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숙의 과정 거치며 쏠림 현상..2030이 신고리 운명 갈라

박세준 입력 2017.10.20. 18:47 수정 2017.10.2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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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위 결정 배경 / 결정 과정 흐름 바뀌어 / 1차 땐 재개 33%.. 3차 14%P 앞서.. 최종 결정 과정서 30대마저 '변심' / 공론화위, 탈원전 명분 '선물' / 대상 설문 탈원전 정책 방향 포함.. 문재인정부 정책 유지 명분 제공 / 시민들 참여율 높았지만.. / 참여단 최종 합숙토론 98.5% 기록.. 전문가들 의견 반영 부족엔 아쉬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이 20일 서울정부청사에서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남제현기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와 471명의 시민참여단이 89일간 머리를 맞댄 끝에 내놓은 결론은 ‘건설 재개’였다.

공론화위는 20일 공론화 결과와 함께 그간의 숙의과정이 총망라된 A4용지 170쪽 분량의 시민참여형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지난 17일부터 서울 한 호텔에서 외부와 접촉을 차단한 채 그간 4차례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보고서에는 지난 7월24일 공론화위 공식 출범부터 공론화 조사 설계과정,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한 각종 숙의프로그램 내용, 최종 결정과정과 그 배경 등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 공론화위는 이날 발표를 마치고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보고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맡은 임무를 마치고 국무총리 훈령에 따라 공식 해산했다. 국무조정실의 공론화지원단은 일정 기간 남아 백서 발간업무를 계속할 예정이다.


조사 거듭될수록 높아진 ‘재개’ 여론

공론화위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한 조사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건설 재개를 지지하는 응답이 늘어났다. 원전이 위치한 부산·울산·경남지역 시민참여단도 재개 쪽에 힘을 더 실어줬다.

공론화위가 한국리서치 컨소시엄을 통해 실시한 1차 전화조사(응답자 2만6명)에서 건설 재개는 36.6%, 중단이 27.6%, 판단유보가 35.8%로 나타났다. 시민참여단 471명은 자료집과 동영상 강의 등을 통한 기초 숙의절차를 마친 뒤 2박3일 종합토론회에 참석했다. 2차 조사에는 중단 여부에 대한 문항이 없었고 종합토론회 첫날 실시한 3차 조사 결과, 재개는 44.7%, 중단 30.7%, 판단유보 24.6%로 집계됐다. 재개와 중단 의견 사이의 격차가 1차 조사 때는 9%포인트였다가 3차 때는 14%포인트로 늘어난 것이다. 모든 토론과정을 마친 뒤 최종 양자택일 조사에서는 재개 의견이 59.5%로 중단 40.5%보다 19%포인트 높았다. 공론화위가 추출한 오차범위 7.2%포인트를 훌쩍 넘어선 유의미한 수치다.

재개 측이 설득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건설중단에 따른 손실액과 일자리 등을 구체적으로 수치화한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민참여단으로 활동한 송호열 전 서원대 총장은 “재개 측은 초반부터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설명을 하는 데 집중했고, 중단 측은 상당히 감성적으로 접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종 응답을 세부적으로 분석해보면, 비교적 연령대가 높을수록 건설 재개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는 56.8%, 30대는 52.3%, 40대는 45.3%, 50대는 60.5%, 60대 이상은 77.5%가 재개 의견을 냈다. 1차 조사에서 20대·30대·40대는 중단 의견이 더 많았고, 50대·60대 이상은 재개 의견이 더 많았다. 하지만 3차 조사에서는 30대·40대만 중단 의견이 높게 나왔고, 최종 4차 조사에서는 30대마저 건설재개로 기울었다. 끝까지 건설중단 의견이 많은 연령대는 40대뿐이다.

권역별로 보면 수도권은 전국 평균과 유사한 경향을 나타냈고, 호남지역은 건설중단(54.9%)이 재개(45.1%)보다 높았다. 원전이 위치한 부산·울산·경남지역은 재개(64.7%)가 중단(35.3%)보다 높았다.

연령·지역별 응답 결과를 종합하면, 대체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을수록 건설 중단에 힘을 실어줬다는 점이 눈에 띈다. 리얼미터가 성인 30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16일 발표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30대(83.8%)와 40대(75.5%), 광주·전라(84.7%)에서 긍정평가 의견이 가장 높았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뒤늦게 포함된 탈원전 문항

정부가 애초 공론화위에 위임한 결정은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건설 영구 중단 여부다. 이는 공론화위의 법적 근거인 국무총리 훈령부칙에도 명시돼 있다. 전문가들은 공론화위가 주최한 지역 순회 토론회에서 의제 설정에 대한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했다. 공론화 결정 방식은 여러 변수가 작용할 수 있는 특정 원전 건설 여부보다 당위적인 가치 설정에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공론화 방식을 도입하기로 방침을 정해둔 상태였고 중단 여부는 국무조정실이, 탈원전 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책임지도록 이원화했기 때문에 중간에 의제를 바꾸기는 어려웠다.

공론화위가 구성한 시민참여단 대상 설문에는 신고리 5·6호기 건설뿐 아니라 탈원전 정책 방향에 대한 질문도 포함됐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공론화 과정에서 탈원전 정책 자체가 논란이 됐기 때문에 이를 독립 질문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권고안의 효력과는 별개로 최종 보고서에도 원전비중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최종 조사 결과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53.2%, 유지가 35.5%, 확대는 9.7%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으로 탈원전 정책 자체에 치명타를 입을 뻔한 문재인정부에 공론화위가 주는 ‘선물’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하되,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폐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을 준 것이다.

정부는 이 점을 특히 부각시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당·정·청 회의에서 권고안 내용 중 신고리 5·6호기 건설 추진뿐 아니라 원전 축소, 에너지 정책 보완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추진과 탈원전 정책 추진을 같은 비중으로 다뤘다.


높은 참여율 긍정적… 전문가 의견 반영 부족

공론화위는 2만여명을 대상으로 1차 조사를 진행했고, 절반이 넘는 50.1%가 조사에 응했다. 추후 500명으로 압축된 시민참여단의 오리엔테이션 참여율은 95.8%, 최종 합숙토론 참여율은 98.5%를 기록했다. 정부가 시민참여단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하면서 정책결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 의지를 높인 결과로 풀이된다. 시민참여단에게 1인당 85만원의 사례비와 별도의 교통비·숙박비가 지원된 점도 참여율을 끌어올렸다.

공론화위는 보고서에서 “유례없이 다양한 구성원이 모여 하나의 작은 대한민국이 형성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그 결과 숙의 과정에 다양한 관점이 제기됐고,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에 의하여 의견이 바뀌거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공론의 장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이 결정될 공론화위 종합토론회에 지난 13일 충남 천안 계성원서 열렸다. 토론회 참석한 시민참여단이 토론회 진행 방식과 경과보고를 듣고 있다.

반면 공론화 과정 내내 원전과 관련한 전문가와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중단과 재개 측 진영에서 각각 시민참여단에게 같은 분량의 자료를 제공했고, 일부 대표자가 나름의 주장과 의견을 발표할 기회도 제공했다. 그러나 탈핵 시민단체와 원전 지역주민 단체 등이 번갈아가며 절차적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했고, 일부 단체의 보이콧 선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공론화위도 이해관계자들의 이견이 존재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개선착안사항’으로 적시했다. 공론화위는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에 따라 공론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실제로 소통협의회에 참여하는 재개, 중단 양측이 이해관계자를 모두 대표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세준·홍주형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