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미라는 임신중' 출산중 숨진 산모 미라

이기환 논설위원 http://leekihwan.tistory.com/ 2017. 10. 1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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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암덩어리인가.’ 2002년 9월 경기 파주 파평 윤씨 문중 묘소에서 발굴된 여성 미라의 상태를 관찰하던 연구팀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미라의 복부가 심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습니다. 처음엔 ‘암덩어리가 아닐까’ 생각했답니다. 그렇다면 수백년전 암으로 사망한 여인일 수도 있다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정밀검사해보니 더 놀라웠습니다.

미라의 뱃속에서 만삭크기의 남자태아가 보였습니다. 미라의 외음부를 살짝 열어보니 태아의 머리카락이 보였습니다. 태아의 머리가 산도(질)에 진입한 상태였습니다. 자궁벽의 오른쪽 부위에 3×4㎝의 별 모양의 파열흔적이 선명했습니다. 금방 아기를 낳을 수도 있었던 산모가 그만 출산 직전에 숨을 거둔 것입니다. 자궁파열로 인한 출혈 쇼크로 태아와 함께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운의 여인은 1566년 윤10월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산중 사망한 이 ‘모자 미라’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사례입니다. 부패가스가 태아를 몸밖으로 밀어내기 때문에 임신 중 태아가 온전히 남아있기는 불가능하답니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듣기

2004년 대전에서 발굴된 ‘학봉장군’ 미라의 사인은 피를 토하는 중증 폐질환이었습니다. 정밀검사 결과 학봉장군은 기관지 확장증 같은 폐질환 치료를 위해 지혈제로 꽃가루를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2001년 경기 양주의 댕기머리 소년 미라(5~6살)의 사인은 ‘속립성 결핵’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 소년은 결핵균이 혈액의 흐름을 타고 온 몸에 퍼져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2010년 경북 문경에서 발굴된 진성이낭(眞城李娘) 미라의 사인은 죽상동맥경화증에 의한 심혈관 질환이었습니다. 17세기 여인은 나쁜 콜레스테롤이 동맥 안에 쌓이면서 혈관이 좁아지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성인병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한가지 궁금증이 있습니다.

왜 유독 조선시대 무덤에서 미라가 출토될까요. 비밀은 무덤조성방식(회곽묘)에 있습니다. 석회와 모래 황토를 3:1:1로 섞어 싸바르면 몇 년 후 벽돌처럼 단단해진답니다. 누구도 훼손할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서 받은 몸(身體髮膚 受之父母)을 터럭하나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보전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不敢毁傷 孝之始也)’이라는 가르침을 따랐던 조상들의 노심초사가 생생합니다. 이 풍습이 ‘의도하지 않은 미라’를 낳았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56회는 ‘미라는 임신중…. 출산중 숨진 산모 미라의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이기환 논설위원 http://leekihw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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