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세대는 이렇게 '자기 시대'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정민경 기자 2017. 10. 2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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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김재환 감독, “흑과 백으로 나뉘어진 분위기에 아무도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 하려했다”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김재환 감독은 MBC 시사교양국 PD 출신으로 최승호 감독의 영화 ‘자백’을 프로듀싱하고, 영화 ‘트루맛쇼’, ‘MB의 추억’으로 언론 권력과 정치 권력을 고발하거나 비판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2017년 그가 ‘미스 프레지던트’를 만든다고 했을 때, 대부분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거라 상상했다. 하지만 ‘미스 프레지던트’는 그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영화다.

‘미스 프레지던트’의 주인공은 ‘박사모’ 혹은 소위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어르신들이다. 주인공은 아침마다 의관을 차려입고 집에 걸어놓은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에 절을 한다. 영화 중반부까지는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으나 영화는 일관적으로 그들을 보여준다. ‘박사모’들이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고 탄핵 당시 눈물짓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중간에 자리를 일어나는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영화 내내 친박 집회의 장면들,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에 절하는 사람들, 육영수 여사의 숭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나오고 새마을 노래 등 누군가는 불편해할 모습이 계속해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포스터.
감독은 도대체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영화 상영이 끝나고 김재환 감독에게 물었다. 미디어오늘과 김재환 감독의 인터뷰는 20일 ‘미스 프레지던트’ 시사회가 끝나고 진행됐다.

-이 영화를 만든 의도가 무엇인가.

“청산의 계절이다. 새 정부가 시작됐다. ‘미스 프레지던트’ 같은 영화는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흑과 백으로 나뉘어진 분위기에 아무도 듣고 싶지 않아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그저 ‘당신은 틀렸어요’,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대한민국이 이렇게 됐어요’ 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런 태도는 대화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첫 단계는 우선 그분들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할아버지나 아버지, 어머니 세대를 이해하게 된다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태극기 집회를 가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어른에 대해 ‘저 사람이 적폐야’라고 과격하게 쏟아내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누가 하나쯤은 가운데 서서 다른 목소리를 전달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봤다.”

▲ 김재환 감독. 사진 제공= 김재환 감독 측
-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나는 1988년 대학에 입학했다. 고향은 부산인데 친구들이 방학 때 고향을 다녀오면 꼭 아버지나 친척들과 싸운 이야기를 하더라. 아버지들이 꼭 하는 말들이 있다. 데모하는 친구들 사귀지 마라,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그래도 우리나라가 잘살게 됐다는 말이다. 그러면 친구들은 버럭하고 나오고 다시 서울로 와서 어른들을 욕하는 일들이 많았다. 사실 30년 전과 지금이 전혀 바뀐게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태극기’와 ‘촛불’로 나뉘어 더욱 심해진 것 같다. 그래서 대화의 벽이 생겼다. 30년이나 지났는데 그 벽이 여전한 거다.”

-그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고 싶은 건가.

“누군가는 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비해 더 험해졌고 말도 거칠어졌고. 영화를 보다가 벌떡 일어나 나가는 분들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다고 하면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언론이 박사모를 취재하거나, 극우인사를 취재하는 기사나 기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사모나 극우인사를 취재하면서 그들에게 동화된 것인가.

“그건 아니다. 제가 주인공으로 삼은 분들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극우 인사와는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서는 ‘태극기 집회 나간 사람들’을 다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고 아주 과격적이고 상식 밖의 행동들을 주목해 보도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평범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딱 하나, 박정희와 육영수를 좋아하는 것이 걸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과격하지 않은 평범한 박사모’의 기준은 뭔가.

“첫 번째로 나오는 농부는 평소에도 의관을 입는 유교적 사교를 가진 분이다. 이분은 박정희에 대한 충과 효를 사람의 도리로 여기는 우리 윗세대들의 전통적인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다. 소를 타고 다니기도 한다. 이런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 원하는 백성 상이다. 소처럼 일하는. 아, 이분은 ‘새마을 지도자’ 1기이도 했다.

또 두 번 째 부부는 영화 ‘국제시장’에서 나오는 인물 같은 사람이다. 남편은 처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이 울산 공업단지에서였다고 말한다. 울산 공업단지 기공식에서 박정희 소장을 본 것이다. 그때만 해도 마을에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를 살면서 주변에 굶어죽는 사람이 줄어드는 경험을 한 거다.

그러면서 산업화의 전사로 자신을 호명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거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그분들에게는 그것이 평범한 자신의 삶에 번쩍하는 무언가가 부여된 계기인 셈이다. 이후 중동 사막에 가서 건설노동자가 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었다는 소식도 아랍의 사막에서 듣는다. 진짜 영화 ‘국제시장’의 인물이 현실로 나온 것 같았다.

그 부인은 육영수 여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옛날에는 영화를 보려면 앞에 한 15분 정도 ‘대한 뉴우스’가 상영됐다. 그 포맷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어떤 업적을 하셨다. 한편 육영수 여사는 어떤 업적을 베푸셨다’의 반복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안보와 건설의 상징이라면 육영수 여사는 어머니의 상징이었다. 당시 여성들은 사람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할 정도로 차별을 겪고 있었다. 집안에서도 아들 몰아주기 같은 현상을 겪은 분들이다. 그래서 육영수에게 어떤 ‘완벽한 어머니’에 대한 판타지를 보고 있다. 그냥 자신의 삶에서 박정희 시대가 의미있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극우인사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정말 나쁜 사람들은 이런 평범한 사람들을 그저 ‘표’로 보고, 이용하는 사람들이지, 이런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
-감독의 의도를 들으면 이해가 가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당황할 것 같기도 하다. 관객들의 어떤 반응을 예상하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어르신들의 정서를 잘 모르고 과격하게 배척하기도 한다. 윗세대 분들과의 대화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또 하나는 박정희 세대, 어르신들은 ‘아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최현숙씨의 ‘할배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사람들이 ‘극우’로 부르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정말 인내심있게 들어주더라. 그리고 질문을 하더라. 일차적으로는 들어줘야 질문이 시작된다. 그래서 그냥 일단 이분들의 말을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이전 영화들에서 비판 의식을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으로 이 영화를 만든 것인가.

“우선은 모두가 청산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주변 분들이 보시고 자기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하더라. 영화가 따뜻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한 분은 자기 아버지는 너무나 훌륭한 농부고, 모든 면에서 참 신실한 분인데 박정희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만 말이 안 통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이 문제 때문에 많이 싸웠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아버지 이야기 많이 들어드릴 걸’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 걸 들으면 고맙다.”

▲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에게 어떤 반응을 기대하나.

“연세가 많은 분들 중에는 우는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이 우는 것은 그 시대에 대한 추모의 마음도 있겠지만 내가 지나온 시절 때문에 우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분들 인생은 사실 박정희 시절이 인정받고 의미가 있어야 자신들의 인생도 의미 있는 거다. 자신이 고생한 것, 인생을 바친 것이 의미 있어야 하지 않겠나.

보통 기자들이나 학자들이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을 공포나 트라우마라는 틀로 해석한다. 전쟁의 공포, 기아의 트라우마, 굶어죽는 공포 때문에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한다는 거다. 그런데 정작 그분들 스스로는 자부심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박정희와 함께 국가안보를 지킨 자부심이 있는 거다. 이런 자부심이 없다면 너무 괴로울 수밖에 없다.

박정희나 육영수가 이끌어온 시대에 대한 판타지, 그게 없으면 자신의 험했던 시절에 대한 보상이 없는 거다. 그래서 그분들이 우신다는 반응에 처음에는 걱정을 했지만 자신들의 과거를 눈물로 떠나보내는, 그런 계기라고도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분들이 보기에 ‘자기 시대를 떠나보내는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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