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학교 그만 다닐래"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희동 2017. 10. 2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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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88] 도서관에서 사는 까꿍이

[오마이뉴스 글:이희동, 편집:김준수]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구구단 외우기

"육일은 육, 육이 십이, 육삼 십팔..."

오늘도 우리 집은 시끄럽다. 초등학교 2학년 까꿍이가 드디어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도 지금에야 이렇게 웃고 있지만 10살도 안 된 꼬마가 이해도 잘되지 않는 구구단을 외우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아니나 다를까. 2단부터 5단까지는 그래도 제법 외우던 까꿍이가 6단에 이르자 투덜대며 한마디 한다.

"아빠, 나 학교 그만 다닐래."
"응? 왜? 설마 구구단 6단 때문에?"
"응. 구구단 너무 어려워."

▲ 겨울에는 눈놀이 학교 안 가면 좋겠지?
ⓒ 정가람
헛웃음 밖에 안 나왔다. 구구단 6단에 질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다니. 이래서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고 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고작 구구단 때문에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구구단 외우라고 마냥 아이를 윽박지를 수는 없었다. 사람에 따라 수리능력 발달 시기도 다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모든 2학년에게 구구단을 강요하는 것은 근대교육이 만들어낸 폭력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까꿍이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에이. 까꿍이 너무한다. 고작 구구단 때문에 학교 그만둔다고 하고."
"왜? 안 돼?"
"그럼. 학교 안 다니면 나중에 바보 돼. 그래도 좋아?"
"흠. 그래도 너무 어려운데?"
"아니야.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외울 수 있을 거야. 이제 시작이야. 그 뒤로 수학책을 보면 다 구구단이 필요하거든."

▲ 집중하는 까꿍이 자발적 학습이 최고다
ⓒ 정가람
아이는 이제 시작이라는 아빠 말에 기겁을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아빠와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고 곧이어 6단을 모두 외우게 되었다. 타이머 덕분이었다. 시간을 재면서 기록 경신을 유도하자 아이는 스스로에 대해 경쟁심이 생겼는지 열심히 외우기 시작했고, 녀석은 그렇게 아빠와 구구단 외우기에 재미를 들렸다.

"우와. 아빠 신기해. 구구단이 외워졌어."
"그치? 거봐.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니까. 우리 까꿍이가 누구 딸인데."
"아빠랑 구구단 외우니까 재미있어. 이제 나랑 매일 구구단 공부 같이하자. 선생님이 9단까지 외워 오래."

이후 부녀는 눈만 마주치면 구구단을 읊조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나서, 학교에 갈 때, 저녁에 퇴근한 이후 틈만 나면 아빠는 묻고 딸자식은 답한다. 덕분에 요즘 아빠와 딸자식의 사이는 부쩍 가까워졌다.

까꿍이는 무슨 학원 다녀?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까꿍이가 급하게 불러댔다.

"아빠, 이리 와봐. 빨리."
"응? 왜? 무슨 일인데?"
"자. 봐봐. 짜잔."

▲ 표창장 학교도서관을 잘 이용한다고 상장도 준다
ⓒ 이희동
녀석은 의기양양하게 내게 상장을 보여줬다. 표창장이었다. 내용을 보니 학교도서관과 관련된 것이었다. 요즘에는 학교에서 상장을 잘 안 준다고 하더니 그래도 아예 안 주는 것은 아닌 듯했다.

"우와. 축하해 까꿍아."
"그치? 대단하지? 나 이제 상장 7개다. 많지?"
"그러게. 그런데 넌 왜 이 상을 받았어? 학교도서관에서 어쨌기에?"
"내가 우리 반에서 책도 가장 많이 읽고, 도서관에도 가장 많이 가거든."

그랬다. 까꿍이는 자기네 반에서, 아니 2학년 전체를 통틀어 학교도서관에서 가장 오래 있는 아이로 유명했다. 다니는 학원도 없고, 방과후 학습도 농구 한 과목만 받기 때문인데, 어쨌든 아이는 그 시간에 학교도서관에서 살았고 덕분에 학교도서관 사서와도 제일 친한 아이가 되었다.

집에 와도 딱히 할 일은 없지, 다른 친구들은 모두 학원이다, 방과후 학습이다 바빠 자신과 놀 수도 없지, 그래서 차라리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까꿍이. 녀석은 여름방학에도 집에서 두 남동생이 떠들면서 자신을 못살게 굴자 차라리 학교도서관이 낫겠다며 가방을 챙겨 나가는 아이였다.

▲ 책을 많이 읽는다며 왜 나름대로 반장선거 준비 중
ⓒ 이희동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책과 가까워지는 까꿍이가 부러워서였을까? 어느 날 까꿍이 친구의 학부모 한 명이 아내에게 물었다고 한다.

"까꿍이는 무슨 학원에 다니기에 저렇게 책을 열심히 읽어요?"

사교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다행히 까꿍이는 아직까지 부모에게 무슨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조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엄마, 아빠가 학원을 다니라고 할까 봐 눈치를 본다. 비록 대부분의 친구가 학원을 가서 혼자 도서관에서 놀아도 아직까진 그게 좋은 듯하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비록 학교도서관을 애용한다고는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을 터,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아이의 재능을 살펴본 뒤 그에 맞는 사교육을 시켜야 하는 게 아닌지 헷갈린다. 당장 나만 해도 어렸을 때 태권도, 피아노 등의 학원을 다녔는데 나름대로 효과가 있지 않았던가.

▲ 강에서 노는 까꿍이 산청 경호강에서
ⓒ 이희동
▲ 수영장의 까꿍이 아빠~ 같이 놀자
ⓒ 이희동
따라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을 가는 시간 우리 아이 혼자 놀게 하는 건 그만큼의 굳은 신념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만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공포를 이겨내야 하며, 저 아이도 학원을 다니니 우리 아이도 다녀야 한다는 '죄수 딜레마'도 극복해야 한다. 또한 아이가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발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

물론 나도 언제까지 아이를 이렇게 키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말이야 까꿍이가 어른이 되면 우리 사회도 지금의 일본처럼 오히려 일자리가 남아돌 것이기에 요즘처럼 죽자고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까꿍이가 당장 학교에서 20~30점을 맞고 오면 그때도 아무런 사교육을 시키지 않을지 자신할 수 없다.

다만 그래도 분명한 건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겠다는 것이다. 10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공부는 놀이라는 믿음을 갖고 교육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그러니 까꿍아, 아직까지는 너무 큰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놀기를 바란다. 어릴 때는 노는 게 남는 거고, 결국 나중에는 그것이 네게 가장 큰 자산이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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