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2년만에 국가비상사태 끝..강력한 대테러법으로 비상사태의 영구화

이인숙 기자 2017. 10. 19. 17: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프랑스 군인이 지난 4월 20일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경찰을 공격한 총기 테러가 일어나자 경계를 서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2015년 파리 테러 이후 6차례나 연장되며 2년간 계속된 프랑스의 ‘국가비상사태’가 다음달 1일로 끝난다.

그러나 프랑스 시민들에게는 비상사태 못잖게 일상을 구속할 더 강력한 대테러법이 기다리고 있다. 파리 테러 이후에도 남부 휴양도시 니스에서 트럭이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고, 북부 루앙의 한 성당에서 신부가 잔혹하게 살해되고, 파리의 ‘심장’ 샹젤리제 대로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는 등 테러가 일상이 되는 사이 프랑스는 불안과 공포 앞에 자유를 내주기로 선택했다. 대테러법은 국가비상사태를 영구화하고 테러 위험을 이유로 무슬림 차별을 제도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프랑스 의회는 18일(현지시간) 국가비상사태를 대체하는 ‘국가안전 및 대테러전 강화법’을 통과시켰다. 이달 초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이날 상원에서 찬성 244대 반대 22로 통과됐다. 법안은 치안을 맡은 공권력의 재량권을 대폭 강화했다. 국가비상사태 상황에서 경찰은 ‘공공질서와 안녕’에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한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법원의 영장 없이 가택연금하거나 집을 수색할 수 있었다. 대테러법은 더 나아가 구체적 범죄 혐의가 없어도 이슬람 극단주의에 동조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의 이동을 제한·감시하도록 했다. 경찰에 지목된 용의자는 집이나 거주지 주변 동네, 도시 밖으로 최대 1년까지 나갈 수 없고, 매일 한번씩 행적을 보고해야 한다. 만약 지정된 범위를 넘어 문 밖이나 도시 밖으로 나가면 전자팔찌가 채워진다. 경찰은 또 법원의 영장을 받아 테러범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시민의 집을 수색하고, 4시간까지 구금해 물건이나 개인정보를 압수할 수 있다.

공항, 기차역, 항구와 국경 지역 반경 10㎞ 지역까지 경찰의 불심검문을 허용한 것은 큰 논란을 부른다. 프랑스는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이 적용되는 곳이다. 인권단체들은 이민자와 무슬림이 불심검문의 주요 대상이 될 거라고 우려한다. 경찰은 집회장·공연장 등 테러의 타깃이 되는 장소나 행사장을 봉쇄할 수 있고, 입장하는 사람들은 수색을 받아야 한다. 명확한 증거가 없어도 성직자가 설교한 사상이나 이론만으로도 테러를 부추기거나 미화한다고 판단되면 당국은 종교 시설을 6개월 동안 폐쇄할 수 있다. 사실상 공권력의 자의적 판단에 맡긴 셈이다. 이 법의 처벌조항은 매년 의회의 검토를 받아야 하고 효력은 2020년 말이면 종료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경찰 및 무장경찰 500명을 초대해 안보에 관한 연설을 하며 대테러 대응 방안을 내놓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파리 엘리제궁에 경찰 500명을 초대해 안보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대테러법은 우리의 가치와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테러리즘과 싸울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 및 무장경찰을 1만명 증원하고, 경찰 속의 별도 조직인 ‘일상보안경찰(PSQ)’을 신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PSQ의 구체적 위상과 역할은 공개하지 않고 “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지역과 거주민에 대해 상세히 파악하고 그들을 보호하게 될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사건·사고가 있을 때 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지역의 모든 움직임을 파악하는 ‘반감시’ 조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각과 협의해 이슬람 극단주의에 맞설 새로운 국가계획을 내놓겠다고도 예고했다.

AFP통신은 “대테러법이 통과되는 데 시민의 저항이 크지 않았다”며 “지난 3년간 테러가 계속되면서 강경해진 분위기를 반영하는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여론조사기관 피두시알·오독사 최근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시민의 62%는 대테러법이 통과되면 기본 자유가 침해될 것을 우려한다고 답하면서도 89%가 법안이 시행되면 보안이 개선될 거라고 답했고 57%가 법안에 찬성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6월 프랑스 정부가 법안을 내놓자 “비상사태를 완전히 끝내는 대신 정부는 법원의 실질적인 감독을 받지 않는 엄청난 권력을 영구적으로 만들려 한다”며 “비상권력을 정상화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피오누알라 니 알른 유엔 테러대응 인권보호 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달 말 심사를 앞둔 프랑스 의회에 서한을 보내 “비상권력의 정상화는 프랑스의 인권보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법률 조항들이 이동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