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미국 빠져도 파리기후협약은 흔들림 없을 것"

강찬수 2017. 10. 1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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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게레스 전 유엔기후협약 사무총장
OECD 시장 회의 등 참석 위해 방한
"2020년부터 온실가스 감소 추세로
돌아서야만 기후 재앙 막을 수 있어"
최근 세계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배출량 정체된 것은 희망적 신호
국토 좁아도 재생에너지 확대 가능
석탄화력발전 감소는 세계적 추세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 유엔기후변화협약사무국(UNFCCC) 사무총장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상조 기자
“2050년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20년부터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 추세로 돌아서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 사무총장으로 6년간 국제 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협상을 이끌었던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61) 글로벌 기후에너지 시장 서약 이사회 부의장이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글로벌 기후에너지 시장 서약(Global Covenant of Mayors for Climate & Energy)’은 기후변화 대응과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에 필요한 장기 비전 공유, 자발적 실천 지원 등을 목표하는 전 세계 7400여개 도시와 지방 정부의 협의체다.
6년간 국제 온실가스 감축 협상 주도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아래로 막아 온난화 재앙을 막을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며 “2014~2016년 3년 동안 세계 경제가 성장했음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희망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지난 2015년 12월 파리 기후협약이 채택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그는 UNFCCC 사무총장직을 그만둔 후에도 국제 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논의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날 여의도에서 열린 ‘제3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포용적 성장을 위한 챔피언 시장 회의’에도 참석했고, 안희정 충남지사와도 만나 기후변화 대응 문제를 논의했다.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글로벌 기후에너지 시장서약 부의장(오른쪽)이 지난 18일 박원순 서울시장(가운데)과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과 함께 서울시청에서 경제·환경 위기 대응에 관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게레스 부의장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지만, 170개국에서 파리기후협약을 비준한 것처럼 국제 사회에서는 흔들림 없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다만 각국이 유엔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5년 수준에 기반을 둔 것이고, 앞으로의 기술 발전 등을 고려하면 좀 더 강한 감축 목표를 제시할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대응에 지방정부 역할 중요" 그는 “파리기후협약이 각국 정부의 책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계획의 실행과 규제에 있어서 지방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보다 시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고, 정책을 책임감 있게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은 발표와는 달리 9개 주와 300여 개의 도시는 변함없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점이나, '글로벌 기후에너지 시장 서약'에 7400여개 도시가 참여한 사례에서 보듯이 지방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게레스 부의장은 “한국은 정부나 지자체가 함께 잘 협력하고 있어서 기후변화 대응의 훌륭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 유엔기후변화협약사무국 사무총장은 19일 인터뷰에서 "공중보건과 가격 경쟁력 때문에 세계적으로 석탄 사용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그는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석탄 사용을 줄이는 문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처럼 세계적으로도 낡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신규 화력발전소 건설을 취소하는 등 석탄 사용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석탄 사용이 줄어드는 것은 미세먼지 발생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 발생 등 공중보건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며,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도 이유이라고 설명했다. 금융 부문에서도 석탄 발전소에 대한 투자를 회피하는 것도 원인이라는 것이다. 피게레스 부의장은 원자력 발전이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다른 에너지와의 비용 경쟁력과 안전·보안이란 두 가지 원칙에 따라 각 국가가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면서도 “안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한데 결국 비용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포르투갈, 전력 100% 재생에너지로 공급 그는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것이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는 데 장애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며 “국토 면적보다는 재생에너지를 지원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 Feed in Tariff) 같은 시장의 구조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피게레스 부의장은 “한국과 국토면적이 비슷한 포르투갈의 경우 2000년부터 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 지난해부터는 전력생산의 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소개했다. 포르투갈은 지난해 5월 107시간 연속으로 전력의 100%를 태양광·풍력·수력·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한국도 빌딩의 지붕·벽·창문에 태양광 전지를 설치하는 등 도시 공간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태양광 확대가 가능하다”며 “뛰어난 기술력을 활용한다면 태양광이나 에너지 저장 장치 분야가 한국의 수출 산업으로도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 유엔기후변화협약사무국 사무총장은 코스타리카 출신 외교관으로 20여 년 동안 기후변화 관련 국제 협상에 참여했다. 우상조 기자
아버지·오빠가 코스타리카 대통령 역임 피게레스 부의장은 코스타리카 정치인 집안 출신 외교관으로서 1997년 일본 교토에서 교토의정서가 채택될 무렵부터 20년 이상 기후변화 분야에서 일을 해왔다. 아버지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는 1948년부터 74년 사이 세 번에 걸쳐 코스타리카 대통령으로 집권했으며, 오빠인 호세 마리아 피게레스 올센도 94년부터 98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 유엔기후변화협약사무국 사무총장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창밖 한강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우상조 기자
피게레스 부의장은 지난 20여 년 동안 기후변화 분야 외교 활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2015년 11월 말 ‘파리를 향한 순례자(Pilgrim to Paris)’들을 만났던 것을 꼽았다. 파리 기후회의 개막을 앞둔 당시 '순례자'들은 보다 야심 찬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합의할 것을 각국 대표단에게 요구했다. 그는 “순례자 대표들이 전 세계 서명자 숫자(178만 명)가 적힌 두루마리를 펼쳐 보였을 때 전 세계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느껴져 깊이 감동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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