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교차로' 락까, 10년 사이에 폐허로

김보미 기자 2017. 10. 1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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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내전 7년·IS 점령 3년 ‘수난’
ㆍ재건 투입할 인력·자본 없어
ㆍ시리아민주군 임시 통치 전망

이슬람국가(IS)의 상징적 수도였던 시리아 락까는 ‘시리아의 교차로’로 불렸던 도시다. 그리스, 로마, 비잔틴 시대를 거쳐 오스만제국의 무역기지였고, 현대엔 면화 산업의 중심지였다.

특히 락까는 IS가 이곳을 수도로 삼을 만큼, 1000여년 전 이슬람 문화의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현장이다. <아라비안 나이트>에도 일화가 다수 전해지는 아바스 왕조의 5대 칼리프(왕)인 하룬 알 라시드는 바그다드에서 락까로 건너와 10여년을 통치하며 이슬람 문화를 융성시켰다.

현대 이슬람 전성기의 부활을 목표로 한 IS가 과거의 영광을 꿈꾸며 많은 도시들 가운데 락까를 수도로 선택하고 칼리프 국가를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370㎞ 떨어진 락까는 교통 등 지정학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락까는 시리아 현 정권에 맞선 수니파 반정부 시위의 거점이 됐다. 이후 알카에다가 사실상 락까를 장악했다.

2014년 마침내 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락까를 수도로 천명했다. IS의 수도로서 락까는 지난 3년간 근본주의적인 샤리아(이슬람율법)가 강력하게 적용된 도시였다. 남성은 수염이 짧으면, 여성은 얼굴을 완전히 덮지 않으면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인질 참수 동영상이 촬영된 ‘악마의 교차로’ 등 공개처형이 의도적으로 이뤄진 곳도 락까다. 세계 곳곳의 테러를 계획하고 지하드 전사를 모집하는 IS 활동의 핵심 기지이기도 했다.

17일(현지시간) 시리아 쿠르드와 아랍계가 주축이 된 시리아민주군(SDF)이 락까를 탈환하면서 IS 칼리프 국가의 수도로서의 락까는 종말을 맞았다.

문제는 IS가 쫓겨난 지금부터다. 수니파 쿠르드, 시아파 무슬림, 기독교 등 다문화 인구 약 30만명이 모여 살던 시리아의 6번째 도시 락까는 7년째 접어든 내전과 3년이 넘는 IS 점령으로 인프라 등 그야말로 도시의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이다. 외신들은 18일(현지시간) 락까의 80% 이상이 파괴돼 사실상 유령도시 같다고 전했다. 주민들 대부분은 도시를 탈출해 난민캠프 등에서 국제기구의 지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수니파 종교시설을 제외한 찬란했던 문화유적도 파괴돼 폐허의 도시가 됐다.

탈환에 주도적 역할을 한 SDF가 임시 통치를 할 것으로 보이지만 락까 정상화는 요원하다.

재건 작업이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전망이 불투명한 데다 무엇보다 재건 작업을 할 사람도, 돈도 없다. 락까가 도시로서의 기능회복이 상당 기간 힘들 것이라는 전망은 지난해 시리아 정부군이 수복한 도시 알레포의 상황에서도 예견된다. 알레포는 정부가 재건 작업에 돌입했지만 여전히 도시로서의 기능이 거의 마비된 상태다.

CNN은 “러시아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시아파 시리아 정권하에서 미국 지원을 받는 수니파 (지방)정부의 성공은 비현실적”이라고 그 한계를 지적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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