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스페셜 - 우주 이야기] (33) 높이되 새는 곳 막아라…우주 발사체 엔진의 ‘두얼굴’ 압력

황계식 2017. 10. 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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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페트병에 일정 정도의 물을 넣고 공기를 넣어 압축하면 페트병 안의 공기 밀도가 높아진다. 이때 한순간에 병의 마개를 열면 압력이 물을 밀어내면서 페트병이 빠르게 날아간다. 학교나 과학 체험행사에서 영국 과학자 아이작 뉴턴의 제3운동 법칙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배울 때 자주 등장하는 물 로켓이다.
물 로켓에서 압축된 공기는 에너지원이 되고, 물은 페트병을 날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물을 채우는 이유는 페트병에 공기만 있을 경우 마치 공기만 들어간 풍선처럼 큰 힘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 로켓에서는 기체에 비해 밀도가 훨씬 큰 물을 밀어내도록 하여 동일한 압력으로도 ‘작용’하는 힘을 세게 할 수 있고, 이때 그 ‘반작용’으로 페트병은 힘차게 날아가게 된다.

발사체와 탐사선 등을 우주로 보내려면 이처럼 엄청난 압력이 분출되어야 한다. 사진은 미국 우주 왕복선 ‘애틀란티스’호의 발사 장면. 출처=픽사베이
◆풍선·압력밥솥·로켓에 숨겨진 압력의 비밀

우주 발사체도 원리는 같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엄청난 압력의 배기 가스를 분출하고 그 힘으로 지구 밖 우주로 날아가게 된다. 물 로켓에서는 물이 로켓을 앞으로 밀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우주 로켓에서는 연료와 산화제를 섞은 추진제를 연소실에서 태우고 이때 생기는 높은 온도와 압력을 가진 배기 가스가 이 역할을 맡는다. 압력이 있어야 발사체가 우주로 날아갈 수 있다. 그것도 엄청난 압력이 필요하다.

매우 높은 압력은 발사체를 우주로 날려 보내기도 하지만,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발사체는 아주 큰 압력을 만들어야 하는 동시에 극미량의 압력도 새지 않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마치 압력밥솥처럼 말이다. 압력밥솥 안의 압력은 내부의 물이 끓으면서 생기는 수증기로 만들어진다. 온도를 높여 물을 끓이고 여기서 발생한 수증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해서 얻은 압력으로 맛있는 밥을 빨리 지을 수 있다. 관건은 높아진 압력을 유지하는 것과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압력밥솥에서는 압력이 새지 않도록 이음매로 고무나 실리콘이 이용되는 제품이 많다. 반면 뚜껑 윗부분에는 증기가 빠져나갈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둔다. 압력이 커져 증기의 힘이 세지면 마개를 밀어 올려 증기가 빠져나가고, 압력이 떨어지면 다시 마개가 닫혀 압력이 올라가는 과정을 거듭한다. 압력솥에서 나는 ‘칙칙’ 소리는 이 과정에서 나온다. 초기 압력밥솥은 터지는, 즉 뚜껑이 날아 올라가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압력이 너무 높아진 상태에서 억지로 뚜껑을 열거나 구멍에 이물질이 끼어 압력이 빠져나가지 못했을 때 사고가 나는 것이다.

1986년 1월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 당시 모습. 압력 제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사고였다. 출처=미국항공우주국(NASA)
압력의 위력과 아주 미세한 압력이 얼마나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86년 1월28일 미국의 우주 왕복선 ‘챌린지’호가 발사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한다. 현장에서 또는 TV 생중계로 발사 장면을 지켜보던 이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발사 순간의 환호가 1분여 만에 비명으로 바뀌었다. 챌린지호 폭발은 승무원 7명 전원이 숨지면서 인류의 우주 도전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고로 기록된다.

오랜 조사 끝에 이 폭발 사고의 원인은 바로 고무 오링(O-ring)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고무 오링은 우주 왕복선의 고체 추진제 부스터가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고압의 배기 가스가 새지 않도록 접합과 압력 유지의 역할을 담당하는 부품이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서 고무가 얼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서 사고가 비롯된 것이다. 조사 결과 압력이 새면서 폭발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압력을 견뎌야 하는 우주 발사체

우주 발사체와 압력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대기권 밖으로 로켓을 쏘아 보내려면 엄청난 속도와 힘이 필요하다. 제1우주속도(지구에 추락하지 않고 궤도를 돌 수 있는 최소한의 속도)는 초속 7.9㎞, 제2우주속도(지구궤도를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속도)는 무려 초속 11.2㎞에 달한다. 이런 속도와 힘을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압력으로 배기 가스를 분출해야 한다.

압력이 높을수록 가스를 ‘힘차게’ 분출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추진제(연료+산화제)를 적절한 압력으로 연소기로 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압력을 견디기 위해서는 탱크가 그만큼 튼튼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두껍게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무게가 더 나가게 된다. 

우주 로켓 제작은 ‘무게와의 싸움’이다. 숨어있는 단 몇 g이라도 줄이기 위한 고통스러운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높은 압력을 견디기 위해 추진제 탱크를 무조건 두껍고 튼튼하게만 만들 수는 없다.

◆압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

우주 발사체의 엔진은 이처럼 추진제인 연료와 산화제를 어떤 방식으로 연소기로 보내느냐에 따라 크게 가압식과 터보펌프식으로 나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지난 2002년 개발한 과학 로켓 3호(KSR-Ⅲ)가 대표적인 가압식 액체로켓이다. 이 로켓은 연료 탱크와 산화제 탱크 위에 별도의 가압장치를 장착해 연료와 산화제를 적절한 비율과 압력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구동한다. 구조는 간단하지만, 추진제 탱크에 별도의 가압장치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무거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터보펌프식 로켓은 이와 다르다. 연료 탱크와 산화제 탱크에서 연소기로 연결되는 부위에 터보펌프를 장착해 압력을 높여주는 방식이다. 터보펌프는 발사체의 에너지원인 연료와 산화제에 압력을 가해 연소실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사람으로 치면 심장에 해당한다고 해서 ‘발사체의 심장’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압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된다.

터보펌프식 로켓은 연소기의 압력을 크게 높이면서도 추진제 탱크를 얇고 가볍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다시 가스 발생기 사이클(개방형) 방식과 다단연소 사이클(폐쇄형) 방식으로 나뉜다. 터보펌프를 작동하려면 주연소기 외에도 별도의 작은 연소기(예연소기, 혹은 가스 발생기)가 필요하다. 이 예연소기에서 발생하는 배기 가스를 외부에 배출하는 방식이 개방형 가스 발생기 사이클이고, 이를 다시 주연소기로 보내 재사용하는 방식이 폐쇄형 다단연소 사이클이다.

한국형발사체의 연소시험 모습. 결국 얼마나 높은 압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느냐가 시험의 핵심이다.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발사체(KSLV-Ⅱ)의 엔진은 가스 발생기 사이클 방식이다. 항우연은 효율이 우수한 다단연소 사이클 방식의 엔진에 필요한 핵심 기술의 개발을 마친 상태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의 발사체 엔진을 연구하고 도입하는 것 역시 효율이 좋은, 다시 말해 같은 분량(무게)의 연료로 더 높은 압력을 발생시키는 기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엔진 방식에 따라 압력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가압식 로켓은 연소기의 압력이 10~50bar이고, 터보펌프식은 개방형 가스 발생기 사이클 엔진에서는 100bar 안팎, 폐쇄형 다단연소 사이클 엔진에서는 200~300bar에 각각 달한다. 또 개방형은 예연소기와 주연소기의 압력에 차이가 거의 없지만, 폐쇄형은 예연소기의 압력이 주연소기의 2배에 달한다.

◆압력을 높이는 이유는 “더 힘차게, 더 가볍게”

이처럼 발사체 엔진에서 압력을 높이는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단순하다. ‘더 힘차게’ 배기 가스를 배출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운동 에너지를 크게 하고자 하는 것인데, 발사체 엔진에서는 터보펌프가 이와 관련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압력을 높이는 또 다른 이유는 엔진의 무게가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압력을 높이면 무조건 무거워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배관과 펌프, 연소기 등 부품의 벽 두께가 두꺼워지지만 가장 큰 덩치를 차지하는 주연소기의 크기가 크게 줄어든다. 배관 등은 벽이 두꺼워졌지만 주연소기가 작아지면 배치할 배관의 길이가 짧아지니 오히려 관련 부품의 무게가 줄어들 수 있다.

필요하다면 압력을 무조건 크게 높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고압으로 만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적정한 압력 이상에서는 무게감소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거나 오히려 반대로 덜하게 될 것이고, 또 부품이 지나치게 작아지면 오히려 제작이 어려운 탓이다. 어떤 사이클 엔진으로 할 것인지, 엔진 추력은 어느 정도로 만들 것인지에 따라 선정할 수 있는 적정한 압력범위가 결정된다.

또 우주 발사체는 배기 가스를 배출시켜 하늘로 향하게 할 때만 압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발사체에 처음 시동을 거는 역할을 하는 파이로 시동기(파이로 스타터·Pyro Starter)가 있는데, 이 역시 점화기에 불을 붙여 짧은 시간 동안 고압의 가스를 분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의 에어백이나 비행기의 산소 마스크도 이와 비슷한 원리다. 사고가 나서 충격이 가해졌을 때 에어백이 터지는 것도 순간적으로 압력이 가해진 데 따른 결과이다. 비상 상황에서 비행기의 객실 천장에서 산소 마스크가 떨어지려면 역시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에는 별도의 산소 탱크가 없다. 대신 고체로 된 산소 발생기가 있다. 그래서 충격이 가해지거나 조종석에서 버튼을 누르면 순간적으로 이것이 터져 압력을 발생시키는 원리다.

◆발사체 개발은 압력과의 끝없는 사투

앞서 챌린저호 폭발 사고에서 살펴본 것처럼 발사체의 엔진에서 압력은 우주로 날아가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챌린저호뿐 아니라 발사 당시 문제가 생긴 우주 발사체의 상당수는 압력 계통에서 문제가 생겼다.

‘나로호’ 3차 발사 연기의 원인도 로켓 최하단과 발사대를 연결하는 연결 포트의 오링에 있었다. 로켓에 연료와 헬륨가스 등을 주입할 때 기체가 새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부품인데,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서 제대로 채워 넣을 수 없었던 결과이다. 그 결과 결국 압력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 최초의 우주 발사체인 ‘뱅가드’((Vanguard) 로켓 역시 개발 초기 압력에 문제가 발생해 큰 실패를 경험한다. 1957년 12월 발사 당시 추진 시스템에서 충분한 압력과 추진력을 생성하지 못하면서 2초 만에 폭발했다.

발사체 엔진 개발과정에서는 부품 제작부터 조립 등 전 과정에 걸쳐 새는 곳이 없는지 점검하고 또 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수십번, 수백번 점검했는데도 언제 어디서 새는 곳이 발견될지 모르는 그야말로 ‘압력과의 사투’를 벌이는 셈이다.

이처럼 우주 발사체 개발은 어느 것 하나 쉽게 건너뛸 수 없는 기나긴 여정이다.

1957년 12월 미국 ‘뱅가드’ 로켓의 폭발 장면. 충분한 압력을 생성하지 못해 추진력이 떨어지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출처=미국항공우주국(NASA)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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