는 사람은 늘지 않았다”는 말이 역설적이었다. 그는 “페이(월급)를 많이 받던 조선소·자동차 사람들에게 인력사무소 일은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한다”며 “기술 있는 사람은 딴 데로 떠나고 남은 사람들도 경기가 개선될 때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북 지역에서 구직급여를 신청한 사람은 지난해 3·4분기 6,157명이었는데 현대중공업이 가동중단을 내비치던 지난해 4·4분기 7,190건, 올해 1·4분기는 1만1,058건으로 급증했다.

인력사무소 앞 흥남동 주민센터 건물에는 ‘50만, 국제관광·기업도시 군산건설’ 구호가 크게 걸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50만 기업도시’의 꿈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다. 지난해 상반기 28만명을 향해가던 군산 인구는 9월 27만5,000명선으로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 5,000여명에 달하던 군산조선소 직영·협력업체 직원이 가동중단으로 500여명으로 줄어든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군산을 떠난 탓이다.

군산조선소 가동 재개를 공약으로 걸었던 현 정부를 향한 민심은 싸늘하다. 이낙연 총리가 7월 지원 대책을 내놓았지만 지역 의원들은 “고용재난지역을 선포해달라”며 추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인력사무소에서 만난 D씨는 “우리도 정부가 사기업에 이래라저래라 못하는 것은 안다”며 “하지만 관급 발주를 하든 물량을 이쪽으로 주든지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산이 지역구인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은 “현대중공업이 군산조선소를 중단해 1년간 아낄 수 있는 돈은 461억원, 국가가 지원해주는 돈은 700억원 수준”이라며 “향후 발주가 나오면 군산조선소로 갈 수 있도록 (정책의) 종류와 강도를 모두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산=구경우·조민규 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