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안쓰는 스타트업, 조심합시다

백철 기자 2017. 10. 2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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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홀에서 열린 ‘강소·벤처·스타트업, 청년매칭 2016년 잡페어‘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근로계약서 없는 경우 많아… 무급으로 근무하다 퇴사하기도
디자이너 김현우씨는 추석 연휴 직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개막장 스타트업에서 2년 반 동안 상식 초월’이라는 제목의 긴 글 한 편을 올렸다. 자신이 올해 5월까지 2년 반가량 다닌 서울 광진구의 스타트업 A사의 갑질을 폭로하는 글이었다. 김씨는 신모 대표로부터 ‘지분’을 약속받은 대신 무급으로 일했다.(결국 지분도 받지 못했다) 새벽에도 대표의 지시연락에 따라 일을 해야 했다. 또한 김씨는 회사생활 중 상당 기간을 회사에서 먹고 자며 하루 13시간 이상을 일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글을 올린 이후 기자와 몇 차례 만나 돈 때문에 회사를 떠난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도 월급도 안 받고 일하는데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저는 회사에 있을 땐 A사가 ‘내 회사’라고 생각했기에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A사를 비판하면서도 “회사의 취지는 참 좋다”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A사가 수년간 준비해온 ‘제품’은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다. A사는 자신들이 소유한 건국대학교 인근의 카페에서 아티스트들이 공연할 장소도 제공했다.

김씨가 A사를 ‘내 회사’로 여기지 않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자신이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게 아니라 신 대표가 통제하는 사회에 갇혀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는 “신 대표는 평소 직원들이 취미생활이나 연애를 하는 걸 좋게 보지 않았다. 대표도 회사에서 숙식하면서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저도 믿고 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표는 몰래 여자친구를 만나고 다니더라”고 말했다.

신 대표와 회사에 대한 김씨의 믿음은 깨졌고, 그는 지난 2년 반 동안의 노동을 보상받기 위해 자신과 같이 A사를 나온 동료 2명과 함께 서울동부지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A사를 그만둔 이 중에는 주 6일 하루 12시간 노동, 월급 50만원이라는 초법적인 근로계약서를 쓴 이도 있다. 하지만 김씨를 비롯한 이들은 대부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김씨는 “그나마 저는 제가 일을 했다는 증거들을 충분히 모았기에 진정서를 낼 수 있었지만, 증거가 없어서 진정에 참여하지 못한 동료들도 있다”고 말했다.

A사의 신 대표는 “회사의 정리된 입장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가 말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노동청에 진정이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노동청이 판단할 문제다. 저는 하루빨리 노동청에서 피해자들과 만남을 갖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A사처럼 2년 넘게 무급으로 사람을 쓰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은 매우 특이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게 스타트업 업계 종사자들의 증언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경험기’를 찾아보면 해괴한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년 반 정도 스타트업 업체에서 일하고 퇴사한 박진기씨(가명)도 ‘지분’에 관한 톡특한 경험을 했다. 박씨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 채용할 때 연봉 외에 스톡옵션을 줄테니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해서 다같이 성공하자는 공고를 내건다. 저도 공고문을 볼 때 스톡옵션의 의미를 잘 몰랐고, 스타트업을 생각하는 분 중에서도 스톡옵션에 대해 자세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 6일 하루 12시간 노동에 월급 50만원 입사 이후 박씨는 스타트업 대표로부터 스톡옵션을 주겠다는 약속을 들었다. 연봉계약서는 입사와 동시에 작성했지만 스톡옵션 관련한 계약서를 쓰는 데 8개월이 걸렸다. 알고보니 그 회사에서 스톡옵션 계약서를 실제 작성한 사람은 박씨가 유일했다. 계약서에 제시된 스톡옵션의 양도 전체 주식의 1%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액수였다.

박씨는 “정말 운이 좋아서 3년 안에 회사 가치가 100억원이 되었다고 치면 1년에 1000만원 정도를 스톡옵션으로 받을 수 있더라. 스타트업에 들어갈 때 스톡옵션을 핑계로 연봉을 깎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3년 내에 이익을 내기 어렵다. 스톡옵션을 보고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꿈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9월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일대에서 열린 디캠프 스타트업 거리축제 ‘IF 2017’ 현장. / 연합뉴스

여러 피해자들의 증언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지분’이다. 고용인-피고용인 관계가 아니라 동업자 관계일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상으로 문제가 없다. A사의 경우 실제 피해자들에게 지분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들을 상대로 ‘동업자 관계’를 주장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겉으로는 동업자처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직원으로 부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로켓펀치 스타트업 기업 자문을 맡고 있는 최재원 노무사(노무법인 동인)는 “두 사람이 같은 지분으로 카페를 차렸을 경우 두 사람 다 사장이며,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지분을 공유하는 관계이더라도 실질적으로 고용관계인지 아닌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 노무사는 “업무지시를 받는 관계인지, 출퇴근 장소가 정해져 있는지, 기본급을 받는지 등등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10여가지가 있다”며 “스타트업 업체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건으로 상담을 원하는 분들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한편,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스톡옵션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인 ㄱ씨는 “스톡옵션은 적은 급여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자체가 미미한 수준이고, 기껏 받은 투자금도 인건비로 돌리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 그렇기에 적은 양이지만 멤버들과 지분을 나눠야 동기부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ㄱ씨는 “스톡옵션을 주지 않는 회사라면 최소한 중소기업 수준으로는 급여를 맞춰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ㄱ씨는 스타트업 자체가 일종의 ‘비정상적인 단체’인 면이 있기 때문에, 기존 근로기준법의 시각으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소수의 초창기 멤버들이 주당 100시간 이상을 일하면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게 스타트업”이라며 “드문 경우지만 처음부터 제품이 환영을 받으면 미친듯이 계속 일하는 것이고, 문제는 제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없는 건 아닌데 애매한 경우”라고 말했다. ㄱ씨는 “애매한 경우에 들어선 스타트업이라면 장기전에 돌입해야 한다. 처음처럼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하는 체제로는 오래 버틸 수가 없기 때문에 제 회사도 일주일 30시간만 근무하도록 명문화했다”고 말했다.

또한 ㄱ씨는 스타트업 초반의 불안정성이 계약서를 잘 쓰지 않는 관행으로 연결되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ㄱ씨는 “스타트업 초창기에는 제품이 출시될 때까지 회사 수익이 아예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저임금을 지분으로 메우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중간에 멤버가 회사를 나가 버렸을 경우 지분 회수가 애매해지는 경우가 있다 보니 창업자가 지분 관련한 계약서를 쓰기 꺼려하는 면도 있다. 오히려 지분을 준다고 말만 하고 안 주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ㄱ씨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근로기준법은 지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동업자가 아닌 경우라면 직원을 뽑을 때는 지분 등 계약서를 명확하게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20대에 창업하는 만큼 법률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30대 초반의 스타트업 대표 ㄴ씨는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해서 의도치 않게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한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ㄴ씨는 여러 스타트업 멘토링 교육을 통해 자신도 미처 몰랐던 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ㄴ씨는 “창업을 하고 나서야 멘토링 교육에 참여했다. 동업자끼리도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저도 교육을 받고 나서야 동업자와 동업계약서를 작성했다”며 “저는 큰 문제 없이 넘어갔지만 만약 동업자 쪽에서 자신을 피고용이라고 주장한다면 제가 의도치 않게 법을 어긴 사람이 될 뻔했다”고 말했다.

최재원 노무사는 “보통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아서 운영하는데 1년, 2년 시간이 지날수록 직원도 늘어나고 그만큼 준법사항도 늘어난다”며 “대기업처럼 법률적 검토를 해줄 수 있는 부서가 따로 없을 확률이 높고, 노동부의 표준 근로계약서도 실제 회사 형태랑 맞지 않을 경우가 있다. 그런 회사에서 많이 상담을 하러 오시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경계해야 할 스타트업의 유형들 한편 스타트업 창업이나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이 일단 스타트업 관련 커뮤니티에서 어느 정도 활동해 정보를 듣길 권하는 경우도 있다. 스타트업 경영연구소를 운영하는 장 이사(필명)는 “저희처럼 스타트업을 이미 운영하는 분이나 관련 법률지식이 있는 분들이 있는 커뮤니티가 몇 군데 있다”며 “스타트업에 취업하려는 이들의 경우 특정 회사를 문의했을 때 그 곳이 어떤 회사인지도 미리 알 수 있고,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도 법률적으로 모르는 부분에 대해 미리 노무사, 변호사 등의 자문을 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 이사는 “A사처럼 극단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최소한의 근로기준법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안다. 구직자들은 스타트업에 ‘하이리스크-하이리턴’(고위험-고수익)이라는 특징이 있다는 점을 미리 생각하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취업 경험자인 박진기씨는 스타트업 대표들 중 몇 가지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은 월급을 미루고 이유를 말하지 않는 대표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잠시 월급이 밀리는 일은 있을 수 있더라도 직원들에게 미리 얘기도 안 해주는 경우다. 또 다른 유형은 직원들에게 비전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는 대표다. 이런 대표들은 ‘성공하면 주식을 나눠주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그 외에도 박씨는 사업체를 여러 개 꾸리거나 ‘왜요’라는 질문을 싫어하는 대표들도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박씨는 “뉴스나 SNS를 보면 스타트업의 좋은 점만 나열하는 글들이 너무 많다. 나와 같은 생각도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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