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웅산 수치 리더십 불가피하다"

입력 2017. 10. 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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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민 코 나잉’ 인터뷰… 소수민족 로힝야 무장투쟁으로 시작된 수치의 위기
“민주정권 들어섰지만 여전히 군부 강해. 이번 사태로 이익 보는 이들 있다”

2017년 8월 로힝야 무장세력으로 추정되는 집단이 경찰서 초소를 잇달아 습격한 뒤, 미얀마 정부군과 로힝야 반군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이 사태로 7만 명 넘는 로힝야 난민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 난민캠프 등으로 도피했다. 미얀마의 해묵은 인권 현안인 ‘로힝야 사태’가 재발한 것이다. 사태가 확대되자, 미얀마의 실질적 최고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실은 미얀마 군의 로힝야 학살은 가짜 뉴스이며 로힝야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민 코 나잉 ‘88세대 평화와 개방사회’ 지도자는 1988년 8월8일 일어난 미얀마 민주화운동인 ‘88 민주항쟁’ 버마의 주역인 전국버마학생연합 의장으로 활동하다 20년형을 선고받았다. 비폭력과 평화투쟁을 강조하던 그는 2007년 샤프란 항쟁으로 이어진 결정적인 시위 행진을 조직한 혐의로 6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2012년 1월 석방됐다. 수치 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채 재야에 머물고 있는 민 코 나잉은 이번 대담에서 미얀마 군부의 영향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수치의 리더십이 불가피함을 강조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미얀마 민주화에 안타까운 심정도 내비쳤다. 이 대담은 성공회대 아시아비정부기구학전공 MAINS의 아시아평화연합(Asian Peace Union) 프로젝트 일환으로 2017년 10월2일 미얀마 양곤 소재 ‘88세대 평화와 개방사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민 코 나잉은 2008년 광주인권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_편집자
박은홍 제공

로힝야 문제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고조돼 있다. 9월 말 재한 미얀마인들도 서울 유엔(UN) 사무소 앞에서 로힝야 무장세력의 테러 행위를 규탄하고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미얀마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는데.

나는 (로향야족의 주 거주지인) 아라칸 지역(라카인주)에서 7년6개월 정도 살았다. 그래서 그곳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벵갈리(로힝야)와 아라칸 주민들의 관계도 어느 정도는 안다. 내가 그곳에 있을 때 그들은 자신을 ‘벵갈리’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갑자기 ‘로힝야’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물론 자신을 로힝야라고 간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자신을 벵갈리라고 밝혀왔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놀랍다. 벵갈리나 로힝야라는 단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벵갈리는 방글라데시 출신을 의미한다. 반면 로힝야는 탄압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내가 로힝야라는 단어를 말하는 순간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는다. 로힝야라고 했을 때 난민 지위를 쉽게 얻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아라칸은 석유 발굴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다. 경제적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큰 지역, 투자를 하면 큰 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임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아라칸은 중국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로힝야 문제를 무슬림과 불교의 대립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건 절대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아라칸의 또 다른 소수민족인 까만도 무슬림이다. 그들은 아라칸 지역의 왕조시대부터 왕을 지키는 군대로 활약하며 소수민족으로서 인정받았다.

“무슬림과 불교의 대립 절대 아니다”

어쨌든 로힝야 문제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인권 문제로 부상해 있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8월 틴 쩌 대통령에게 로힝야 문제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최종 보고서에 대한 지지까지는 어렵지만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아라칸에서 내가 직접 보았던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로힝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내부 화합을 촉구하는 내용의) 해결 방법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보고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부족하면 추가 내용을 요구하고 제안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로힝야 무장단체가) 테러라는 방법을 사용한 것은 잘못이다. 로힝야들이 원하는 것은 지방자치인 모양인데 코피 아난 보고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이 시민인지 아닌지를 조사한다. 이후 시민권을 받을 권리가 인정되면 시민권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살 수 있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로힝야 무장단체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보고서 내용에 불만 갖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가.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국제 시민사회의 관심을 받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웅산 수치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이 문제를 지금처럼 만들었다. 아웅산 수치는 민주주의 리더이다. 민주화를 위해 몇십 년간 싸워온, 미얀마뿐만 아니라 전세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이번 사태로 이익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유럽연합(EU) 국가에서 무슬림을 둘러싼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고 국제사회가 무슬림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 로힝야 문제에 개입해 미얀마가 무슬림을 탄압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즉 무슬림 편에 서서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인권과 평화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종족 문제 관리 못하면 군부 재집권 가능”

신생 민주정부가 경제·종족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군부가 재집권할 수 있다. 실제 다른 나라에서 그런 예가 많았다.

중요한 지적이다. 물론 군부(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 앞의 모든 이야기들의 의미가 작아지거나 없어져버린다. 한국은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미얀마 상황을 말하자면, 마을의 어떤 집에 화재가 났는데 물을 길어서 함께 불을 끄려는 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틈을 타 여기 집을 약탈하려 달려들고 있다.

지난 2월 수치가 아라칸 지역에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군대를 보내라고 말했으나 군부는 군대를 파견하지 않았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민간정부의 말을 군부가 이행하지 않는 어려운 상황을 생각해보라. 군부와 이번 사태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말해줄 증거가 없기 때문에 군부 개입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군부의 의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수치로 화제를 돌려보자. 그가 최측근인 틴 쩌를 대통령으로 세우고 국가자문역이 되어 대통령 위에서 군림하고 있다. 그로 인해 미얀마 대통령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당신과 같은 민주화운동 세대를 위한 배려도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수치처럼 노벨평화상을 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을 같이했던 동료들과 후속 세대에게 배려를 아까지 않았다. 이러한 수치의 행보로 로힝야 문제가 발생하기 전부터 실망감을 토로하는 의견이 많았다.

동의한다. 현 정권의 한계다. 지금은 한 사람 중심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 팀으로 가야 한다. 국제사회의 눈에서도 잘 보이는 팀이 되어야 한다.

군부의 정치 개입을 노골적으로 제도화한 현행 헌법이 문제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법치를 비껴가는 수치의 통치 방식에 ‘88세대’가 건설적 비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완전한 원 모양이 되어야 할 우리의 현행 헌법이 비뚤어진 불완전한 모양이라는 점이 문제다. 현재의 헌법을 준수하는 문제를 일그러진 찻잔의 뚜껑이 잘 닫히지 않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다. 나는 수치에게 자문, 제안 등을 계속해왔다. 수치는 우리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함께하려면 정계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시민사회의 입장을 대변해 활동하는 것이 좋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수치를 지지해야 하는 시기이다.

“수치 다음 정치 지도자가 없다”

과거 테인 세인 개혁 군부 정권 시절에 일했던 인물이 현재 교육부 장관이다. 시민사회는 이런 모순적 상황에 대해 직언하지 못한다. 시민사회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것 아닌가.

동의한다. 교육뿐 아니라 예산 부족 또한 50년 이상 축적된 문제다. 미얀마에선 현재 갖고 있는 제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현 제도의 틀 안에서 제대로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일반 시민들의 생각이나 태도 등이 매우 중요하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들의 옷을 모두 벗기고 체벌해 문제가 됐다. 미얀마 사회는 옷을 벗긴 것만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옷을 벗긴 것과 체벌 두 가지 모두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미얀마의 사고방식은 이런 수준이다. 일반 시민들의 사고방식을 내가 장관, 국회의원이 되어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그것이 해결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는 엄중한 상황이다. 이 시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군부가 권력을 다시 얻을 수 있다.

수치 다음의 정치 지도자가 부재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미얀마는 ‘지도자’에만 너무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느끼는 문제는 정보부의 활동이 미약하다는 점이다. 정보부에서 정책에 필요한 자료 섭외, 홍보 등을 소홀히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군부 활동의 문제점이다. 이들이 말하는 ‘국가 화해’(National Reconciliation)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전 정부가 만든 제도하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현재까지 계속 업무를 보는 것은 변화의 걸림돌이다.

현행 헌법에선 군부가 자동으로 전체 의석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수치의 대통령 취임을 가로막고 있다. 헌법 개정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개정은 물론 필요하다. 현재 문제되는 점들을 고치는 데 ‘21세기 필롱회담’(미얀마 내 여러 민족 간의 화해를 위한 정치 대화)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필롱회담이야말로 일반 시민들이 합법적으로 정치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헌법 개정과 연방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현재 나도 중립 집단으로서 참여하고 있다. 주로 소수민족 분쟁과 관련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대부분 긍정적으로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력 대신 평화적 해결법 찾아야”

그 대화에서 로힝야 문제도 다루어지는가.

135개 민족 중심의 문제가 다루어지기 때문에 로힝야 문제는 언급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시민권을 인정하는 수준까지가 될 것이다. 나도 (소수민족인) 몬족 출신이지만 내 민족을 드러내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민족주의는 민주주의, 더 나아가 전세계에 위협을 줄 수 있는 문제이다. 로힝야 문제를 시민권 문제로 다가서면 해결이 단순해질 수 있다. 필롱회담 안에서 우리는 지역, 지방 단위의 공동 가치에 공통된 의견을 갖고 있다. 중앙집권적 정부가 아니라 연방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한다. 그러던 중 로힝야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제는 아주 복잡하다. 무장투쟁 집단의 뒤에 중국, 유럽 등 여러 세력이 있을 수 있다.

아라칸 지역은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로힝야가 그들 고유의 역사와 언어 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할 자료가 제시되고 있다

그들에겐 출판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어떤 주장이 출판됐다는 이유로 그 안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는 힘들다.

국제사회에서는 로힝야가 다른 평화적 선택이 없어 결국 무력을 사용했다고 이해하고 있다.

사실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회를 찾아야 한다.

진행·정리=박은홍, 성공회대 대학원 MAINS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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