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의 부동산 읽기] 승자 지도 재편되나.. 강남 재건축 수주전 '춘추전국시대'

김기환 입력 2017. 10. 19. 00:30 수정 2017. 10. 2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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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강자'였던 삼성·대림·GS 위협하는 현대·대우·롯데
건설사 "흥행 보장되고 많이 남는 '알짜 사업'이라 사활"
아파트 품질 끌어올렸지만 고분양가 논란, 혼탁상 숙제
건설사 수주전에서 승패가 갈렸을 땐 상대의 과오를 덮고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공생하는 관계라서다. 하지만 GS건설과 롯데건설이 맞붙은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 재건축 수주전은 달랐다. GS건설은 지난 15일 조합원 총회에서 시공사 선정 투표 직후 “롯데가 조합원들에게 금품ㆍ향응을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롯데는 즉각 허위사실 유포로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며 맞섰다. 경찰은 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반포주공1단지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건설업체 임원들이 조합원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수주를 따낸 GS가 공격에 나선 건 그만큼 수주 과정에서 쌓인 건설사 간 앙금이 크다는 방증이다. 또 앞으로 재건축 수주전을 앞두고 롯데에 대한 ‘경고장’ 성격도 있다. 건설사가 강남 재건축 수주전에 매달리는 건 흥행이 보장된 데다 일단 따내기만 하면 많이 남는 알짜 사업이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일감 부족에 시달리는 건설사 입장에선 '황금알'이다.
강남 재건축 수주전이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었다. 삼성물산ㆍGS건설ㆍ대림산업이 전통의 수주 강자였다면 최근 현대건설ㆍ롯데건설ㆍ대우건설이 신흥 강자로 부상하면서 지도가 재편되는 추세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강남 재건축 시장은 삼성물산을 제외한 10대 건설사가 단독 또는 컨소시엄 형태로 수주하는 경우가 많다. GSㆍ현대건설을 필두로 롯데ㆍ대우건설이 수주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이 2009년 준공한 서울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경. 지난달 전용면적 84㎡가 19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삼성물산]
‘래미안’ 브랜드 수요층이 탄탄한 삼성물산은 과거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등을 앞세워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엔 신규 수주를 극도로 자제하는 추세다. 올해는 수주전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아 철수설까지 시달렸다. ‘e편한세상’ 대신 프리미엄 브랜드인 ‘아크로(Acro)’를 통해 한강변 중심 재건축 수주에 강세를 보였던 대림산업도 상대적으로 잠잠하다.
두 회사의 빈 자리를 채운 건 공격적으로 수주에 뛰어든 GS건설이다. ‘자이’ 브랜드를 낲세운 GS건설은 2015년 한해 동안 8조원 넘는 수주 물량을 확보했다. 지난해 2조4000억원, 올 들어서도 이달까지 2조4000억원을 신규 수주했다. 올 들어서도 방배13구역, 한신4지구 같은 알짜 수주전에서 승전보를 올렸다.
지난달 2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반포주공1단지 시공사 선정 총회. 현대건설이 GS건설을 누르고 시공사로 선정됐다. 김기환 기자
거침없는 GS건설의 행보에 찬물을 끼얹은 건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은 2000년대 초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진행해 브랜드와 회사 자금 사정을 따지는 조합원의 선택을 받기 어려웠다. 당시 수주를 많이 못한 설움이 있다. 하지만 역대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꼽히는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 수주전에서 지난달 GS를 제치고 시공권을 따내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덕분에 올해만 4조7000억원에 달하는 수주 실적을 올리며 1위 자리에 올랐다.
대우건설이 시공한 서초 푸르지오 써밋은 지하철 2호선·신분당선 강남역과 9호선 신논현역을 낀 트리플 역세권 단지다.
기존 푸르지오 대신 강남에서 ‘푸르지오 써밋’ 브랜드를 앞세운 대우건설도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역시 현대건설과 마찬가지로 과거 워크아웃 과정에서 수주 가뭄에 시달렸던 회사다. 그런데 올해 2조6000억원 규모 수주 실적을 올리며 급부상했다. 현대건설에 이어 실적 2위다. 지난 3월엔 준(準)강남권으로 꼽히는 ‘과천주공 1단지’ 수주전에서 현대건설ㆍGS건설을 따돌리고 시공사로 선정됐다. 지난달엔 신반포15차 재건축 수주전에서 롯데건설을 누르고 시공사로 낙점됐다. 연말까지 서울 대치쌍용2차 등에서 추가 수주를 노리고 있다. 롯데건설도 올해 공격적인 수주 행보로 1조8000억원 넘는 일감을 확보했다. 그룹 숙원인 잠실 롯데월드타워 건설에 집중하다보니 수주전에 소홀하다 최근 들어 공격 수주로 전환했다. 지난달 신반포 13차 수주전에선 효성건설, 최근엔 잠실 미성ㆍ크로바 수주전에서 GS건설을 제치고 일감을 따냈다.
롯데건설이 서울 송파구 미성·크로바 재건축 아파트에 도입하는 290m 길이 스카이브리지. [롯데건설]
과열된 수주전은 고분양가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아파트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정섭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차장은 “1970~80년대 지은 빽빽한 고층 ‘성냥갑 아파트’는 2000년대 후반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을 갖추고 주차장을 지하화해 지상 공원으로 꾸민 2세대 아파트로 진화했다. 최근 재건축 아파트는 한강을 바라보며 수영하는 ‘인피니티 풀’, 아파트 최상층을 연결한 ‘스카이 브릿지’, 오페라하우스와 실내 아이스링크ㆍ워터파크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 호텔급 서비스같은 소프트웨어까지 갖춘 3세대 아파트로 거듭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수주 과정에서 불거진 혼탁상은 숙제로 남았다. 고가 선물ㆍ식사 제공에 ‘7000만원 이사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반포주공 1단지 수주전이 대표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수주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드러난 건설사의 시공권을 박탈하고 입찰에서 배제시키는 내용의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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