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순례기] '내포' 가야산의 무정설법無情說法— '나는 너' 다
비산비야非山非野.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는 이렇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땅. 똑 부러져서 오히려 추상적이다. 내가 처음으로 본 비산비야는 그렇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내 차를 가지게 된 다음 안면도를 가면서 처음으로 ‘비산비야’를 보았을 때, 그곳을 흐르는 공기는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그곳에는 산바람, 들바람, 강바람, 바닷바람이라고 단정해서 이름 붙일 수 없는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섞였지만 무질서하지 않은, 그 모든 것이 언제든지 다른 모든 것으로 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산의 덩치가 마을의 집들과 비슷하게 보였지만 분명 그것은 산이었다. 한편으론 산도 집도 들판의 한 부분 같기도 했다. 그곳의 모든 사물들은 서로를 밀어낼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산, 들, 바다의 경계가 선명한 동해안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는 퍽이나 생소한 풍경이었지만, 편안했다.
가야산(678m)은 비산비야 가운데 우뚝한 산이다. 금북정맥의 산 가운데 오서산(790m) 다음으로 높다. 충남 지역을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대각선으로 양분하는 금북정맥은 청양 어름에서 북진해 홍성, 예산, 서산, 당진을 지나 태안반도에서 서해로 스며드는데, 서산시와 예산군의 경계에 가야산이 솟았다. 이 산이 예로부터 호서 제일의 산으로 기림을 받은 건 단순히 대부분 200~300m에 불과한 산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품의 그윽함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자락의 동, 서쪽으로 너른 땅 이른바 ‘내포’를 품에 벌게 안고 있는 것이다. 가야산은 내포의 중심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지역의 ‘내포’가 언급되는데, 가야산 일대의 내포를 가리킬 때는 ‘충청도 내포’ 또는 ‘호서 내포’라고 칭했다. 실록 기사의 주된 내용이 쌀의 생산과 조운漕運, 왜구의 침입에 관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현대에 이루어진 대규모 간척 사업 이전에도 이곳은 곡창지대였고 해상로의 주요 길목이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두루뭉술하게 일컬어지던 내포를 구체적인 고을 이름까지 적시해 표현한 옛 문헌은 <택리지>가 처음일 것이다. 그 내용을 옮기면 이렇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아울러 내포라 한다. 지세가 한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고 큰 길목이 아니어서 임진년과 병자년 두 차례 난리에도 여기에는 적군이 쳐들어오지 않았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다. 또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하므로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가 많다.’
<택리지>에서 언급하는 가야산 앞뒤의 열 고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야산 서쪽의 결성·해미, 북쪽의 태안·서산·면천·당진, 동쪽의 홍주·덕산·예산·신창 10개 고을이다. 지금의 행정 구역으로 태안, 서산, 당진, 홍성, 예산, 보령 그리고 아산의 일부가 ‘내포문화권’에 든다. 가야산은 예나 지금이나 내포의 중심이다. 가야산이 있음으로써 내포는 하나의 문화권으로 결속될 수 있었다. 가야산 자락에 유난히 저수지가 많은 것으로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동쪽 자락의 상가저수지·옥계저수지, 서쪽 자락의 산수저수지·황락저수지·신창저수지·용비저수지는 내포평야의 젖샘이다.
조선시대에는 일찍이 천주교가 들어온 곳이다. 가야산 마루에 서면 서쪽 기슭에 해미읍성이 보이는데, 그곳은 천주교 순교 성지이기도 하다. 대원군에 의한 천주교 박해 때 수천 명의 교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듯 가야산은 고대부터 내포 사람들과 고락을 함께했고 지금도 그렇다.
가야산 등산은 북쪽으로 서산시 운산면의 개심사, 보원사지, 용현자연휴양림을 들머리 삼아 일락산을 경유해 석문봉에 올랐다가 원점회귀하거나, 능선 종주를 한 다음 예산군 덕산면 방면으로 하산할 수 있다. 동쪽 덕산면의 상가리를 기점으로는 원효봉, 가야봉, 석문봉, 옥양봉과 연결되는 길이 열려 있다. 옥계저수지에서 서원산을 경유해 옥양봉, 석문봉, 가야봉, 원효봉을 올랐다가 덕산온천으로 내려오는 긴 코스(약 15km, 8시간 안팎)도 있다.
무상한 권력의 그림자를 지나자 막 피기 시작하는 억새꽃이 가을볕을 쬐고 있다. 역시 의구한 건 산천뿐이다. 길바닥에는 아람이 벌어진 밤송이가 떨어져 있다. 아직 산색은 여름이지만 초목들은 각자 뿌리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부드럽게 오르는 숲길로 들어선다. 바닥에 닿는 햇빛이 별빛처럼 부서질 정도로 울창한 숲이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사실 가야산을 오면서 기대한 것은 정상에서 내포의 들판을 조망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니다. 한 달 뒤라면 단풍도 무척 아름다울 것 같다. 산벚나무는 이미 조금씩 물이 들기 시작했다. 계곡의 물소리는 잦아들었지만 목을 축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산비야非山非野. 부정否定을 뜻하는 ‘비非’라는 글자가 이리도 매력적으로 쓰이는 예는 또 없을 것 같다. 산, 강, 호수, 바다는 모두 수평으로 수렴된다. 비산비야는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땅’이 아니다. 산은 들이 되고, 들은 산이 되는 땅이다. 산이 들이고 들이 산이다.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경계다. 나我를 허물어 ‘서로 주체’가 되는 원융의 대지다. 불가에서 말하는 색色 즉 공空은, 서로 스며들어 존재하는 만물의 실상을 이르는 것이다. 비록 내 마음의 경계가 그곳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가야산이 보여 주는 내포는 그것을 말한다. 내포의 무정설법無情說法이다.
내포는 산과 들, 바다와 땅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곳이다. ‘나와 너’도 사실은 그렇게 존재한다. 가야산은 그것을 일깨우는 교실이다.
▶ 실컷 놀았는데도 저녁… '한나절 행복' 찾아 춘천으로, 파주로
▶ 자동차 타이어에 새겨진 숫자의 비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