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더블데이트] '리어왕' 안석환·손병호 "셰익스피어 진수, 보여드립니다"

이재훈 입력 2017. 10. 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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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 중 두 딸에게 배신당한 뒤 폭풍이 휘몰아치는 황야로 쫓겨난 '리어왕'.

대학로는 물론 TV·스크린을 넘나드는 배우 안석환(58)·손병호(55)가 연극 '리어왕'의 타이트롤을 처음 맡지만,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두 배우는 오는 11월5~26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에서 공연하는 연극 '리어왕'에 주인공 '리어왕'으로 더블캐스팅됐다.

카리스마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안석환·손병호 두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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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세 딸 중 두 딸에게 배신당한 뒤 폭풍이 휘몰아치는 황야로 쫓겨난 '리어왕'. 화려한 부귀영화를 누리던 그는 미친 듯 방황하며 진실과 대면하는 반벌거숭이가 됐다. 광기와 허무와 분노 등의 거친 감정을 뒤섞어야 하는 장면이라 웬만한 공력으로는 소화하기 힘들다.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연극 '리어왕' 주인공으로 더블 캐스팅 된 배우 안석환(왼쪽)과 손병호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연습실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17.10.20.pak7130@newsis.com

대학로는 물론 TV·스크린을 넘나드는 배우 안석환(58)·손병호(55)가 연극 '리어왕'의 타이트롤을 처음 맡지만,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두 배우는 오는 11월5~26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에서 공연하는 연극 '리어왕'에 주인공 '리어왕'으로 더블캐스팅됐다.

영국왕립연극학교 출신 강민재 연출이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오리지널로 재현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던진 공연이다. 카리스마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안석환·손병호 두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를 갖게 한다.

단국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특송회사를 다니다 뒤늦게 본격적으로 연기에 뛰어든 안석환은 천의 얼굴로 통한다. 능청스런 연기부터 강렬한 조직 보스, 따뜻한 아빠를 넘나든다. 대학로 대표작은 냉정한 검열관 역을 맡은 '웃음의 대학'과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를 연기한 '에쿠우스'다.

오태석 연출이 이끄는 극단 목화 출신인 손병호는 한 때 악역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서 '손병호 게임'으로 일약 예능 스타로 떠올랐다. 코믹, 드라마, 멜로 등 다양한 장르 연기를 아우르는 건 물론이다. 바리데기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에비대왕', 조광화 연출의 '남자충동'이 대학로 대표작이다.

정확한 발성과 항상 벼려 있는 칼 같은 연기력으로 셰익스피어의 사납고 거친 대사 속에 시(詩)적인 정수를 발견할 안석환·손병호를 최근 대학로 '타스 카페(Tas cafe)'에서 만났다. 색깔이 너무도 달라 '리어왕'을 두 번 보고 싶게끔 만들었다.

Q.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심오하다는 평가를 듣는 '리어왕'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연극 '리어왕' 주인공으로 더블 캐스팅 된 배우 안석환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연습실에서 막바지 연습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2017.10.20.pak7130@newsis.com

A. "내 마음속에 버림받은 아버지의 삶을 찾고 있다고 할까. 내가 출연한 작품 중에서 가장 몸무게를 가볍게 만들 것이다. 보통 새 연극에 돌입하면 63㎏로 시작하는데 이번에 60㎏로 출발하려 한다. 아직 500g를 더 빼야 한다. 군대 있을 때 다음으로 가벼운 체중이다. 버림받고 고생하는 왕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아버지들, 부권을 상실한 아버지들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하고 있다."(안석환)

"나이가 먹고 딸 둘의 아빠가 되니 리어왕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다. 돈과 권력이 없으면 무시당하는데 리어가 실수한 것이지. 결국 가장 중요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직 어린 딸들이 컸을 때를 상상하며 연습하고 있다."(손병호)

Q. 리어왕을 연기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폭풍 장면이 기대되는데.

A. "관객들이 슬퍼하는 장면인데 오히려 나는 거꾸로 해보고 싶다. 평범한 사람은 다가갈 수도 없었던 존재가 가장 밑바닥으로 확 떨어지는 거다. 그래서 그 때 말씨도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바꾸는 중이다. 상스럽지는 않아도 욕을 섞을 수 있다.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이니까. 블랙코미디적으로 표현하고 싶다."(안석환)

"폭풍 신은 하이라이트이기도 하지만 제일 평온해질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헐벗은 리어가 자신이 가난한 자들을 막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그들을 이해하는 장면이기도 하니까. 겉치레를 벗어던진 그 순간을 어떤 포인트로 연기할지 고민 중이다."(손병호)

Q. 연기를 잘해온 뛰어난 배우들이지만 리어왕을 연기한다는 것은 새로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A. "배우는 항상 불안하다. 미래가 명확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스트레스는 직업적인 행복이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고지를 정복할 때 보람이 있다. 작품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해냈다는 만족도가 크다. '리어왕'은 더 그럴 것 같다."(안석환)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뉴시스가 제작하는 연극 '리어왕' 주인공으로 더블 캐스팅 된 배우 손병호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연습실에서 막바지 연습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2017.10.20.pak7130@newsis.com

"연기를 하다보면 자괴감에 들거나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다. TV나 영화를 하다보면 쉬운 것을 찾게 될 수 있으니, 최근 더 연극을 하게 된다. 자기 자신과 연기의 본질을 찾아나갈 수 있다. '리어왕'은 4대 비극 중에서 많이 공연이 안 된 작품이다. 녹아 있는 주제가 많은데 말이다. 이것들을 잘 드러내면 이 시대의 관객들이 셰익스피어를 더 만날 수 있을 것 같다."(손병호)

Q. 안석환씨는 '꼽추, 리차드 3세'(연출 한태숙), 손병호씨는 '로미오와 줄리엣'(연출 양정웅)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접했다. 셰익스피어의 매력은 무엇인가?

A. "가장 큰 건 언어의 매력이다. 언어의 마술성이라고 할까. 셰익스피어 연기는 당시 듣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듣는 사람들은 지금 보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관객이 됐다. 그래서 언어의 유희성과 함께 보여주는 것도 신경 쓰고 있다."(안석환)

"셰익스피어가 이 시대까지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이다. 인간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타당성이 녹아 있다."(손병호)

Q. 맡는 역할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탁월한 연기의 비결은 무엇인가?

A. "의상만 달라졌지 연기는 똑같다는 소리를 안 듣기 위해 항상 노력 중이다. 그걸 위해서 첫 번째로 쉽게 떠오르는 답은 빨리 버린다.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버리는 것이지. 예술은 일상에서 생각하지 못한 것을 꺼내야 한다. 관객이 '안석환이라는 배우가 노력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안석환)

"제가 갖고 있는 연기 가치관이 '변신'이다. 근데 아무리 변신하고 꾸며도 손병호는 손병호다. 제 1의 인물인 셈이다. 캐릭터는 제2의 인물이 될 거다. 진정한 연기는 제1도, 제2도 아닌 제3의 인물을 만드는 데 있다. 진짜 변신을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손병호)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연극 '리어왕' 주인공으로 더블 캐스팅 된 배우 안석환(오른쪽)과 손병호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연습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0.20.pak7130@newsis.com

Q. 두 사람이 함께 작품에 출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평소 친분이 있었나?

A. "병호 씨의 '에비대왕'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정말 대단한 연기자라는 생각을 했다. '리어왕' 연습 때도 지켜보면서 '연기자 손병호는 저렇게 해석하구나'라고 감탄해하며 재미있어 하고 있다."(안석환)

"막역하게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거리를 두고 항상 존경하면서 지켜봐온 사이다."(손병호)

Q. 연기를 막 시작한 후배들이 롤모델로 삼는 대표적인 배우들이기도 하다. 대학로에 막 발을 들인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청한다.

A. "남에게 감동을 주려면, 사람답지 않아야 한다. 인간답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표현했지'라는 생각을 들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동하지 않는다. 서커스를 보고 감동하는 것도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훈련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닌가.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국 도태되지 않아야 한다."(안석환)

"후배들이 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빨리 오디션을 보고,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 역시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무대는 기본이니까. 자신을 분석하고 스스로 에너지를 키울 때 더 좋은 기회가 온다. 신구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딱 10년 만 옆과 뒤를 보지 말고 미친 듯이 앞만 보고 가라고. 버티면 된다."(손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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