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도와줘 '직장갑질119']대기업 노조, 사업장에만 집중..비정규직 노조 조직률 2% 그쳐

박송이 기자 2017. 10. 2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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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기존 노조의 한계

지난해 1월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삼성전자 휴대폰 부품 생산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파견노동자가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했다. 며칠 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던 또 다른 20대 파견노동자도 메탄올 중독임이 밝혀졌다. 피해자는 금세 5명으로 늘었다. 2016년 한국에서 벌어진 후진국형 산업재해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노무사는 인천·부천 지역 공단 파견노동자들 중 추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루빨리 추가 피해자를 찾아 산업재해 보상을 받게 하고 공단지역 파견노동자들의 보호받지 못한 노동에 대해 논의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재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추가 피해자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민주노총 본부를 통해 해당 지역 노동조합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노조는 거의 손을 쓰지 못했다. 박 노무사는 “공단 파견노동자들에게 이를 알리려고 노조에 도움을 청했지만, ‘선전물을 만들면 뿌려주겠다’거나 해당 지역에 인력이 없어서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피해 노동자 2명이 추가로 밝혀진 건 그로부터 9개월 후였다. 피해자들은 2015년 2월, 2016년 1월에 실명한 상태였으나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언론 보도를 제대로 접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는 추가 피해자를 찾기 위해 업체를 전수조사했다고 했지만, 이들은 그 어떤 곳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모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가 됐어야 할 노조도 파견노동자들의 현실에 무지하고 무심했다.

■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 정규직의 10분의 1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2004년 10%대로 추락한 후 현재 10.2%에 머물고 있다. 여기서 10%라는 숫자를 다시 따져보면 낮은 노조 조직률은 파견노동자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라는 것이 드러난다. 2016년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20.2%,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2.0%로 10배의 차이가 났다.

고용형태의 변화와 기존 조합원 중심의 노조활동은 이러한 격차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고용형태가 기업이 성장해도 사람을 더 뽑는 형식이 아니라 외주화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100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얼굴 맞대고 ‘노조 만들자’고 나서기는 어렵다”면서 “큰 사업장 위주인 민주노총 같은 곳은 어쩔 수 없이 조합원 이익에 충실하게 돼 있다. 그러다 보니 비정규직 문제보다 자기 사업장 문제에만 집중하게 되고 소규모 사업장이나 비정규직의 노조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가 필요한 곳에 노조가 서지 못하자 노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양면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21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대다수인 85.5%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조의 영향력이 늘어날 것이라는 응답은 26.3%에 그쳤다. 이는 기대하는 노조의 역할과 실제 노조 활동에 대한 평가가 어긋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노조가 이제까지 가장 잘한 항목으로 ‘조합원의 근로조건 개선’(47.7%), ‘조합원의 고용안정’(25.5%)을 꼽았다. ‘취약계층 보호’를 꼽은 사람은 11.4%에 그쳤다. 반면 노조가 앞으로 주력해야 할 항목으로 응답자들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보호’(30.1%), ‘고용안정’(29%)을 많이 꼽았다. 즉 응답자들은 노조가 취약계층 보호나 고용안정 추구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노조 활동은 조합원의 근로조건 개선에 집중됐다고 평가한 것이다.

■ 노조 조직률, 양극화 해소 위해 제고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17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조 조직률을 높이는 것은 대선 공약”이었다며 “정부가 노조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2015년 노동절에는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이 노조에 가입하라고 권유한 연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각국 정부에서 노조 조직률을 강조하는 이유는 노조가 소득불평등을 낮추고 중산층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의 많은 연구 결과들은 노조 조직률이 낮을수록 상위 소득 집중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데이비드 제이콥 오하이오대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수십년 동안 심화된 미국의 소득불평등은 레이건 시대 때 진행된 노조 파괴 정책과 관련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레이건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노조 조직률이 10% 높아지면 소득불평등이 2.7%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났지만, 레이건 이후부터 노조 조직력이 약화되면서 소득불평등이 3%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 조사 결과, 부모 중 어느 한쪽이 노조 조합원이면 자녀가 소득계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가 고용 안정성과 각종 의료혜택 등 조합원 가족들의 복지 증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조 조직률 제고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비정규직이 처한 현실을 간과해서는 노조 조직률을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존 노조도 이제까지의 정규직 중심 노조 활동에서 벗어나 비정규 노조 활동을 확대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지난 18일 민주노총은 시민사회노동단체들과 함께 ‘노조하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를 출범했다. 운동본부는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와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확대를 이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활동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장 이동이 잦다. 노동 자체가 파편화돼 있는데 기존 노조운동은 기업 단위 구조로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노동조합 가입원서를 쓰고 그 깃발 밑으로 들어가 모이는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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