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 대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 'TMI' 유행

김지혜 기자 2017. 10. 1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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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김영은씨(28·가명)는 최근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생중계하는 직장 동료 때문에 고민이 많다. 김씨는 “동료가 퇴근 후 소모임에 가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업무 시간에 메신저로 일일이 이야기 한다”면서 “결혼식에 입고 갈 복장을 골라달라며 자신의 셀카를 여러 장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동료가 자기 반려견의 사진을 매일같이 보여주는 바람에 김씨는 본인이 키우지도 않는 강아지의 세세한 버릇까지 모두 알아버렸다. 김씨는 “업무로 바쁜 시간에 사생활 이야기를 계속 듣는 것이 너무 피곤해서 동료에게 그만 말하라는 의미로 ‘TMI’라고 답해버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이진영씨(27·가명)는 점심시간마다 울상이다. 직장 상사가 매번 식사 자리에서 본인이 겪고 있는 가정 불화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업무 스트레스도 많은데 굳이 상사의 유쾌하지도 않은 사생활 이야기까지 깊게 알고 싶지 않다”면서도 “상사 앞이라 ‘TMI’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TMI는 ‘너무 과한 정보(Too Much Information)’의 줄임말로 누군가에 대한 지나치게 상세하거나 사적인 정보를 뜻하지 않게 알게 되었을 때 사용하는 단어다.

최근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의 화장실 습관이나 망가진 인간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할 할 때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으니 그만 이야기 하라는 의미로 “TMI”라고 외치면 되는 것이다. 북미에서는 오래 전부터 누군가가 자신의 세세한 정보를 공유했을 때 이를 지적하는 인터넷 용어로 쓰이고 있다.

한국에서 TMI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지난 8월 한 누리꾼이 정치인 등 유명인들에 대한 지나치게 소소하거나 사적인 정보를 망라한 ‘TMI 모음’을 공유하면서부터로 알려져 있다. 해당 글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월19일 본인의 생일에 결혼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정보,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의 별자리가 처녀자리이며, 탄생화는 로즈마리고, 탄생석은 사파이어라는 정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은행원이던 아내에게 반해서 결혼하게 되었다는 정보 등이 나열됐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원하지도 않던 정보를 알아버렸는데 잊히지가 않는다”는 반응이 쏟아졌고 이후 TMI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TMI는 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일종의 놀이문화로 활용하기도 한다. SNS에서는 ‘#나에_대한_쓸데없는_정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타인이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 자기만의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컨셉트의 게시물이 줄을 잇고 있다. “생선뼈 발라내기를 좋아해 남이 생선구이를 시켜도 뼈를 발라주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중학교 3학년 때 산 티셔츠를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입었고 지금도 옷장에 있다” 등 소소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친해지고 싶은 팔로워들에게 따로 멘션을 보내지 않고 구독만 하는 편인데 각자의 TMI를 찬찬히 읽어보면서 공통점을 발견할 때 나 혼자 친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학창시절 때 친구들이랑 다이어리를 교환해 읽던 문화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TMI 유행의 원인으로“정보 과부하”를 꼽으며 “개인들은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쓸데없는 정보 때문에 이를 방해 받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사생활 정보가 범람하는 과잉연결 시대에 어떤 정보를 선별해야 하는지 가리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껴 TMI를 외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처럼 과잉연결에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TMI를 공유하는 놀이가 유행하는 이유는 시공간의 제약을 떠나 자신과 잘 통하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SNS의 특성 때문”이라며 “이상적인 관계를 형성한 타인의 사생활이 이야기 형태로 꾸며져 게시가 되니 이에 흥미를 느끼는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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