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제약·바이오는 '문재인 케어'의 희생양

하선영 입력 2017. 10. 20. 02:17 수정 2017. 10. 20.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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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영 산업부 기자
“정부가 제약사를 구멍가게 취급하는 나라에서 신약 개발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지난해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한 제약사 임원은 정부의 ‘문재인 케어’ 정책에 우려를 표했다. 이 회사는 한 해 1000억원 넘게 연구개발(R&D) 비용을 쓴다.

“신약 후보 물질 5000가지 중에서 임상 단계에 진입하는 물질은 5개에 불과해요. 이 중 판매 허가를 받는 신약은 단 1개고요. 신약 하나 만드는 데 평균 3조원 들어갑니다. 신약 열심히 개발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왜 정부의 재정 부담을 제약사에 떠넘깁니까?”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일명 ‘문재인 케어’ 시행을 앞두고 제약 업계의 반발이 크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 시행을 위한 재정 확충 방안으로 건강보험 지급액에 상한선을 정하는 약제비 총액관리제 등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제약사로 나가는 건강보험 지출 비용을 줄여 재정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제약사는 약값의 상한선을 넘어서는 비용을 떠안게 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최근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도 약값 인하 절감책이 나오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3일 “제네릭(복제약) 약가를 내리는 식으로 5년간 최대 13조8000억원까지 재정 절감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함께 검토해 보겠다”는 긍정적 답변을 내놓았다.

‘문재인 케어’의 골자는 미용 치료 등을 제외한 비급여 치료를 모두 급여로 전환해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 범위가 대폭 커지는 만큼 재정 확보 여부가 이 정책의 성패를 판가름할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약가 후려치기’가 근본적 해결책일 수 없다. 제약사들은 해외 수출을 할 때도 국내 약가를 기준으로 수출 단가를 협의한다. 약가를 인하하는 것은 곧 국익의 손해고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이제 막 존재감을 드러내는 국내 제약사들에도 큰 부담이 된다. 이미 2009년과 2012년에 약가 인하 정책을 시행했는데 또다시 ‘인하 카드’를 검토하는 것도 무리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는 제약·바이오 분야가 한 분과로 들어가 있다. 한쪽에서는 제약·바이오 산업을 정부의 성장동력이라고 해놓고선 반대쪽에서는 산업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산업을 육성한 다음 재정을 확보하는 선순환 정책을 정부가 강구해야 할 이유다.

하선영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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