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두의 내 인생의 책] ③ 녹슬은 해방구 | 권운상
[경향신문] ㆍ두려울 것 없는 신념이여
내가 처음 읽은 대하소설은 아홉 권짜리 <녹슬은 해방구>였다. 하나의 문학을 탐독한다는 사실 이전에 내겐 거대한 도전이었다. 만화책도 아니고 아홉 권짜리 소설이라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 것인가. 마라톤 경주의 출발점에 서 있는 선수처럼 떨리고 흥분됐다. 몇 줄 읽지도 않아 나는 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권을 끝낼 때마다 그 다음 권을 읽기 위해 곧장 서점으로 달려갔다. 마지막 권을 다 읽고 나서는 첫 장편대하소설을 독파한 뿌듯함에 스스로 대견해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감당하기 힘든 어떤 거대한 비밀을 알아버린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녹슬은 해방구>는 저자 권운상이 감옥에서 만난 비전향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각색해 소설로 옮긴 것이다.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30여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결심과 변심을 밥 먹듯 하는 내겐 감히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이 소설은 1942년부터 일제 치하에서의 항일투쟁, 8·15 해방, 6·25전쟁, 제주 4·3항쟁, 그리고 1980년 5·18민주화운동까지 한국의 아픈 근대사를 모두 꿰뚫고 있다. 소설 속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나는 김점분과 김형석이라는 두 인물을 좋아했다. 읽는 내내 두 사람 곁에 바짝 붙어 함께 노래하고 투쟁하며 소백산맥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농사짓던 부모님의 얼굴도 보이고, 도시로 일하러 간 형과 누나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남과 북이 갈라진 이후, 서로 다른 사상과 노선으로 논쟁하고 비판하는 장면에서는 함께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목숨 바쳐 조국을 지켜내는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머리보다 손과 발로 세상을 읽는 사람들이다. 가진 것이 없어 두려울 것도 없는 민중들이다.
<정영두 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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