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합숙 등 '숙의' 거치며 유보 줄고 의견 뚜렷해져

2017. 10. 2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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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위 결과 발표-숙의가 변화시킨 여론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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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 민주주의’로 공론이 탄생했다. 신고리 5·6호기 영구 중단 여부에 대해 시민대표참여단 471명은 결론을 내렸다. 시민들이 바라는 한국의 원전 정책 방향도 더욱 분명해졌다.

‘판단 유보’ 첫 여론조사땐 36%
합숙토론 첫날 25%→4차땐 3%로
‘신고리 5·6호기 재개’ 늘면서도
‘원전 비중 축소’도 갈수록 증가

여론조사와 다른 공론조사 결론
숙의 과정 ‘다양한 정보’가 영향
재개 찬성자도 32%는 “원전 축소”
“보상대책·투명성 강화 등” 주문도

‘유보’가 사라졌다 지난 7월24일 출범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8월25일~9월9일 전국의 성인남녀 2만6명을 대상으로 1차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조사에 응한 시민 3명 가운데 1명(35.8%)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한 판단을 공론화 과정 뒤로 미뤘다. ‘잘 모르겠다’는 이유에서다.

9월16일 공론화위 오리엔테이션이 열리고 시민대표참여단 471명이 본격적인 숙의 절차에 돌입하자 이들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시민참여단은 자료집, 인터넷 동영상 강의, 온라인 전문가 질의응답 등 공론화위가 설계한 숙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최종 결정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됐다.

시민참여단은 개별적인 숙의를 마친 뒤 2박3일 종합토론회(10월13~15일)에 참석했고, 3차 조사에 응했다. 조사 결과 유보 의견은 24.6%로 1차(35.8%) 조사 때보다 11.2%포인트나 줄었다. 대신 재개 의견(44.7%)이 8.1%포인트, 중단 의견(30.7%)이 3.1%포인트 더 늘었다. 어느 쪽으로든 생각을 정리한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시민참여단이 실제 중단 또는 재개로 마음을 정한 데는 2박3일 합숙토론이 결정적이었다. 합숙토론 프로그램이 모두 마무리된 뒤 15일 실시된 4차 조사 결과를 보면, 한쪽으로 생각을 정리한 시민이 눈에 띄게 늘었다. 유보 의견은 3.3%로 1차 조사에 비해 32.5%포인트, 3차 조사에 비해 21.3%포인트나 줄었다. ‘잘 모르겠다’고 답한 이는 시민참여단 가운데 15명 정도에 불과했다. 시민참여단의 절반 이상인 57.2%는 건설 재개 쪽으로 마음을 돌렸고, 39.4%는 중단으로 생각을 굳혔다.

유보 의견이 사라진 것은 중단, 재개에 대한 의견 분포에서뿐 아니라 한국의 원전 정책에 대한 의견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1차 조사에서 시민참여단 대부분은 원전이 현재 수준보다 축소돼야 한다(45.6%), 현재 수준으로 유지돼야 한다(32.8%), 현재보다 확대돼야 한다(14%)는 의견을 각각 냈지만, ‘잘 모르겠다’는 의견(7.5%)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은 숙의를 거듭할수록 3.6%(3차 조사)에서 1.6%(4차 조사)로 줄었다. 원전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모르겠다고 응답한 이가 시민참여단 471명 중 단 7~8명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론화 결과를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오늘은 ‘재개’ 미래엔 ‘탈핵’ 20일 발표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에서 눈에 띄는 점 가운데 하나는 당장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의견(59.5%)이 중단(40.5%)보다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는 원전 비중을 축소해야 한다(53.2%)는 의견이 유지(35.5%)나 확대(9.7%)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는 1차에서 4차 조사로 갈수록 ‘건설 재개’ 의견이 많아졌는데, 향후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는 원전 비중이 현재보다 축소돼야 한다는 의견이 늘어났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마지막 4차 조사에서 신고리 5·6호기를 재개해야 한다고 결정한 이들 3명 중 1명(32.2%)꼴로 원전을 축소해가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시민참여단 다수가 장기적으로 ‘탈핵’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신고리 5·6호기는 재개해야 한다고 결정한 데에는 숙의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정보가 큰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개에 동의하는 시민참여단이라고 하더라도 숙의 과정을 거치며 ‘원전은 사양산업이다’, ‘사용후핵폐기물을 처리할 곳이 마땅치 않다’,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등 탈핵을 주장하는 전문가 발표에 담긴 정보를 습득하면서 원전 축소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게 된 것이다.

공론조사와 여론조사의 차이 이번에 공론화위가 도입한 ‘공론조사’는 숙의성이 높다는 측면에서도 여론조사나 국민투표와 다르다. 1998년 미국 스탠퍼드대 제임스 피시킨 교수가 고안한 공론조사의 기본 취지는 학습과 토론, 토의 등을 통한 여론수렴이다. 시민들의 의견을 수집·확인한다는 점에서 여론조사와 비슷하지만, 능동적으로 학습, 토론 등 숙의 과정을 거치도록 한 뒤 의견을 수렴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주제에 대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게 변하는지,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 단순 찬반, 가부를 넘어선 새로운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시민참여단의 원전 정책에 대한 최종 견해는 일반 국민의 여론과 차이를 보여, 한달여 숙의 과정이 태도의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갤럽이 지난 17~19일 전국 19살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기 생산을 위해 원전을 이용’하는 데 대해 59%가 찬성을, 30%가 반대 의사를 나타내, 숙의 과정을 거친 시민참여단의 원전에 대한 태도와 적잖은 차이를 보였다.

시민참여단은 마지막 조사에서 ‘대안’까지 제시했다. 마지막 4차 조사 설문 문항에는 ‘최종적으로 중단 또는 재개 쪽으로 결정이 되더라도 어떤 보완조치가 필요한지’를 묻는 문항이 포함됐는데, 이에 대해 시민참여단이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의 안전·보상 등의 대책 마련”(59명), “원전 비리 척결 및 관리에 대한 투명성 강화”(74명) 등 다양한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김지형 위원장은 “단순히 예시로 든 보완조치를 선택하는 것 외에도 추가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조치를 직접 서술하도록 하는 개방형 설문을 더했다”며 “시민참여단 거의 대부분은 이 문항에 대해 아주 꼼꼼히 빠뜨리지 않고 빈칸을 가득 메워줬다. 이 부분 역시 정책 권고 내용에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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