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 맞선 '일본의 양심' 아라이 교수의 큰 족적
<앵커 멘트>
일본 내 한국 문화재의 반환 운동과 전쟁책임 규명 등에 앞장서서 일본의 양심으로 불렸던 아라이 교수가 암으로 별세했습니다.
아라이 교수는 위안부 문제와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의 반대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한평생 일본의 양심을 위해 싸웠습니다.
도쿄, 이민영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2011년, 조선왕실의궤 등 우리 문화재 1200여 점이 일제에 강탈당한 지 90년 만에 우리나라에 반환됐습니다.
여기에는 한 일본 노학자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주인공은 아라이 신이치 교수.
일본 총리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국회에 막혀 약탈 문화재 반환이 지연되자 "문화재는 태어난 자리에 있을 때 가치가 있다"며 국회 연설로 의원들을 설득해 반환을 성사시켰습니다.
아라이 교수는 또 한일 지식인들과 공동으로 1910년 한일병합 조약은 사실상 불법으로 체결돼 원천 무효라는 성명도 발표했습니다.
<녹취> 아라이(교수/2010년 5월) : "(한일병합조약은) 처음부터 원천 무효였다는 한국 측 해석이 공통된 견해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조직적 개입을 입증하는 업무일지 60점을 찾아내 공개한 것도 아라이 교수였습니다.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에도 적극 나서 채택 반대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녹취> 아라이(교수/2001년 4월) : "(일본 법원이) 난징대학살을 인정했고 당시 여성 성폭행도 많았습니다."
올해 91살인 아라이 교수는 세상을 떠났지만 일본의 양심으로 불린 그의 행적은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이민영입니다.
이민영기자 (myl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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