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미국사회의 인종 차별에 날린 독한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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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은 한 백인 여성이 자신을 '원숭이'로 조롱한 발언이라고 털어놓았다.
미국 최초의 흑인 영부인이었지만 피부색에 대한 높고도 견고한 편견의 벽을 또다시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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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배반’의 화자는 흑인을 비하하는 말인 ‘니그로’를 수없이 내뱉는 등 사회적 금기를 의도적으로 넘나드는 방식으로 인종 차별을 비판한다. 영화 ‘노예 12년’에서 음악가로 자유롭게 살던 흑인 남성 주인공이 노예로 잡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 동아일보DB |
미국에서 노예제도는 폐지됐지만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여전하다. 흑인인 저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차별을 할 바에는 아예 과거처럼 인종에 따라 버스 좌석, 도서관, 학교 등을 분리하자고 제안하는 장편소설을 통해 현실을 맹렬하게 풍자한다.
이 소설은 지난해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영국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받았다. 미국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기는 48년 맨부커상 역사상 처음이다. 이 책은 화자인 흑인 남성 ‘미(Me)’의 자기소개부터 예사롭지 않다.
‘흑인 남자가 이렇게 말하면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나는 물건을 훔쳐 본 적이 없다. 세금이나 카드 대금을 내지 않은 적도 없다. 빈집을 턴 적도 없다….’
이런 그가 대법원 재판에 회부됐다. 노예를 부리고 공공연하게 인종분리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도 할 말은 있다. 그가 살던 로스앤젤레스 인근 흑인들이 주로 몰려 살던 빈민촌인 디킨스시(가상도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자 사람들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이 흑인들을 결집시킨 사실을 떠올리며 이를 마을에 적용시킨다. 버스에 노약자, 장애인과 더불어 백인 우대석을 도입하고, 공공도서관의 이용 안내판을 ‘일요일∼화요일: 백인 전용, 수요일∼토요일: 유색 인종 전용’이라고 바꾼 것.
무명의 흑인 배우였던 80대 마을주민 호미니는 정체성 혼란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노예가 되기를 간청해 그는 ‘어쩔 수 없이’ 주인이 된다. 한데 호미니는 고분고분하지 않다. 집 안에 들어온 송아지를 데리고 나가 달라고 부탁하면 “가축 돌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그는 수없이 호미니를 ‘해방’시키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노예 주인 노릇은 ‘포주 짓도 쉽지 않다’는 말을 떠올리게 할 정도라며 투덜댄다. 흑인들의 모임은 제 시간에 시작하는 법이 없고, 흑인은 제대로 매듭도 묶을 수 없다며 흑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대놓고 비꼰다.
서글픔도 묻어나온다. 괴짜 심리학자인 그의 아버지는 경찰에 몇 마디 항의를 하다 총에 맞아 숨진다. 피 흘리며 숨져 있는 아버지를 보고도 흑인의 고통을 가르치기 위해 아버지가 꾸민 연극이라고 믿으려는 ‘미’의 모습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미’의 이야기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랩 같다. 넘실대는 말의 향연에는 흑인 인권 운동의 역사와 인종 갈등으로 벌어진 사건, 미국 대중문화가 빼곡히 녹아들어 있다. 1787년 필라델피아 회의에서 하원 구성 비율을 결정하는 인구를 산출할 때 흑인 노예를 백인 자유인의 5분의 3으로 세는 타협안이 승인된 ‘5분의 3의 타협’, 노예로 태어나 19세기 미국의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된 프레더릭 더글러스, 공공장소에서 인종분리를 시행한 짐 크로 법 등이 줄줄이 나온다.
미국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이들은 자유자재로 역사와 현실을 비틀어대는 블랙 코미디에 무릎을 치고 감탄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은 각주를 일일이 확인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인종 차별의 심각성을 웃음과 눈물, 조롱으로 한바탕 고발하는 광대극 한 편을 보는 듯하다. 원제는 ‘The Sellout’.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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