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100일' 촬영 하루만에 내 오만함 깨졌다"

2017. 10. 1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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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사진집단 ‘꿈꽃팩토리’ 대표 성남훈 작가

성남훈 작가가 18일 서울 서촌 사진위주 류가헌 2층 자신이 찍은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가 성남훈(54·사진)씨는 지난 7월부터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과 춘천기독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100일간 사진과 동영상으로 환자과 가족들을 기록했다. 오는 29일까지 서울 류가헌에서 ‘누구도 홀로이지 않게’ 전시를 통해 그 일부를 소개한다.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지난 8월부터 시행되면서 호스피스 서비스의 대상이 말기암 환자뿐만 아니라 에이즈, 만성간경화 등 비암질환 말기환자까지 확대되었다. 호스피스·완화 의료란 통증 등 환자를 힘들게 하는 신체적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사회적·영적 어려움을 돕는 의료 서비스다.

18일 전시장에서 성씨를 만나 사진을 찍었던 과정과 이 작업의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보건복지부 ‘호스피스’ 홍보 의뢰
“전형적 임종 사진과 달리 찍으려…”
가족·의료진 초인적 희생에 ‘경건’
“숱하게 다닌 전쟁 현장보다 치열”

가족들 ‘작별 추억’ 기록 요청하기도
‘누구도 홀로이지 않게’ 29일까지

성씨는 전주대 객원교수이며 사회공익적 사진집단 ‘꿈꽃팩토리’를 이끌고 있다. 월드프레스포토에서 두번 수상한 국내 유일의 사진가이기도 한 그에게 이번 호스피스 사진 작업은 어떤 의미였을까?

“처음에 보건복지부 쪽에서 사진 작업을 의뢰해 왔을 때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임종에 관한 전형적인 사진들이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롭게 찍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나의 오만함이 사라지는 데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숱한 내전, 분쟁 현장을 다녔다. 1990년대 초반 르완다 내전이 종식되고 후투족 난민의 자이르 캠프를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키상가니 지역에서 대학살이 벌어졌고 유엔의 긴급의료팀과 자원봉사자들이 헌신적인 활동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호스피스의 일상은 그 내전 현장 이상이었다.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들이 초인적인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줬다. 한달이면 이삼십번 이상 죽음과 마주치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은 기본인데다가 오랫동안 누워 있는 환자들을 뒷바라지하는 손길은 경건하기까지 했다.”

그는 촬영 기획부터 마무리 작업까지 꼬박 100일이 걸리는 동안 사진 이상의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은 대개 누워 있거나 휠체어를 타고 다녀 의사소통 자체가 쉽지 않다. 어렵사리 촬영 허락을 받은 분을 다음날 촬영하러 가보니 침상이 빠져 있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허락을 받았을까? “사진은 내가 맡았지만 동영상 담당 2명과 초상권 허락을 구하는 행정업무를 맡은 사람까지 4명이 한팀이 되어 병동을 누비고 다녀야 했으니 환자와 가족들에게 불편했을 것이다. 첫날엔 카메라 메고 침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일단 ‘저 사람들 뭐야?’ 시선을 끌어 익숙해지도록 해야 했다. 그러다가 한 할머니를 만났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2주일 정도 계시다가 8월13일 74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 박옥자 할머니는 친구들과 잘 놀러 다니시고 일상생활을 잘 하시다가 갑자기 발병한 사례였다. 사진 촬영을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오메, 이게 무슨 난리랑가? 이제 스타가 되었네! 어머 또 찍네! 그려, 암 4기 여자가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암 4기는 아무나 하나? 암 4기 여자가 카메라가 3대가 되니까 정신이 없네. 병원에선 혼자 심심했는데”라는 반응을 보였단다.

성씨 일행은 찍은 사진을 이틀 뒤엔 꼭 인화해서 당사자들에게 건네줬다. 박 할머니 덕분에 주변의 다른 환자들도 점차 마음을 열면서 환자 가족이 먼저 찍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와의 마지막 순간으로 남겨놓고 싶었던 것이다. 한 환자의 딸은 동영상도 같이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전시장에서 상영중인 동영상에서 그 딸의 육성이 나왔다. “아빠 너무너무 사랑했는데 내가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나 어렸을 때 아빠가 나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핫도그 사주고 시장 가서 빨간 구두 사준 거 나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아빠가 나를 제일 예뻐했는데…. 둘째 딸을 제일 예뻐하는 게 제일 비밀이었지….” 한 관객이 눈시울을 적시면서 보고 있었다.

성씨는 “연명치료와 달리 호스피스에선 이런 작별이나마 가능하더라. 그게 참 좋더라”라고 했다.

이번 전시는 류가헌의 2층과 지하층 양쪽에서 모두 열리고 있다. 2층에는 환자 사진이 한 장도 없고 풍선, 새, 구름, 제주 바다, 복숭아 등을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성씨는 “환자들이나 가족의 얼굴이 너무 강렬해서 대신 그분들의 꿈을 형상화하여 걸었다”고 했다. 한 가족이 남긴 이야기다. “엄마는 새가 되고 싶었는데 아들 때문에 재가도 못 하시고…. 그놈의 밥 때문에, 아들 밥 챙겨주느라….”

21·28일 오후 4시에는 전시장에서 ‘첫 호스피스 기록 100일의 일화’ 주제로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한다.

글·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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