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호황 이어가려면 수요·유가 변동성 '고부가'로 극복해야

나건웅, 김기진 2017. 10. 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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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최근 웃고 있지만 ‘반짝 호황’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다. 전문가들에게 향후 업계가 넘어야 할 불안 요소와 중장기 성장 전략에 대해 물었다.

▶석유화학 업계 전망은

▷글로벌 경기 호조, 당분간 ‘맑음’

향후 업황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유는 두 가지. 산업구조상 공급 증가 속도가 더딜 것이란 점, 그리고 글로벌 경기 호조에 따른 수요 증가 전망에서다.

석유화학은 대규모 장치 산업이다. 공장을 짓겠다 결정하고 실제 가동하기까지 짧게는 3~4년, 길게는 6~7년이 걸린다. 따라서 수요가 증가할 때 공급이 이를 따라잡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2010년대 초반 이른바 ‘셰일가스 혁명’으로 미국 화학 기업들이 셰일가스에서 추출한 에탄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쓸 수 있게 되면서 대부분 기업은 과감히 설비 증설을 결정하지 못했다. 이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졌고, 결국 단기간에 공급이 증가하긴 어려운 구조가 됐다. 반면 화학제품 수요는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최홍준 한국석유화학협회 연구조사본부 과장은 “글로벌 수요가 연평균 2.5~3.5%씩 증가하는 중이다. 북미와 유럽, 남미 등 경기도 개선되고 있어 수요가 더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화학제품 최대 수요국인 중국 경제도 연착륙하고 있어 당분간 수요가 급격히 감소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불안 요소

▷中 자급률·美 ECC 신규 물량↑

단, 장밋빛 미래만 그리고 있기엔 불안 요소도 적잖다.

석유화학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자급률 상승’이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된다. 지난해 국내 석유화학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46.3%에 달했다.

올 9월(1~20일 기준) 수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2%나 늘었다. 이런 가운데 가파른 중국의 자급률 증가 속도는 국내 업체의 입지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은 지난 2010년 65%에서 2016년 80%로 상승했고 2020년에는 9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기술·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사업부문부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우려다.

글로벌 신규 물량이 늘어나면서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 ECC(에탄분해설비) 증설이 대표적이다. 올 하반기부터 미국 내에서만 총 6개 ECC 설비 가동이 예정돼 있다. 2018년 새로 공급될 전 세계 에틸렌 물량은 약 870만t.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이 중 미국 ECC가 차지하는 물량이 61%로 가장 많다. 임지수 연구위원은 “2018년은 수요보다 유효 공급이 웃돌 것으로 보인다. 불황으로 이어질 만한 타격은 아니겠지만 업계 영업이익률이 다소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미국 ECC 증설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지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ECC 신규 증설로 에탄가스 수요가 증가해 가격이 오를 수 있다. 국내 기업을 비롯한 NCC(나프타분해설비) 업계 원가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미 ECC 증설은 이른바 ‘절름발이’다. 에틸렌 계열 제품만 많이 나올 뿐 고무나 프로필렌 제품은 생산하지 못한다. 길게 보면 오히려 NCC 증설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백영찬 KB증권 애널리스트 의견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역시 불안 요소 중 하나다. 국내 유화업계의 대미 수출 비율은 5% 정도. 직접적인 타격은 크지 않겠지만 미·중 교역 마찰에 따른 간접 피해가 더 우려된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중국산 소비재가 감소하면 우리나라의 대중 석유화학 중간재 수출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올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산 신발에 대한 관세를 45% 인상할 경우, 국산 합성고무 제품 대중 수출량은 0.7% 감소하는 것으로 도출됐다.

조 부연구위원은 “미·중 마찰과는 별개로 한미 FTA 재협상도 업계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대미 교역량이 크지 않지만 관세가 인상되면 최종재 수출 단가 경쟁력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제 다시 튀어오를지 모를 유가도 복병이다. 최근 업계 호실적의 주요인이 저유가에 따른 ‘마진 개선’이란 점에서 더 그렇다.

김은진 화학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최근 NCC 주력의 국내 기업 호황엔 저유가에 따른 반사이익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향후 유가 전망은 쉽지 않다. 북미 셰일가스 생산량 조정,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합의 등 여러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가 변동에 따라 업황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성장 위한 ‘중장기 전략’은

▷포트폴리오 다변화·고급 인재 양성

여러 불안 요소에도 흔들림 없이 성장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범용 석유화학 중심 수익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가장 많이 주문했다.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을 통한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단 얘기다. 현재 국내 유화업계 수출 중 범용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이상으로 추산된다. 범용 제품은 기술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원료 가격이나 경기 변동에 상대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점이 있다.

독일계 글로벌 화학회사 ‘바스프(BASF)’는 사업 다변화 모범 사례로 꼽힌다. 바스프는 1990년대 중반부터 연구개발(R&D)을 통한 설비 효율화와 경쟁사 간 사업 교환 등을 통해 사업구조 재편을 발 빠르게 진행했다. 섬유, 범용 플라스틱 지분, 스티렌 계열 등을 매각·분사하고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기업 인수에 9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이에 힘입어 바스프는 최근 10년간 연평균 8%대 매출 성장과 10%대의 영업이익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스페셜티 개발·생산을 위한 R&D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상반기 기준 롯데케미칼과 한화케미칼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각각 0.57%, 1.3%로 나타났다. 바스프(3.8%), 다우케미칼(3.3%) 등 글로벌 선진 화학회사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M&A를 통해 새 먹거리 찾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은진 수석연구원은 “스페셜티 제품 비중을 높이면 고수익과 낮은 변동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특정 분야를 거론하긴 어렵지만 글로벌 화학 기업이 집중하지 않는 사업 부문에서 투자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틈새제품 기술 경쟁력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이 국내에도 많다. 이들과 적극적인 협업과 M&A를 통해 미래 성장동력 찾기에 나서볼 만하다”고 말했다.

임지수 연구위원은 “선진국 화학 기업들은 법인 산하 벤처캐피털이나 신사업육성센터 등의 조직을 개설해 신사업을 전담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물론,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당장 매력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경영진의 명확한 의지와 전략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고급 인재 양성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된다.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 등 사회구조가 급변함에 따라 그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란 점에서다.

“생산 공정이 복잡한 석유화학은 높은 숙련도가 요구되는 업종이다. 그런데 최근 고령화로 인해 경험 많은 고급 인력이 대거 은퇴하고 있다. 노하우를 전수하고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춘 융합 인재를 육성하는 사내 매뉴얼과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 조용원 부연구위원의 제언이다.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29호 (2017.10.18~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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