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인 이환의가 쓰는 농부 이반의 초록일기] 내가 일궈가는 꿈.. 그것이 미래 농촌의 동력이다

이정우 입력 2017. 10. 2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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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끝 후배 농군들에게 전하는 희망가
직접 심고 수확한 쌀로 지은 밥을 한술 떴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농사짓느라 사람 꼴도 나지 않는 농투성이의 삶이 만만치도 않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어려움을 능히 넘을 만한 즐거움과 울림이 있었기에 아쉬움은 없다… 농업에 미래가 있냐고? 열정과 신화는 만들어 가는것, 농촌으로 오라

지난달 21일은 우리가 충남 홍성에 안착한 지 만 20년이 되는 날이다. 돌이켜보면 엊그제 같은데 무심한 세월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참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다섯 살, 세 살이었던 아이들이 어느덧 스물을 훌쩍 넘겼고, 삼십대 초반이었던 우리 부부도 지천명의 나이를 지났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첫 농사를 시작한 귀농 후배들과 함께 이른 벼를 수확해서 더욱 뜻깊었다. 벼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첫 수확의 기쁨을 알기 어렵다. 직접 심고 수확한 쌀로 지은 밥을 한술 떴을 때의 느꺼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애써 가꾼 텃밭의 채소를 밥상에 올렸을 때의 느낌과는 결이 다른 즐거움이 입에서 온몸으로 퍼진다. 올해는 오랜 가뭄 속에서 어렵사리 키워낸 것들이라 더 귀하고 고맙다.

귀농 첫해, 임대한 열두 마지기 논에 거름을 내려니 경운기는커녕 일륜차도 없어 지게로 몇 번 나르다 보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싶었다. 다행히 집주인이 풀숲에 방치된 낡은 경운기를 갖다 쓰라고 했는데, 하늘이 노래지도록 크랭크 핸들을 돌리고 나서야 시동이 걸렸던 기억도 아련하다. 어찌어찌 수리해서 잘 쓰다가 후배에게 넘기고 중고 트랙터를 장만해 논밭을 가는데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그즈음 농지도 2만4000여㎡로 늘었는데 가능하면 사람 사지 않고 유기농으로 지으려다 보니 이후 10여년은 소처럼 일만 하던 기간이었다. 영농 의지와 열정도 최고조에 달해 매사 거침이 없었다.

이런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어느 회보에 올리자 국내 유기농의 대부라 할 만한 분이 인편으로 격려금 100만원을 보내주셨고, 몇 년 전에는 오랜 기간 후배들을 돌본 공로를 인정받아 큰 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다. 이제는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 외에 귀농지원센터장이나 담당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하지만 제일 즐거운 순간은 예나 지금이나 마음 맞는 선후배들과 논밭에서 어울릴 때다.

어린이들과 숲 체험을 진행하는 필자(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가뭄으로 우두둑 말라버린 논에 물을 대는 모습. 너무 감격해 기념촬영을 했다.
#농촌의 불문율을 깨는 기분 좋은 파격

논둑을 깎을 때 시골의 불문율을 깨고 인접한 전·현직 이장님의 둑을 바닥까지 깔끔하게 깎은 것이나, 상여를 지지하는 장강채나 목관을 재활용한 것은 아직도 가까운 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나는 동네와 지역에서 별종에 가깝다. 차량의 엔진 소리나 트랙터 소리만 들어도 멀리서부터 내가 오는 걸 알아차린다는 동네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통틀어서 내가 다른 이들에게 부정적인 것보다 좋은 쪽의 독특한 사람으로 각인된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기간 누군가에게 정년이나 퇴직 등 삶의 전환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그이를 주인공으로 조명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를테면 공로패에 흔히 볼 수 없는 구체적이고도 특별한 문구를 담는다거나 퇴임식 격려사에 그이의 행보와 자취를 맛깔나게 엮어내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배가 있다면 주저없이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예컨대 어떤 이유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이라면 되도록 밖으로 끌어내려 애썼고, 직장이 필요한 이에겐 일자리를 안내하고, 무언가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는 직접 돕거나 다른 누군가가 다가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가진 것이 많지 않으니 돈으로 돕기는 어렵고 대신 돈 벌 기회를 알려주거나 적게 들어가도록 안내하는 식이었다.

#전설과 신화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곳 홍성에는 일상에서 참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어우러진다. 어떤 이는 자립에 방해가 된다며 행정의 지원을 마다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화석에너지를 쓰지 않겠다며 부러 전기와 수도가 없는 집을 얻은 예도 있다. 후배 중 몇은 집을 지을 때 기초에도 시멘트를 쓰지 않는가 하면 차를 두고도 엄동설한에 얼어붙은 도로를 자전거로 조심조심 오가는 청년도 가까이서 지켜봤다. 심지어 결혼식 피로연이나 상가에서 자기 수저와 젓가락을 가져와 쓰는 이도 만났다. 나 또한 ‘경축 농부탄생’이란 제하의 현수막을 걸어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 빈번히 일어나는 지역의 움직임에 동참하였다.

도시적 프레임으로 보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 홍성에서 종종 벌어지는 것은 왜일까? 내 나름의 진단으로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자꾸 더해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들을 만나보면 튀거나 돋보이려는 게 아니라 대개 분명한 주관과 가치관으로 더디지만 조용한 변화를 끌어내려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곳에선 주방용 세제 하나를 사려 해도 합성인지 재활용품인지 한 번 더 고민하게 된다. 아는 이들 중에는 틀림없이 방문 때에 우리 집 세제를 눈여겨보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생활이 이럴진대 농사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후배는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실제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지역의 농민들과 대부분의 선배가 친환경농업을 하고 있어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이 있단다. 그때마다 나는 “주류와는 다른 삶을 살러 왔으니 한 번 동참해보라”고 권유하지만 역시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그래도 쉽고 편한 길을 마다하고 마음의 농업, 혹은 수도자의 농법이라는 유기농 대열에 합류한 후배들이 미덥고도 자랑스럽다.

어떤 이들은 “유기농은 다 가짜”라는 극단적 표현을 서슴없이 하지만 우리 지역에서 딱 한 달만 살아보면 생각이 180도 달라지리라 믿는다. 특히 올 전반기에는 극심한 가뭄에 따른 물 부족으로 오리와 우렁이가 제 역할을 못 해 논을 매는 농부들이 예년보다 몇 배나 늘었다. 우리 논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번이면 끝날 피사리를 벌써 세 번이나 했는데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떤 논들은 아예 피가 반이다. 왜 그 논의 주인이라고 벼의 수확량을 제일 크게 갉아먹는 피를 잡으려 하지 않았겠는가.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참담한 심경일 것이다.

올해는 어찌 수확한다지만 정작 더 걱정스러운 것은 내년 이후다. 보나 마나 벼를 심은 뒤 며칠이면 논바닥이 뵈지 않을 정도로 어린 피가 올라올 테니 말이다. 새삼 십수년 전 생협 소비자들과 어울림 한마당에서 낭독했던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때 필자는 이렇게 썼다. ‘비록 저희 논들이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여러분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유기농을 고수하겠다는 중의적 표현에 참석한 이들이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서투른 솜씨지만 농장 벽화 그리기에 도전한 우리 부부.
#내 맘대로 사는 즐거움이 삶의 동력이다

분명 도시와 비교하면 수입도 변변치 않고 농사짓느라 사람 꼴도 나지 않는 농투성이의 삶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우리 식구에게는 어려움을 능히 넘을 만한 즐거움과 울림들이 있었기에 조금 덜 벌어도, 태가 나지 않아도 아쉬움은 없다. 지금 사는 집도 누군가에게 열쇠를 건네받은 것이 아니라 내 맘대로 지었기에 더 애착이 가고, 밭을 어떻게 디자인하든 간섭하는 이가 없어 해바라기꽃 모양의 텃밭도 7년째 유지하고 있다. 요컨대 이 땅의 선배 농군들이 그래했듯이 농부로 변신한 나와 동료들 역시 불가침의 여유를 온전히 누리고 있다.

시골살이가 좀 고달파도 참 재미있는 것임을 올해 한 후배의 자연재배 논에서도 확인했다. 수년 동안 벼가 아니라 잡초가 주인 노릇 한 후배의 논에서 상쾌한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힘겨워서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이어졌던 공동경작 논이 올해는 마치 농작 공기관의 시험재배지처럼 갖가지 토종 벼들이 시위하듯 풍작을 이뤘다. 논 옆을 지나가면서 으레 ‘논을 망쳤다’며 혀를 차던 어르신들이 지금은 신기하다며 부러 구경하러 오신단다. 내년에는 또 후배의 논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패기와 끈기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살다 보니 이런 유쾌한 일이 다 있구나.

귀농 교육을 하며 도시민과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물어왔던 질문 하나. “우리 농업에 미래가 있습니까?”

나는 농학자도 미래학자도 아니기에 다음 답변으로 대신하려 한다. 농업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여, 농촌으로 오라!

그간 부족한 글발과 함께해주신 세계일보 독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귀농인 이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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