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위기' 탈출 비결? 코끼리와 단둘이 여행

나원정 2017. 10. 2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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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BIFF] '뽀빠이' 커스텐 탄 감독 인터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뽀빠이'. 태국 중년 건축가와 코끼리의 로드무비다.
[매거진M] 내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싱가포르 대표로 출품될 후보작은 커스텐 탄(36)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 ‘뽀빠이’다. 재미있는 건 ‘뽀빠이’가 태국의 중년 건축가와 코끼리의 로드무비라는 사실이다. 모든 장면은 태국에서 촬영됐고, 1970~80년대 태국 록신을 풍미하다 오랜 침체기를 겪은 뮤지션 타네트 와라쿨누로쿠가 주연을 맡아 생애 첫 연기에 나섰다.
올해 이 영화로 BIFF를 찾은 탄 감독은 자신을 “방랑자”라 소개했다. “싱가포르 출신이지만, 미국 뉴욕에서 감독이자 촬영감독으로 활동하며 1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내 시야를 넓혀줬다. 성별이나 인종, 성적 취향이 무엇이든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면 우리 모두의 뿌리는 결국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뽀빠이'로 장편 연출 데뷔한 싱가포르 감독 커스텐 탄. 그는 자신을 "방랑자이자 국외자"라 소개했다. [라희찬(STUDIO706)]
‘뽀빠이’는 2007년 그가 2년간 태국을 여행했을 때의 기억과 관찰이 토대가 됐다. 최근 방콕에선 많은 고층건물이 새롭게 솟아오르며 구시대의 랜드마크를 대체하고 있다. 젊은 후배들에게 밀려나는 중년 건축가 타나. 그가 방콕 도시 한복판에서 유년시절 함께 자란 코끼리 뽀빠이와 재회하는 마법 같은 순간은 탄 감독의 실제 경험을 반영했다. “방콕 도시에서 코끼리를 만난다는 게 초현실적인 동시에 그토록 장엄한 동물이 돈을 구걸하는 거리 쇼에 이용된다는 게 굉장히 슬펐다.”
뽀빠이를 고향 르이에 데려다주기 위해 길을 떠난 타나는 자신을 짓누르던 도시의 허울을 서서히 벗어 던진다. 시골 마을에서 굳이 대형 마트를 찾아 장을 봤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길가 물웅덩이에서 어린아이처럼 멱을 감고, 생면부지 트랜스젠더 여성의 고독을 헤아린다. 그 변화의 과정이 자못 뭉클하게 그려진다. 타나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히피 노숙인은 탄 감독이 태국 어느 편의점 앞에서 마주친 실제 노숙인을 모델로 했다. “그는 마치 예언가처럼, 곧 닥칠 자신의 죽음을 초연하게 이야기했다. 이 캐릭터가 타나에게 현실에의 집착을 ‘놓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탄 감독의 말이다.
극 중 '뽀빠이'를 연기한 '봉'(사진 오른쪽).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사전 취재한 사육사의 코끼리였다. 이후 100여 마리 코끼리를 오디션했지만, 결국 봉을 출연시키기로 했다. 코끼리 때문에 조촐하게 꾸리려던 스태프는 60명에 육박했고 촬영 기간은 34일이나 걸렸다. 코끼리가 집안에 들어간다는 설정을 집주인들을 꺼린 탓에, 타나의 집은 일가족 살인사건이 일어난 저택을 겨우 빌려 촬영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주연을 맡은 타네트 와라쿨누로쿠는 20년 넘게 대중의 뇌리에서 잊혔던 왕년의 태국 로커. 태국 영화감독 친구에게 그를 추천받은 탄 감독은 수소문 끝에 그를 만났다. 지금은 평범한 아시아 중년 남성 같지만, 전성기엔 장발에 화려한 비주얼을 겸비했던 스타였다. 그 간극이 타나 역에 어울렸다고 탄 감독은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코끼리로 인한 예기치 못한 변수들로, 촬영장은 결코 “낭만적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완성된 영화는 달랐다. 올해 미국 선댄스영화제는 이 영화에 기꺼이 각본상을 선사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많은 감동과 영감을 받는다”는 탄 감독. 2006년 1년간 전주에서 머물기도 했다는 그의 차기작은 한국에 대한 영화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시아에서 여성 감독으로 사는 것은? “‘뽀빠이’는 여성인 나의 시선으로 본 남성 주인공의 이야기다. 만약 남성 감독이 같은 주제를 다뤘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됐을 것이다. 주로 남성의 시선에서 다뤄졌던 이야기들을, 남성성이 거세된 새로운 시각으로 탐험하면 어떻게 될까. 그런 작업이 나한테는 정말로 흥미롭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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