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을 부르다]임신부 뱃지 보여주면 "그게 뭐"..출산휴가 내면 "벌써 쉬냐"
[경향신문] ㆍ임신부 송지선
※ 언론 보도와 임신 육아 관련 사이트의 사례, 임산부의 인터뷰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입니다.
송지선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찬물 한 컵을 단숨에 마시고 사과 하나를 껍질째 먹는다. 배가 불러오던 5개월경 시작된 지긋지긋한 변비 때문이다. 이제 출산예정일이 딱 일주일 남았다. 소화가 안되어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도, 발이 퉁퉁 부어 신발이 맞지 않는 것도, 밤이면 두세 번씩 깨어나 화장실에 가는 것도, 얼굴과 배의 가려움증도, 갑자기 찌르듯 아랫배가 쿡쿡 아픈 것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골반과 허리의 통증도 이제 일주일 후면 끝이다. 몸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 차라리 얼른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는데, 주변 엄마들이 모두 아기가 배 안에 있을 때가 편한 거라고 말한다.
올해 서른여덟. 물론 대한민국 평균 초산연령보다는 조금 높지만 인터넷 맘카페를 보면 지선씨 또래의 임신부가 드물지도 않다. 그런데 자꾸 노산이니 더 주의해라, 더 검사해라, 더 각오해라, 하는 조언들을 계속 들으니 걱정이 된다. 요즘은 조금만 배가 아프거나 허리가 아파도 진통 간격을 체크해주는 스마트폰 앱을 켜보곤 한다.
배냇저고리와 내복, 홑이불, 속싸개, 손수건 등은 잘 빨아두었고, 친구가 물려준 아기침대는 조립해 부부 침대 옆에 설치했다. 침대 맡에는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온습도계와 국민 모빌도 달았다. 역시 물려받은 바운서와 문짝 장난감, 딸랑이, 촉감인형과 새로 산 아기욕조, 카시트, 유모차도 세탁할 건 세탁하고 소독할 건 소독해 두었다. 그 외에도 체온계, 손톱가위, 젖병, 모유보관팩, 자외선소독기, 유축기, 수유쿠션… 맘카페를 참고해 작성한 1차 육아용품 리스트는 모두 준비했다.
아직 아이가 태어난 것도 아닌데 벌써 돈이 이렇게 많이 들 줄은 몰랐다. 물려받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물려받았고, 몸이 무거워지기 전에 남편과 베이비페어나 창고개방에 가서 행사제품들을 저렴하게 구입했는데도 지출이 컸다. 앞으로 출산 비용, 조리원 비용, 도우미 비용, 아기 분유값, 기저귀값, 병원비… 돈 들어갈 일만 남았다 싶어 조금은 심란하다.
그런데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지선씨의 언니는 “요즘은 아기 키우기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지선씨가 보기에도 조카가 태어났을 때에 비해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지원이 늘어난 것은 맞다. 임신하면 고운맘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데 임신·출산 관련 비용이 50만원까지 지원되는 카드다. 특별한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매달 정기검진은 이 금액으로 거의 충당이 된다. 지선씨도 지난달까지 진료비와 초음파비를 고운맘카드로 결제했다.
보건소에서는 엽산제, 철분제, ‘아기가 타고 있어요’ ‘임산부가 타고 있어요’ 차량 스티커와 임산부 배지를 받았다. 지선씨는 고령 산모라서 임당검사와 기형아 검사인 쿼드검사도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지원 항목은 보건소마다 조금씩 다른데 신생아 옷, 크림, 체온계 같은 육아용품이나 산후도우미 쿠폰을 주는 지역도 있고,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출산지원금도 조금씩 나온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결핵, 간염 등 국가 필수예방접종은 보건소뿐만 아니라 가까운 소아과에서도 무료로 맞을 수 있다고 안내받았다.
사실 경제적인 부담은 예상하고 각오했던 부분이라 그런지 힘들어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선씨가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세상의 차가운 시선이다. 지선씨는 출산휴가 전까지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다녔는데 임산부석이 비어있는 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임산부 배지를 달지 않았는데 입덧을 시작하며 몸이 너무 힘들어지니 어쩔 수가 없었다. 가방에 배지를 달았고 눈에 띄게 배도 불러왔지만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차라리 모르는 척 있어주면 고마웠다. 헛기침을 하고 배를 훑어보며 불편하고 못마땅해하는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 번은 노약자석에 앉았더니 어떤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거칠게 지선씨의 머리를 밀쳤다. 지선씨가 임산부 배지를 보여주며 임신했다고 말하자 “그게 뭐?” 하며 더 위협하는 바람에 그냥 자리를 피해버렸다. 간혹 지하철 노약자석 픽토그램 중 임신부와 아이들 그림에만 X가 그어져 있는 것을 보면 서운함을 떠나 위협을 느낀다. 임신했다는 것, 아이를 동반했다는 것만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고 자신을 방어할 힘도 부족한 이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추석에는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에게 내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왜 이렇게 살이 쪘냐, 임신했어도 운동은 해야 한다, 옷은 왜 그렇게 붙게 입었냐. 또 음식을 잘 먹으면 함부로 먹는다고 하고, 조심하면 유난 떤다고 말했다. 배 속의 아기가 아들이라고 하자 혀를 차며 “요즘은 딸이 있어야 한다”고 다들 한마디씩 해서 괴로웠는데, 딸 가진 후배는 명절 내내 “그래도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하소연을 듣고 있던 아기 엄마 동료는 아기가 태어나면 더 심할 거라며 한숨을 쉬었다. 아이를 함부로 만지고, 육아 방식에 참견하는 사람도 정말 많고, 아이가 실수하면 이해하고 가르치기보다 비난하고 거부하는 세상이라며 “요즘 노키즈존 정말 많아진 것 알고 있지?” 한다.
뉴스에서는 날마다 저출산이라고, 계속 출산율이 이 정도에 머문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소멸될 거라고 심각하게 말한다.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고, 여성들이 배우자감을 하향 선택할 수 있도록 은밀하게 사업을 진행하자고 한다.
그런데 정작 아이와 그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들에게 너무 차갑고 함부로다. 그 생각이 든 후부터 지선씨는 임산부 배지도 더 잘 보이는 곳에 달고 노약자석이 비면 가서 앉는다. 임신부가 거리를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교통약자석에 앉고, 자기 일을 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
지선씨는 이번주부터 출산휴가에 들어갔고, 석 달의 출산휴가가 끝나면 1년 육아휴직을 할 생각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출산휴가도, 육아휴직도 최대한 쓰라고 했던 팀장은 정작 휴가계를 내자 벌써 쉬느냐고 되물었다. “원래 첫애는 예정일보다 늦게 나온다”며 계속 다음주까지만, 다음 행사까지만, 그 다음 워크숍까지만, 하며 휴가를 미루라고 했다. 팀장은 자기 아들도 예정일 열흘 뒤 결국 수술로 태어났다고도 하고, 1년이나 육아휴직을 하면 원래 자리를 보장할 수 없다고도 했다. 지선씨는 스트레스로 배가 뭉치고 아파서 출근 준비를 하다가 응급실에 가기도 했는데 그럴수록 육아휴직을 쓸 권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노동자가 신청할 경우 반드시 부여해야 하는 강행법규다.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지선씨 회사에는 이제까지 육아휴직을 쓴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작은 회사에는 애초부터 남직원이 대다수이고 그나마 있던 여자 선후배들은 결혼, 임신, 출산 과정에서 많이 퇴사했다. 남아있는 엄마 직원은 출산휴가 한두 달 만에 출근한 사람들이다. 그때는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 같다.
지선씨는 또래의 총무부 과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과장이 함께 나서주어 지난주에 휴가계를 냈고, 이어서 1년 육아휴직을 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휴직계도 이미 내놓은 상태다. 지선씨는 마지막 출근 날 과장에게 지갑을 선물했다. 과장은 산후조리를 충분히 못한 탓인지 자신은 아직도 발목과 무릎이 아프다며 무조건 잘 쉬라고, 많이 쉬라고, 눈치 보지 말라고 했다. 지선씨는 휴직 끝나면 다시 만나자고 인사했다. 1년 후, 지선 씨가 무사히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면 회사의 육아휴직 1호 사원이 된다. 일단 1호가 나오면 2호, 3호, 4호가 계속 나올 수 있겠지 생각한다.
이번 주말, 지선씨 부부는 대청소를 하고 출산가방을 챙길 것이다. 며칠 전 소아과의사가 쓴 육아서와 젊은 부부가 함께 쓴 육아일기를 한 권씩 샀는데, 그 책들도 남편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이다.
<조남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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