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넘버원"..게임·영화 등에 확산되는 '중국인 비하'

최규진 2017. 10. 2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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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채팅 등에서 중국인 조롱 유행어 돼
중국인들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망언과 같아"
최근 영화 흥행코드 '중국인 비하'도 논란

“타이완 넘버 원! 차이나 넘버 나인틴!”(대만이 1등, 중국은 19등!)

직장인 김모(31)는 최근 친구들과 함께 인기 온라인 슈팅게임 베틀그라운드를 접속했다가 깜짝 놀랐다. 한국인 게이머들이 중국인 게이머의 캐릭터를 공격하면서 음성채팅을 통해 노골적으로 대만을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김씨의 친구들은 중국인을 조롱하는 ‘마법의 단어’라고 표현했다. 다른 게이머들도 ‘사드 넘버 원’, ‘시진핑 XX’ 등 외교적 감정이 섞인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인터넷 게임에서 중국인 유저들에게 음성채팅으로 '타이완 넘버 원' 등의 비하 발언을 하는 한국인 게이머들이 늘고 있다. 중국인들이 불쾌해 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유튜브 중계도 있다. 유튜브 게임 중계에서 음성채팅 내용을 자막으로 편집해 보여주는 화면. [유튜브 캡처]
김씨는 “음성채팅으로 그런 말을 듣고 난 중국인 게이머들이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욕하지만, 한국인 게이머들은 이런 표현을 쓰는데 전혀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다른 국가 게이머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지만 한국 게이머들이 유독 중국인을 발견하면 시비를 거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 중국인 유저가 참여하는 온라인 게임 등에서 반중 감정을 드러내는 말들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타이완 넘버 원’은 ‘차이나 넘버 원’으로 표현되는 중국의 중화사상을 비꼬는 말이다.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정치적 입장을 부정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지난해 유튜브에서 한 미국인 게이머가 처음 사용해 쓰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터넷 BJ들이 한국인 시청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중국인들의 불쾌해하는 반응을 생중계하면서 이를 시청한 게이머들이 따라 쓰고 있다.

미국의 유튜버는 게임을 중계하면서 '타이완 넘버 원'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지난해 대만 언론에서는 그를 인터뷰했다. [유튜브 캡처]
올해 초부터 인터넷 포털 등에서 '반중 유행어’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의 사드 보복과 미세먼지 등의 환경 문제로 국내에서 반중 감정이 높아지면서다. 일부 네티즌들은 중국 관련 기사가 올라오면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욕설을 하거나 ‘타이완 넘버 원’ 등의 댓글을 달았다. 여기에 중국인 네티즌들이 불쾌감을 드러내면 ‘티베트 프리’ ‘홍콩 프리’ 등의 표현으로 응수하기도 했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이같은 유행에 대해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국의 애국심이나 외교적 문제를 건드려 한국에 우호적인 중국인들마저 반감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대림동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는 중국인 장모(44·여)씨는 “굳이 비유하자면 타이완 넘버원 같은 표현들은 중국인들에게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망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동포한마음회 등 국내 중국동포 단체는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앞에서 영화 '청년경찰'의 상영 중단과 사과를 요구했다. [연합뉴스]
인터넷 뿐 아니라 대중적인 문화 현상에서도 중국 비하가 ‘흥행코드’ 로까지 자리 잡는 추세다. 국내 중국동포들 사이에서는 최근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과 ‘범죄도시’에서 극중 중국인 동포(조선족)가 범죄자로 나오는 것을 묹제 삼기도 했다. 지난 11일 중국동포 단체 30여 곳은 영화 제작사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반중 감정이 대중문화에서 무비판적으로 확산되는 일을 경계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터넷이나 게임, 영화 등 다양한 매체에서 빠르게 번지다 보면 향후 겉잡을 수 없는 외교 문제로 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응철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국내에 쌓인 사회적 문제들이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방식으로 표출되는 과정에서 대중매체 등을 통해 그 대상이 중국인으로 전가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만큼 중국을 무시하는 나라가 없다. 중국과 90년대 수교 이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우리 사회가 이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규진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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