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에 후다..' 일본식 용어 배우는 베트남 직원 보고 충격

최현주 2017. 10. 2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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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용어 1006개 우리말로 정리
한국 패션 세계화 밑거름 됐으면
유럽 명품 10%, 미국 30% 만드는
세계1위 가방 제조업체로 책임감
일반인도 명칭·유래 정확히 알면
들고 다니는 가방 특별해질 것
한국도 브랜딩·마케팅 잘하면
글로벌 스타 브랜드 탄생 머잖아

━ [인터뷰] 핸드백 용어사전 낸 박은관 시몬느 회장

박은관 회장은 ’시몬느가 만든 핸드백 용어 사전이나 핸드백 박물관은 글로벌 한국 패션 브랜드 탄생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우리는 매일 가방을 들고 다닌다. 특히 대부분의 여성은 ‘집을 나선 후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방에 담는다. 많은 여성이 가방을 가장 개인적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클로드 코프만은 “가방은 여자의 ‘또 다른 자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가방 전문가가 있다. 38년간 가방을 만들어온 가방제조업체 시몬느의 박은관(62) 회장이다. 지난 12일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에 있는 시몬느 본사에서 만난 박 회장은 “같은 돈으로 산 옷을 매일 입고 다니기는 어렵지만 가방은 그럴 수 있다”며 “패션 제품 중에서 실용성이 뛰어나고 일상에서 나와 가장 밀접한 사물이 바로 가방”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요즘 가방의 정체성 찾기에 열심이다. 지난달 가방 제조 현장에서 쓰는 1006개 단어를 정리한 사전인 『핸드백 용어 사전』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전이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시몬느에는 박 회장(38년)을 비롯해 40~52년간 가방만 만든 장인이 수두룩하다. 박 회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어도 업계 선배로서, 개척자로서, 세계 1위 가방제조업체로서 해야 할 일이 사전 편찬”이라고 말했다.

사전을 직원들끼리 만들기는 한계가 있었다. 4년 전 모교인 연세대 최문규 문과대학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교수 3명을 비롯해 100명이 참여해 꼬박 3년을 공들였다.

Q :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나. A : “9년 전 베트남에 있는 공장에 갔을 때다. 본사 직원들이 현지 직원들에게 기술 지도를 하는데 절반이 일본어였다. ‘구치에 후다 달아라’라는 식이다. (가방)입구에 덮개를 달라는 말이다. 일제강점기에 사용했던 도제식 일본어를 한국어로 알고 배우는 현지 직원의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는 결심을 했다. 시몬느는 유럽 명품 가방의 10%, 미국 명품 가방의 30%를 만드는 회사다. 우리가 선도하면 자연스레 흐름이 바뀔 거라 믿는다.”

Q : 책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A : “막상 집필을 시작하니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 오염이 심각했다. 학자들은 현장을 잘 모르니 수시로 본사를 찾아와서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도 보고 상의도 했다. 감수는 내가 했다. 2년간 주말마다 50~100페이지를 보고 또 봤다. 사전이니만큼 단어 하나하나 신중하게 살폈다.”

Q : 용어 설명이 한국어·영어·베트남어·인도네시아어·중국어·캄보디아어까지 있던데. A : “시몬느 공장이 베트남(4곳)·중국(2곳)·인도네시아(2곳)·캄보디아(2곳)에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현지 직원을 생각했다. 다들 얼마나 고마워하던지…. 현재 5000부를 인쇄했는데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요청이 와 개정판에는 이탈리아어·일본어도 들어갈 예정이다. 후배들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세계 가방업계 종사자들이 한국어 용어로 서로 소통할 수 있으면 한다.”

Q : 가방 업계 종사자 외에는 이 책을 찾을 것 같지 않은데. A : “기본적으로 업계 종사자를 위해 만들었지만 일반인 중에서도 가죽 공예에 관심 갖는 수요가 늘고 있다. 기술·소재·제조방법까지 다 담긴 사전이다. 초보자도 알아보기 쉽게 하려고 사진도 일일이 넣었다. 가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봐도 좋다. 사전이라는 명칭을 달았지만 일종의 가방 설명서 같은 것이다. 내가 아끼는 가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각 부위가 어떤 명칭으로 불리는지, 유래가 뭔지 알면 그 가방이 더 특별하게 느껴질 거다.” 박 회장은 이전부터 가방과 관련한 인문학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2011년 출판한 『우리 전통 가방』도 한국의 가방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만든 책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 비용을 지원해주고 1년간 작업해 발간했다. 현재 가방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삼태기·보자기·함지·함 등을 연구해 한국 전통 가방의 역사를 짚어보고자 했다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백스테이지’(2012년 개관)도 이런 마음으로 지었다. 이곳엔 1550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실크주머니’부터 1998년 생산된 시가 1억원짜리 에르메스 ‘버킨백’까지 350가지 핸드백이 모여 있다. 박물관을 건립하는 데 든 비용만 200억원에 이른다. 박 회장이 출장 중 돌아본 유럽·미국·영국 어디에도 가방 박물관이 없었다.

시몬느는 어떤 회사

Q : 백스테이지가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는지. A : “백스테이지는 박물관, 공방,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편집숍으로 구성했다. 편집숍은 지금은 카페지만 처음 계획했을 때는 소비자를 접하기 어려운 신진 디자이너가 자신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매장을 무료로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공방은 가방이나 가죽 공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장인에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인데 석 달씩 예약이 찰 정도로 인기다. 가방을 사서 손에 들고 나가든, 가방 관련 지식을 머리에 담고 나가든, ‘나도 가방 디자인 한번 해볼까’ 하는 동기를 마음에 담고 나가든…. 뭐든 담고 나갔으면 좋겠다. 방문객 100명 중 1명만 ‘가방 디자인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도 후학 양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나.”

Q : 2013년부터 2년간 백스테이지에서 가방 전시회인 ‘BAGSATGE展 by 0914’를 진행했는데. A : “가방을 사물이 아닌 예술로 변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화가에서부터 소설가·설치미술가·심리학자·수학자 등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적인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30여 명의 인재가 저마다 가방에 대한 생각을 표현했다. 전시회 내내 시몬느 자체 브랜드인 ‘0914’ 얘기는 하지 않았다. 제품과 절대 연계하지 말고 순수하게 예술성만 가지고 참여하라고 했다. 가방에 대한 정체성이 확고해지면 곧 0914의 입지가 확고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박 회장은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명품 패션 브랜드가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세계 패션시장에서 한국인의 입지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내로라하는 세계 패션 브랜드 디자인실마다 한국인 디자이너 비중이 20%가 넘는다”며 “좋은 제품이 나올 준비는 됐고 브랜딩이나 마케팅만 잘 받쳐주면 스타 브랜드의 탄생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 [S BOX] 귀족들의 보석·선물 주머니서 유래

「 가방의 역사는 귀족이 사용했던 주머니나 함·상자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귀족이 자체 공방에서 만든 주머니나 함에 선물이나 보석을 담았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핸드백이 대중화한 것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다. 이전까지 외출이 잦지 않았던 여성이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터에 갈 때 소지품을 담아갈 운반 도구가 필요했다.

초기에는 소지품 운반이라는 기능적인 면에 초점이 맞춰졌던 핸드백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미적인 측면이 강조됐다. 18~19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이른바 명품 브랜드 핸드백이 등장했다. 루이비통·버버리·샤넬 등이다.

명품 가방 브랜드가 많은 대표적 국가인 이탈리아는 이들 국가보다 시작이 조금 늦었다. 프랑스와 영국 명품 브랜드의 제조를 맡았던 이탈리아는 1960년대 들어 정부에서 패션산업 육성에 나서면서 구찌·페라가모·아르마니 같은 명품 브랜드가 탄생했다.

이후 90년대 들어 미국에서 마크제이콥스·토리버치·코치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탄생한다. 유럽 명품 가방은 가격이 비싼 대신 이들 브랜드는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가격을 낮춰 세계 시장을 공략했다. 」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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