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레트로라이프' 마음의 안식 찾아주다

2017. 10. 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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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섭의 빠담빠담

[한겨레]

서울 이태원 우사단로에 있는 ’디스레트로라이프’. 남승민 제공

“저는 취향을 팔아요. 그게 빈티지의 매력이죠.” 지금은 성공한 ‘애호가’의 시대다. 애호가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이들은 남들의 눈엔 다소 과하게 탐닉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애호가? 지나친 거 아니야?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

서울 이태원 우사단로에서 ‘디스레트로라이프’(@thisretrolife.사진)를 운영하는 남승민(40)씨는 빈티지 애호가다. 그곳은 빈티지 애호가라면 눈에 번쩍 뜨일 헌책, 아날로그시계, 레코드판과 카세트테이프, 필름카메라, 빈티지 안경테, 목걸이와 귀걸이 등의 액세서리들과 각종 희귀한 잡화 등이 구석구석 쌓여 있는 ‘작은 벼룩시장’이다. 특히 오랫동안 좋아하고 심지어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서인지 구하기 어렵고 귀한 책이 많은 편이다.

시작은 시계였다. 그는 친한 형을 따라 황학동 벼룩시장에 구경 갔다가 구매한 시티즌(1910년대 창업한 일본 시계회사 브랜드) 시계의 기계적 매력에 빠지면서 빈티지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빈티지 시계들을 구해 온라인 유통 채널 이베이에 올려 전세계에 팔면서 빈티지 판매 요원이 됐다. 빈티지 카시오 같은 국내에 저평가된 시계를 구해서 국외의 컬렉터들에게 파는 등, 전략적인 선택이 적중했다. 1만~2만원에 구해서 150달러(한화 약 16만원) 정도에 팔았다.

흔히 빈티지와 레트로(Retro. 복고를 지향하는 유행 스타일)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남씨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빈티지는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로 세대를 거치면서 스토리가 쌓이고 라이프스타일이 담겨 있는 반면 디자인이 좀 촌스럽고 과시적인 경향이 강한 레트로는 대안 생산과 키치를 염두에 둔 것들”이라고 말한다. (여기선 빈티지로 통칭한다.)

“물건을 고르는 건 재밌는데, 판매가 문제예요.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수집하는 것과 그것을 판매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어요.” 지금은 ‘아름다운 빈티지 시계’와의 짜릿한 첫 만남의 기억이, 이것을 얼마에 팔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현실로 희석되어 버렸다며 그는 웃으며 말했다.

설렘은 가격이 아닌 가치의 문제이니, 설렘이 깃든 물건에 가격을 붙여야 하는 그의 고민이 이해된다. 하고 싶은 일은 계속하려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왜 빈티지 유행이 외국만큼 안 될까를 생각해봤어요. 집값 때문에 이사를 자주 하고, 대학 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는 그런 삶의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 뭘 사고 음미하는 마음의 사치를 사회가 용납하지 않고, 뭔가 자기만의 수집을 하면 주변 사람들도 비웃고.”

나는 빈티지 물건을 찾으러 다니는 시간이 즐겁다. 우연한 발견은 사냥에 성공한 기분이 들고, 내 취향과 세계가 확장되는 듯하다. <피로사회>를 쓴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는 빠른 삶의 속도에 밀려 머무르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면서 느끼는 시간의 향기가 현대인의 대표적인 질병인 우울증과 불안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요즘, 우리는 과도한 과학의 발전과 너무 빠른 속도에 지쳐 있다. 예전에 만들어져 다른 사람이 사용했던 투박한 만듦새의 레트로 물건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마성의 빈티지, 교양인의 손목시계’. 남씨의 매장에 들어서면, 호방한 선언문이 1990년대 스타일의 촌스러운 듯 세련된 로고와 함께 디자인되어 붙어 있다. 이곳에서 신기하고 재미난 물건들을 찾아 만지다 보면, 자기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된 듯, 그런 마성을 지닌 교양인이 된 듯해, 계속 머물고 싶어진다. 그럴 때는 발견한 물건(쓸데없을수록 좋다)을 하나씩 사서 현실로 돌아오면 된다. 그것이 ‘레트로 라이프’의 매력이다.

이동섭(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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