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달 만에 14kg 감량 "라이더로 꿈을 찾았어요"

심진혁 2017. 10. 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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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이의 라이딩 이야기] 여수의 최악코스 천성산을 오르다

[오마이뉴스 심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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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조명이 아름다운 만성리 굴에서 한컷
ⓒ 심진혁
'꽃돼지'에서 '훈남'이 됐다. 74kg 몸무게 중 내 몸에 지니고 다녔던 지방 덩어리를 덜어냈다. 14kg의 지방이 몸에서 날아가니 볼록한 배는 들어가고 얼굴에 윤곽선은 살아났다.

"훈남 됐네."

겉모습이 변하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16년 인생에 이런 반응은 처음이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살을 뺀 비결은 묻는 사람들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항상 똑같다.

"자전거 타세요."   

흑심을 품고 자전거를 탔다. 제주도로 하이킹을 가자는 아빠의 말에 혹해서 처음으로 안장에 올라탔다. 페달을 구르면 구를수록 욕심이 생겼다. 이렇게 나의 '라이더 인생'이 시작됐다.

역사의 아픈 흔적을 간직한 '만성리 굴'

 일제시대 아픔을 간직한 만성리 굴에서
ⓒ 심진혁
내 생에 첫 라이더 심사가 열렸다. 지난 9월, 아빠와 함께 전남 여수 천성산 라이딩에 나섰다. 제주 하이킹을 앞둔 첫 번째 도전이다. 떨리는 마음에 밤새 뒤척였다.

지난 9월 16일 라이딩이 시작됐다. 여수 마래 제2터널에 다다르자 비지땀이 났다. 이 터널은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과 여수 시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동굴이다. 아빠의 설명에 의하면 자연 암반을 파서 만든 거란다.

아픈 역사의 흔적이기도 하다. 일제 때 지역주민들이 동원돼 특별한 도구 없이 구슬땀으로 흘리며, '망치와 정'만으로 팠단다. 거대한 돌산을 뚫으려 당시 고생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누군가의 고통을 발판삼아 편안히 라이딩을 하자니 발이 무겁다.

땀의 동굴을 지나니 바람의 해변이 나왔다.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이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싱그러운 물결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눈호강', '귀호강'이 따로 없다. 페달이 가볍다.

"헉! 저길 오른다고요?"

눈앞이 깜깜했다. 호강이 끝나자 고생길이 열렸다. 천성산이 눈 앞에 나타났다. 오르막길이 많아 자전거 선수도 힘이 든다는 코스다. 거대한 산봉우리를 마주하고 초보 라이더는 기겁했다.

"힘들어서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아!"

천성산 정상을 오르는 일은 고통이었다. 발이 무거울 때마다 약한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조금만 오르면 정상이야, 힘내자!"

라이딩에서 깨달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정상에서 오병종 국장님과 파이팅! 나의 멘토이자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 심진혁
응원 한마디에 힘이 났다. 함께 라이딩에 나선 오병종 <여수넷통> 국장님의 칭찬에 몸이 가벼워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실제로 그랬다. 또, 산중턱에 다다르자 날 위해 쉬어가자고 했을 땐 고마워 눈물이 날 뻔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오 국장님이 건네주는 사이다 한 모금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다.

하지만 몸은 마음과 같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고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했는데도 꼴찌를 면하지 못했다. 중간에 아빠의 지인이 대열에 합류하면서 꽁무니를 좇는 것도 버거웠다. 닭다리와 과일의 꿀맛은 사라지고 땀의 짠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쓰디쓴 맛이다.

 정상오르는 도중 자전거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장면
ⓒ 심진혁
나의 첫 번째 하이킹은 이렇게 끝이 났다. 집에 돌아와 방바닥에 누우니 만감이 교차했다. 힘들 때마다 나를 기다려준 오 국장님이 고마웠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차가운 공기와 풍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연 속을 달리며, 도심에선 느끼지 못했던 자유와 행복감에 웃음이 났다. 아픈 역사와 자연의 소중함을 알게 돼 가슴이 아팠다. 사실, 아빠가 하이킹을 가자고 했을 때만 해도 이런 고민이 더 컸다.

"어른들은 구세대라 내 생각을 이해 못할 텐데, 괜히 혼나기만 하는 건 아닐까? 의사소통은 잘 할 수 있을까?"

편견이고 걱정이었다. 오히려 내가 어른들을 잘 모르고 있었다. '어른'이란 두 글자에 새겨진 콩깍지가 한 꺼풀 벗겨졌다. 천장을 바라보며 눈으로 반성문을 썼다.

 정상에서 아빠와 한컷
ⓒ 심진혁
자전거를 타는 건 이렇다. 체력만 기르는 게 아니었다. 머릿속을 단련하는 일이었다.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일이기도 했다. 아빠와 함께 첫 번째 하이킹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진혁아! 천성산 라이딩 갈까?"

얼마 전, 오병종 국장님한테 연락이 왔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좋아요"를 외쳤다. 요즘처럼 이렇게 하루하루가 기쁜 날이 없다. 자전거 탈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나는 오늘도 제주 하이킹을 꿈꾸며, 라이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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