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음식의 '끝판왕' 진관사 수륙재 상차림

박경은 기자 입력 2017. 10. 1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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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때문인지 해외의 유명 셰프들도 한국을 방문하면 반드시 사찰음식을 맛본다. 소박함을 추구하는 사찰음식의 화려함이나 꾸밈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사찰음식이지만 온갖 정성을 다해 진수성찬을 차린 상이 있으니 바로 수륙재(水陸齋) 상차림이다. 속칭 사찰음식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하다.

사찰음식의 본가로 꼽히는 서울 은평구 진관사는 매년 수륙재를 봉행하며 전통적인 상차림을 선보이고 있다. 수륙재는 국왕이 베푸는 재로, 시방세계 일체의 불보살성중과 외로운 영혼들을 도량에 모셔 장엄한 법의 음식을 베풀어 주는 최고의 불교 의식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 이래 600년째 이어오고 있는 진관사 국행 수륙재는 현재 무형문화재 126호다.

진관사 수륙재에 올려진 사찰음식. 김영민 기자

진관사 수륙재는 매년 49일동안 일곱 차례 재를 지내는데 이중 하이라이트가 마지막 이틀간 치러지는 칠재다. 지난 14~15일 이틀간 진관사에서 칠재가 봉행됐다. 대웅전 앞에 차려진 3개의 상·중·하단에는 각종 전물, 즉 제사음식이 차려진다. 여기 오르는 음식은 <조선왕조실록> 세종 2년(1420년)의 단차림 기본 규정을 따른다. 아직 여물지 않은 ‘올기 쌀’로 지은 찐밥 서른 동이, 유과 아홉 그릇, 두부탕 아홉 그릇, 떡 아홉 그릇, 삶아 건진 국수 아홉 그릇, 과일 아홉 그릇 등이 핵심이다. 흰 꽃이 담긴 화병과 등롱, 한지 목면, 베 등 다른 공양물들도 함께 올린다. 올기 쌀은 아직 여물지 않은 쌀을 말하는데 완전히 여문 쌀과 비교하면 밥을 지었을 때 찰진 맛이 난다. 여물지 않은 쌀은 시중에서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진관사 측은 경기도 지역의 특정 농협측과 계약을 맺고 매년 이를 조달하고 있다. 떡이나 과일의 종류를 실록에서 지정하고 있지는 않다. 이날 진관사에서는 무지개떡, 호박편, 인절미, 약식, 백설기, 증편, 콩편, 흑임자편, 절편 등을 올렸다. 과일도 사과, 배, 감, 수박, 포도 등 제철과일들로 풍성히 차렸다. 상·중·하단 외에도 별도로 단과 음식이 차려진다. 용왕을 위한 용왕단에는 미역이, 사자가 타고 온 말들이 쉴 수 있도록 한 마구단에는 콩죽이 오른다.

진관사 수륙재에 올려진 사찰음식. 김영민 기자

진관사 국행수륙재 보존회 강영철 수석연구위원은 “봉송회향, 삼회향까지 끝난 뒤에는 스님과 신도들이 모두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마무리한다”며 “2011년 진관사 내에 범패, 법인, 장엄, 의례연구 등으로 구성된 수륙재학교를 설립해 스님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찰음식 명장 계호 스님이 주지로 있는 진관사는 비구니 수행사찰이다. 경내에 ‘산사음식 연구소’를 두고 있는 이곳은 세계의 미식가들에게도 이름나 있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덴마크 노마의 오너셰프 르네 레드제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전속 요리사 등도 진관사에서 음식을 맛보고 극찬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인 고 힌터페츠의 부인도 한국을 찾았을 때 진관사에 머물렀다.

진관사 장독대가 정갈하게 놓여있다. 박경은 기자
외부에서 온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함월당. 박경은기자

떡을 자주 만들다보니 진관사 내에는 방앗간도 있다. 입구 돌벽에 ‘종교를 넘어’라고 큼직하게 쓰여있는 대중공양간(식당)은 매주 일요일이면 북한산 등반객들로 붐빈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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