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몸은 25세지만 머리는 5세인 청년..세상엔 불가해한 불행이 있다
[경향신문] ㆍ내가 개였을 때
ㆍ루이즈 봉바르디에 지음·카티 모레 그림·이정주 옮김 | 씨드북 | 96쪽 | 1만3000원
길지 않은 책을 읽고 덮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초등 고학년용이 맞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개였을 때>는 줄거리가 우울한 데다 묘사가 참혹해 성인 독자의 마음도 마냥 편치는 않다. 차라리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나 르포 문학에 어울릴 수도 있는 내용이다.
앙투안이라는 청년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앙투안은 25세지만 지적 수준은 5세다. 앙투안은 엄마, 22세인 남동생 자크와 함께 산다. 다정다감하게 앙투안을 돌봐주던 엄마가 언젠가부터 방에 누워만 있다. 엄마는 날이 갈수록 메마르고 쪼그라들다가 결국 사라진다. 피에르 삼촌은 앙투안에게 엄마가 많이 지쳐 쉬려고 먼 여행을 떠났다고 말한다. 앙투안을 돌보는 일은 동생 자크에게 맡겨진다. 앙투안은 매일 엄마 방에 가 시트를 쓰다듬으며 엄마를 그리워한다. 엄마의 손길을 받지 못한 앙투안의 몸에선 지독한 냄새가 나고 이빨은 노란색 이끼가 덮인 것처럼 변한다. “바보 형 때문에 내 인생은 망했어!”라고 화를 내곤 하던 동생 자크는 어느 날 밤 가방에 술병을 넣고 집을 나서더니 돌아오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고 배가 고파진 앙투안은 오래돼 썩은 치즈맛이 나는 우유를 마시거나 푸르뎅뎅한 빵을 먹는다. 앙투안은 마당에 묶여 있던 개 델핀느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앙투안은 스스로 개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는 앙투안의 손길이 델핀느를 건강하게 보살필 리 없다. 델핀느의 마지막 날도 곧 다가온다.
‘사회안전망의 부재’ ‘복지 사각지대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접근법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개였을 때>를 읽었을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극복하기 힘든 불행과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처지에 대한 공감이다.
앙투안을 학대하는 동생 자크를 쉽게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그 역시 20대 초반의 나이에 지적장애가 있는 형을 평생 돌봐야 하는 큰 의무를 떠안았기 때문이다. 앙투안이 자신에게 닥친 거대한 불행을 이해하지 못한 채 5세 어린이 시각으로 천진난만하게 묘사돼 있기에, 독서는 담담하고도 한층 처연하다.
독자와 등장인물 모두에게 다행스럽게도 결말이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개였을 때>가 어린이책일 수 있는 이유는 결말이 온건해서가 아니다. 차라리 세상에는 불가해한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는, 믿기 어렵지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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