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시진핑의 신시대 연설에 16차례 언급된 마르크스

예영준 2017. 10. 1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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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10월 혁명으로 ML주의 중국에 전파"
중국 공산당 뿌리 강조하며 이론 무장 촉구
불균등 발전, 양극화 해소에 2기 역량 집중
중국식 사회주의 우월성 증명 나설 듯
시진핑 집권 2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체대표대회가 18일 개막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당대회에서 성과보고를 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신(新)시대’ 진입을 선언하며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이란 목표를 제시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당 대회 개막 연설에서는 그의 세계관과 역사인식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 여러 군데 있다. 그가 18일 연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용어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다. 그는 3시간 24분 동안의 연설에서 이 용어를 69차례 사용했다. 하지만 이는 시 주석이 처음 만들어낸 게 아니라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개혁ㆍ개방으로 시장 경제 요소 도입에 나선 뒤인 1987년 13차 당대회 무렵에 생겨난 용어다. 덩의 뒤를 이은 장쩌민 (江澤民) 전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란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하지만 장ㆍ후 두 사람 때는 별로 사용하지 않던 용어를 시 주석은 여러 차례 언급했다. 바로 마르크스ㆍ레닌(ML)주의란 용어다. 물론 ML주의가 중국 공산당 당장에 언급돼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부정하진 않지만, 개혁ㆍ개방 이후 특히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의 중국 지도자가 ML주의와 중국 공산당의 연계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례는 드물다. 이념적 정체성 보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 주석은 달랐다. 그는 우선 중국 공산당의 뿌리가 ML 주의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창당 96년을 맞은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회고하는 대목에서 “100년전 10월 혁명의 첫 포성과 함께 ML주의가 중국에 전파됐다”며 “중국의 선진분자들이 ML주의의 과학적 진리 속에서 문제 해결의 출로를 발견했고 1921년 중국 공산당이 시대적 요구에 의해 탄생했다 ”고 말했다. ML주의로 무장한 중국 공산당이 아편전쟁 이후 수난을 극복하고 혁명에 성공했고 공산당의 지도아래 중국 인민이 각고의 노력을 한 결과 '중국의 꿈' 실현의 문턱에 와 있다는 게 시 주석이 요약한 중국 현대사의 줄거리다.

시 주석은 이어 중국 공산당이 ML주의 정당임을 여러차례 언급하며 당원들에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학습과 이론 무장을 강조했다. 그가 이날 마르크스란 인명(人名) 혹은 마르크스주의란 용어를 언급한 횟수는 16차례에 이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열린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개막 연설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이날 시 주석은 3만1900여 자에 이르는 보고서를 3시간30분간 읽었다. [EPA=연합뉴스]
시 주석이 ML주의를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총서기로 선출된 뒤에도 ”소련과 소련 공산당, 레닌과 스탈린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적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라며 “이는 우리의 사상을 교란함과 동시에 당 조직에 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번 당대회 연설에서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모순이 출현한다”며 먹고 입는 문제가 해결된 이후 나타난 ‘불균형 발전’을 새로운 모순으로 규정했다. 극심한 계층 양극화와 지역간 격차 등의 문제 해결에 집권 2기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평등’이념에 대한 지향을 드러낸 대목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이 “중국 공산당의 생존을 위해 ‘디지털 레닌주의’의 실현을 꾀하고 있다”(18일자 월스트리트저널)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의 싱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의 제바스티안 하일만 연구원은 이 신문에 “시 주석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해 과거의 오류를 수정하고 중국 경제의 세세한 부분을 관리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의 이념의 또다른 축은 중화주의다. 시 주석은 2012년 집권 초기부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나 ‘중국의 꿈’을 제창하며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내 왔다. 이번 연설에서도 중국 문화 전통에 대한 긍지와 계승을 여러 곳에서 언급했다. 반면 “개인주의, 분권주의, 자유주의를 단호히 방지하고 배격해야 한다”며 서구식 가치관에 대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서구식 제도 도입을 통한 정치 개혁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중국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워싱턴포스트의 전 베이징 지국장인 존 팜프레트는 “시진핑 주석의 사상은 고대 왕조 시대의 중국 사상과 스탈린 시대 급진사상의 혼성곡”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시 주석은 당을 유지하기 위해 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스탈린의 가르침에 충실하다”며 반부패 캠페인과 사상 통제 등 강권 통치를 스탈린 시대에 비유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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