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朴 감방' 조사도 없이 '언론플레이'만 한 MH그룹, 의도는

정명원 기자 2017. 10. 1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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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인권침해’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발단은 CNN 보도(정확히 말하면 방송된 보도가 아니라 인터넷용 기사)였습니다. CNN은 박 전 대통령의 국제법무팀 MH그룹이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제출할 보고서 초안 내용이라면서 “박 전 대통령이 더럽고 차가운 감방에 갇혀 있으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도록 불을 계속 켜놓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있고, 제대로 된 침대에서 잠을 못 자 질환이 더 악화됐다”고도 했습니다. CNN 보도 내용만 보면 마치 MH그룹이 제3자를 통해 박 전 대통령 감방을 조사해서 쓴 보고서처럼 보입니다. 국제법무회사의 보고서를 CNN이라는 언론이 보도했으니 기정 사실처럼 인용돼 국내에 보도됐고, 논란이 됐습니다.

 그런데 SBS 취재팀이 하나씩 팩트를 따져보니 MH그룹의 ‘언론플레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우선, SBS가 받은 MH그룹 답변서를 보면 이들은 구치소에 있는 박 전 대통령 상태를 조사한 적이 없습니다. 공식 문건을 입수한 적도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 보도됐거나, 공개된 정보를 종합해서 작성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기본 팩트부터 ‘유령’이었던 셈입니다.

MH그룹이 SBS 취재팀에 보내온 답변서 일부


법무부도 반박자료를 냈습니다. “바닥 난방시설과 TV, 관물대, 수세식 화장실 등이 있는 수용시설에 있고, 취침시간에는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정도로만 조도를 낮추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박 전 대통령 감방은 다른 수형자 6명을 수용할 공간을 개조해 혼자 쓰고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특혜 논란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법무부는 적절한 의료지원도 받고 있다며 CNN 보도 내용을 부인했습니다.  

그렇다면 CNN에 자료를 넘긴 MH그룹은 어떤 회사이고 누가 여기에 박 전 대통령 관련 대응을 요청했을까요?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이 이런 걸 의뢰한 적도, MH그룹을 접촉한 적도 없다고 했고 MH그룹도 답변서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다고 했기 때문에 궁금증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국제컨설팅 회사가 국제변호사를 고용해 국제기구에 이슈를 제기하는 과정은 상당한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MH그룹은 스스로 밝힌 바로는 국제컨설팅 회사입니다. 국제법 문제를 주로 다루는데 주된 고객은 국제적으로 알려진 인사들입니다. 가장 최근에 맡았던 사례가 리비아 독재자 가다피의 후계자이자 둘째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입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뒤 장기 독재를 하던 가다피 일가는 내란으로 권력에서 쫓겨났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반인권 범죄 혐의로 체포 영장까지 발부했던 인물이 사이프 알 이슬람입니다. 그런데 MH그룹 회장 미샤나 호세이니운은 ‘국제 여론전’을 펴면서 “개혁자이자 서방의 친구였는데 공공의 적 1호로 몰려 마녀사냥을 당했다”고 주장합니다.

사이프 알 이슬람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고, 여러 차례 변호인 선임 시도가 묵살됐다는 점을 적극 알려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사이프 알 이스람의 사형 집행을 막은 걸로 알려졌습니다. 사이프 알 이슬람이 사면됐다는 보도도 있지만, MH그룹은 사면 사실은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는데 정치적 거래를 한 뒤 특정 장소에 연금한 것 아닌가 추정되는 부분입니다. 

 이 사례를 다소 길게 설명한 이유는 MH그룹이 어떤 전략으로 국제컨설팅을 하고 있는 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MH그룹의 박 전 대통령 관련 대응 역시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지난 8월부터 진행돼 왔습니다. CNN 보도도 이런 대응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MH그룹이 지난 8월 15일 배포한 자료를 보면 이미 당시부터 박 전 대통령 구금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오는 11월 9일 유엔인권이사회 보편적 정례 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에 맞춰 움직였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유엔인권이사회 보편적 정례 검토는 4년 마다 유엔 가입국의 인권 상황에 관해 검토를 하는 건데 권고사항 이행 정도 등을 점검하는 일정입니다.

11월 9일이 한국 차례입니다. 이 일정에 맞춰 8월 15일부터 대응을 시작한 것이고, 지난달 20일에 추가 성명서, 그리고 지난달 27일에는 국내 일간지 신문광고를 해 일단 관심을 끌려 했습니다. 이번엔 CNN에 자신들이 조사하지도 않은 보고서 초안을 넘겨주는 ‘언론플레이’를 했습니다. 같은 목표를 가진 대응인 거죠. 다음달 제네바에서 유엔인권이사회 보편적 정례 검토 기간에는 현지에서 기자회견 등을 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최종 목표는 한 가지, 박 전 대통령의 임시 석방입니다. 몸이 아픈데 감방에서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으니 일단 꺼내달라는 겁니다. 이걸 담당하는 국제변호사로 로드니 딕슨을 선임했는데 주로 국제범죄와 범죄인 인도 등을 전문으로 하는 영국 변호사입니다. 

 그럼 꽤 많은 돈이 드는 국제컨설팅 회사와 국제변호사 선임은 누가 의뢰했을까요? MH그룹은 답변서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와 지인’ 이라고 밝혔습니다. SBS가 취재해 보니 그 지지자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제부 신동욱 공화당 총재에 따르면 지난 8월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사업을 하는 한인 교포들이 자신에게 연락해서 유엔에 청원을 하려고 하는데 가족들도 참여를 해 달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신 총재는 재판 횟수가 많다는 점에서 인권탄압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청원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며 고사했습니다. 미국 서부 지역 한인 교포들 이라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 참여했다가 미국 서부로 간 김평우 변호사의 그림자가 보이기도 합니다. 김 변호사는 미국에서 탄핵의 부당함을 알리는 강연회를 하기도 했죠. 자발적 모금인지 여부까지 파악은 안 됐지만, 미국 서부의 한인 교포들이 의뢰인이라는 건 좁혀진 셈입니다. 

 그런데 의뢰를 받은 MH그룹이 주장하는 대로 UN인권위원회가 박 전 대통령 관련 청원을 받아들여 조사를 하는 걸까요? SBS가 확인해 보니 그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MH그룹은 지난달 27일 신문광고에서 마치 UN에서 조사를 진행했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UN 실무그룹이 청원을 받아들여서 정식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반드시 한국 정부에 답변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런 요청은 아직 없습니다. 또한, 한국 인권 상황에 대한 비정부기구(NGO)의 의견 개진은 이미 자난 3월 끝난 상태입니다.

MH그룹이 8월에 제기했다고 해도 시기상으로 의견 개진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MH그룹도 다음달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이나 다른 방식의 설명회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겠죠. 결국 MH그룹의 의도는 유엔 청원 움직임은 실효를 기대하기 어려운 주장인데 이걸 교묘하게 ‘언론플레이’를 통해 기정 사실화하려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다음달까지 비슷한 언론플레이가 이어질 걸로 보이는데 국제컨설팅 회사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사실관계를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명원 기자cooldud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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