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상 김봉대씨는 왜 미국 듀폰사에 소송을 제기했나

2017. 10. 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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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원폭 피해 사죄·배상 요구 조정신청 제기..결과 주목

국내 최초 원폭 피해 사죄·배상 요구 조정신청 제기…결과 주목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지난 16일 부산민주공원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김봉대(80) 한국원폭2세환우회 고문이 제26회 민주시민상을 수상하면서 최근 그가 미국 정부와 군수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주목받고 있다.

김 고문은 "이번 소송은 원폭 피해자 실상을 알리고 인권운동을 해온 아들의 유지를 이은 것뿐"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김 고문의 아들은 2005년 5월 지병이 악화해 숨진 김형률(당시 35세) 씨다.

김 씨의 병명은 선천성 면역글로불린결핍증. 백혈구 이상으로 면역체계가 약해져 작은 감염에도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키는 희소난치병이다.

이 병을 앓는 사람의 평균 수명은 10세 미만이며 30세 이상 생존율은 20%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인은 유전에 의한 원폭 피해로 추정된다.

김 씨의 어머니는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미군이 투하한 원자폭탄에 방사선 피폭됐다.

태어난 이후 줄곧 감기와 폐렴 등으로 병원 신세를 졌던 김 씨는 25세가 된 1995년 특수 피검사를 받은 끝에 평생 자신을 괴롭혀왔던 병의 정체를 알게 됐다.

이후 김 씨는 세상에 원폭 피해 2세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커밍아웃'하고 본격적으로 원폭 2세 피해자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키 163㎝, 몸무게 37㎏였던 김 씨는 폐 기능이 약하고 숨이 차서 일상생활 자체가 쉽지 않았지만 피를 토하면서도 원폭 피해 2세의 실상을 알려 국가인권위원회의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를 끌어내는 등 10년간 일본을 오가며 원폭 피해 인권운동을 펼쳤다.

김 씨는 원폭 2세 환우회를 결성해 원폭 피해자 특별법을 만들려 노력하던 중 35세 나이로 숨졌다.

아픈 몸을 이끌며 원폭 피해자 인권운동에 매진한 아들과 동행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아버지 김봉대 고문은 이후 아들이 해온 인권운동을 이어받았다.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처음 원폭 피해 2세라는 사실을 알리고 인권운동을 해오다가 지병으로 숨진 고 김형률(오른쪽) 씨의 아버지 김봉대 씨가와 한인들이 2015년 미국 유엔본부에서 원폭 피해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봉대 씨는 아들이 숨진 지 13년 만인 최근 미국 정부와 군수업체를 상대로 원폭 투하에 대한 책임과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7.10.19 [김봉대 씨 제공=연합뉴스] wink@yna.co.kr

2015년에는 아들 영정을 들고 미국 유엔본부를 찾아가 한국 원폭 피해자 실상을 알리는 등 아들 대신 원폭 피해자의 대부 역할을 해왔다.

김 씨는 생전 한 변호사와 아버지에게 "원폭 피해 2세는 왜 자신이 평생을 원인조차 모르는 병으로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 정부에 책임을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을 가슴에 묻은 김 고문과 최봉태 변호사는 김 씨가 숨진 지 12년 만인 지난 8월 원폭 피해자, 인권 변호사와 소송대리인단을 꾸려 듀폰, 보잉, 록히드마틴 등 원폭 제조와 투하에 책임 있는 군수업체, 원폭 투하를 결정한 미국 정부를 상대로 사죄를 요구하는 조정신청을 제기했다.

이들은 공동책임이 있는 미국 정부와 군수업체가 민간인과 비군사시설에 원폭을 투하한 행위는 엄연한 국제법상 위법 행위이며 미국 정부는 피폭자 자료 공개, 실태조사 시행, 피해 회복 재단을 통한 손해배상 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송제기자들은 또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미국 정부에 배상청구권을 협의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우리나라 정부도 피신청인으로 넣었다.

대구지법에 제기된 조정신청은 현재 서울중앙지법으로 이첩된 상태다.

2015년 김봉대 씨가 미국에서 원폭 피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김봉대 씨 제공=연합뉴스]

최봉태 변호사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손해배상 외에는 다른 판결이 불가능해 사죄와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는 조정신청을 제기했다"며 "원폭 최대 피해국인 우리나라에서 원폭 투하의 책임을 묻는 첫 소송인 만큼 미국 정부의 사죄를 끌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원폭 피해자·일본군 위안부 배상을 위한 외교적·법률적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원폭 피해에 대한 법적 대응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정부는 1946년부터 1958년까지 태평양 비키니 환초에서 이뤄진 핵무기 실험 피해를 본 인근 섬 주민에게 1억5천만 달러의 위탁기금을 적립하고 핵 손해배상 재판소 결정에 따라 핵 실험 피해자들에게 1억1천200만 달러를 보상금으로 지급한 적이 있다.

현재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인한 한국인 피해자 7만여 명 중 4만여 명이 숨지고 현재 생존한 피폭 1세대는 2만6천여 명으로 추정된다.

원폭 피해 2세대 2천300여 명 중 김형률 씨처럼 유전적 피해를 본 2세 환우는 1천350명 정도다.

win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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