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멀어질수록 선명해지는 기억

백영옥·소설가 2017. 10. 2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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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으로]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공간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움직이는 기차 안을, 어떤 이는 욕조 속을 가장 마음 편한 곳으로 여긴다. 엄마의 자궁 같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받는 안정감은 비슷할 것이다. 사람이 주는 위로 대신 공간만이 손 내미는 무언가를 찾아보는 것도 그곳을 기억하는 방법이 아닐까./플리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기차 플랫폼 의자에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몽당연필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서 마음에 드는 아무 곳에나 밑줄 치면서 말이다. 고독을 자발적 외로움이라 정의하곤 하던 내 습관과 시인의 정의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한 기차를 타자 곧 한국의 농촌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이어졌다.

그렇게 일본을 기차로 여행했다. 작년에 눈 사진을 찍으러 갔던 홋카이도를 제외한 규슈, 혼슈, 시코쿠까지 돌아봤으니 열도에서 가장 큰 섬은 대충 훑어본 셈이다. 커다란 트렁크에 옷보다 많은 책을 넣었다. 무게가 초과될까봐 배낭 안에 책 세 권을 더 넣었다. 대개 여행을 떠나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평소의 일을 중단하는 게 여행 습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작정하고 책을 읽을 생각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이동진 독서법'에서 그는 책 읽기 최적의 장소로 자신의 욕조를 꼽았다. 따뜻한 물속에 앉아 적게는 2~3시간 많게는 8시간 이상도 책을 읽는다고 하니, 퉁퉁 불은 손이 연상돼 놀랍기만 하다. 아무리 조심해도 책장이 물에 젖어버리는 나로선 비법을 전수받고 싶을 지경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욕조 안에서의 책 읽기는 엄마 자궁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고 했다. 나 역시 욕조 안에서 가끔 책을 읽지만 몇 권의 책(심지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물에 빠뜨린 후로 오랜 시간 지속하진 못한다.

말하자면 달리는 기차는 내게 '책 읽기의 자궁' 같은 곳이다. 중학교 시절,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선릉까지 학교에 다녔다. 잡식성 독서가였던 내 손에는 시드니 셸던이나 스티븐 킹의 소설과 함께 범우사와 삼중당 문고판이 잔뜩 들려 있었다. 지하철에서 읽은 책들 속에는 지하철 특유의 리듬이 실려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 '지하철'이란 제목의 단편을 쓰기도 했다.

나로선 기차보다 책 읽기 좋은 장소를 상상하기 힘들다. 끝없이 바뀌는 풍경, 태생적으로 품고 태어나는 기차의 맥박과 리듬, 적당한 소음은 책 읽기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책을 읽다가 종종 멈추고 먼 곳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벼가 노랗게 익은 들판과 길게 늘어선 대나무 숲, 바닷가 마을과 끝도 없이 산이 펼쳐지는 풍경은 독서의 맛을 배가시킨다. 일본의 JR 기차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는 생활 철학을 가진 일본인 특유의 조심성이 가득해 때때로 독서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 '에키벤'을 녹차와 함께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타지에서 왔다고 해서 평소 안 써지던 글이 갑자기 잘 써지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그곳에서 글을 쓰는 데 골몰하는 대신 낯선 환경을 경계하고 그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다. 또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것들 가운데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내고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애써 마음을 피해 다니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글을 읽다가 문득 경주 중앙시장에서 본 할머니가 떠올랐다. 노상의 할머니는 고등어 가격을 외치고 있었다. "한 마리 삼천원. 세 마리 만원씩!" 할머니의 셈법이 믿기지 않아서 빤히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쳐 슬그머니 웃었더니, 할머니는 내게 진짜로 물 좋은 고등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그때의 할머니는 살아계실까.

6, 7년 전에 다시 찾은 경주 중앙시장은 쇠락해 있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속에 풍기던 전 부치는 냄새와 떡볶이, 순대에서 나던 따뜻한 김이 없었다. 최근에 가본 그곳에는 야시장이 펼쳐져 있었고, 외국인들이 맥주를 마시는 작은 바가 있었다. 고급 커피와 일반 커피의 맛이 똑같은 학교 인문대 앞 자판기 커피도 떠올랐다. 동전을 몇 번이나 집어삼키던 2호선 선릉역의 자판기도 떠올랐고, 안성에서 애인과 나란히 앉아 뉴스를 보며 먹던 분홍색 소시지 부침도 떠올랐다. 애인은 밥을 먹다 말고 식당에 있던 신문을 읽었다. '골키퍼가 불쌍했다!'라는 헤드라인 옆에는 고개 숙인 차범근 감독의 얼굴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월드컵 예선전에서 네덜란드에 참패한 후, 그가 감독직을 그만둔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기차에서 책을 읽으니 그리운 것들이 더 자주 호출됐다. 아득하게 먼 들판을 바라보다가 "누구인가를 만나고 사랑하다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엇인가 모르는 구석이 생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세계 속에서 자라는 상대가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기차의 움직임 때문에 반듯하게 그어지지 않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그곳 옆에 '보고 싶은 당신'이란 말을 적어 넣었다. 내 속에서 상대가 나무처럼 울창해지는 상상 속엔 울창하게 우거진 돗토리현의 대나무 숲이 놓여 있었다. 대숲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발가락 다섯 개까지 궁금해지던 시절의 내가 얼마나 가혹하게 외로웠는지 떠올랐다. 우리는 고향을 '공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고향은 '사람' 그 자체가 된다. 나는 생의 여러 번은 죽었다 살아나는 경험을 한다고 믿는다. 해고, 이혼, 사별, 암 선고처럼 우리에겐 죽음 같은 고통이 찾아오는 때가 있다. 다시 태어나는 그곳이 꼭 공간인 것은 아니다. 평생을 두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돌아가고 싶은 고향을 갖는 일과 같다. 그가 있는 곳이 내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내 이마를 살포시 만져주던 당신의 손길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났다. 시인이 '그해 행신'이라고 쓴 제목의 글에는 "사람에게 미움받고, 시간에게 용서받았던"이라고 쓴 글이 있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저질렀던 미움받을 짓들을 떠올리자니, 가슴 한구석이 뜨끔해졌다. 그러나 당신도 시간으로 나를 용서했길 바라며 책장을 어루만졌다. 단지 책을 읽기 위해 기차를 탔다. 신칸센 대신 보통 열차를 골라 탄 건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을 아직은 멈추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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