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음모·배신의 실리콘밸리에 퍼부은 내부자 독설

문학수 선임기자 2017. 10. 2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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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카오스 멍키
ㆍ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지음·문수민 옮김 | 비즈페이퍼 | 656쪽 | 2만5000원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벽화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베들레헴 서안의 분리장벽에 그려져있다. 베들레헴 | UPI연합뉴스

책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카오스 멍키’를 우리말로 옮기면 ‘혼돈의 원숭이’다. 이 광포한 원숭이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인터넷기업의 데이터센터에 난입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케이블이 뽑혀 나가면서 여기저기 불똥이 튀어오르고 서버가 부서지면서 전 세계가 졸지에 난장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엔지니어들은 이렇게 날뛰는 난입자를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온라인 서버의 견고함을 테스트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넷플릭스가 개발한 ‘카오스 멍키’가 그렇다. 프로세스와 서버를 일부러 다운시켜 취약점을 찾아낸 다음, 이후에 더욱 견고한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것이다.

저자인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는 이력이 다소 독특하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민자 집안의 아들이다. 쿠바 난민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골드만삭스에서 파생상품 가격을 결정하는 계량분석 전문가로 활동했다. 2008년 금융위기의 격랑이 닥치자 월가에서 실리콘밸리로 자리를 옮겨 웹프로그래머로 일하다 페이스북의 광고팀에 합류했다. 그는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수익으로 전환하는 ‘페이스북 익스체인지(FBX)’ 광고 플랫폼을 개발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수익화 전략을 놓고 내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패배해 페이스북을 나와야 했다. 지금은 트위터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경쟁업체인 페이스북을 공격하는 입장에 서 있다. 책의 설명에 따르자면 샌프란시스코만에 있는 12m 길이의 보트에서 산다.

저자는 스스로를 ‘카오스 멍키’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책은 그의 경험담이다. 실리콘밸리의 얽히고설킨 상황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고발하고, 때로는 야유에 가까운 ‘돌직구’를 퍼붓는다. 관계자들의 실명까지 낱낱이 까발리고 있어서 이 책으로 인해 불편해할 사람들도 적지 않을 성싶다. 저자는 “책을 쓰도록 해준 모든 적들에게” 역설적인 감사를 표하면서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건은 2010년 3월부터 2014년 10월 사이에 일어났다. 당사자 중에 내가 사건을 곡해했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친히 반론을 써주기 바란다”고 말한다.

책은 실리콘밸리에 대한 독설로 넘쳐난다. 저자에 따르면 그곳은 비정한 전쟁터다. “열 가지 도전 중에 일곱 가지는 비참한 실패로 이어져 중단되며, 반쯤 장님인 이가 저지른 도박이 혁신으로 탈바꿈되는 곳”이다. 아울러 “우리도 언젠가 죽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작동하는 곳”이다. 가끔 의미 없는 선의가 베풀어지거나 어쩌다 뜨거운 전우애를 느낄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은밀한 이중플레이, 음모와 배신이 판을 치는 곳이다. 물론 저자가 책에서 강조하는 지점은 후자 쪽이다. 책에 따르면 “빌 게이츠는 게리 킬달의 아이디어를 도용했고, 스티브 잡스는 엔지니어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무리한 일정의 프로젝트를 떠맡기고 보너스를 가로챘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라는 아이디어를 만든 쌍둥이 형제 윙클보스를 등쳐먹었다”.

특히 저자는 페이스북에 대해 ‘배수진’에 가까운 공세를 펼친다. 그는 자신이 입사할 당시에 만난 다섯 명의 면접관들을 세세히 묘사하면서, 그중에서도 네번째 면접관이었던 저스틴 새퍼에 대해 인신공격에 가까운 독설을 퍼붓는다. “(물고문 같은 면접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싸구려 로션처럼 코를 찌르는 거만의 냄새를 느꼈다. 이후 내 코를 괴롭히던 그 악취가 자신의 친구 저커버그를 믿고 휘두르는 권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가 입사할 당시 페이스북은 사용자 10억명을 넘긴 “제국”이었다. 아울러 그곳은 엔지니어가 화장실에 앉아서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쉬지 않는 ‘착취의 제국’이었다. 이에 따라 마크 저커버그는 ‘황제’로 묘사된다. 페이스북은 영속성을 중시해 장기적 계획을 세우면서도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기민성을 갖춘 조직이었지만, “황제와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조직 내 위치가 결정되는 궁정”이었으며, “페이스북의 가치에 대한 직원들의 믿음은 절대적이며 종교적인 수준”이었다. “창립멤버인 부유층과 최근에 입사한 하위층 간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극적 갈등과 인물 캐릭터가 생생해서 마치 실리콘밸리를 배경으로 삼은 ‘미국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저자가 겨냥하는 가장 중요한 타깃은 페이스북이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이 책의 흥미로운 등장인물이 되어주고 내 인생의 2년을 함께해준 페이스북의 옛 동료들에게 감사한다”면서 또 한번의 역설적인 야유를 보내고 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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