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시도자, 미국선 3일간 강제 입원해 상담"

안광호 기자 입력 2017. 10. 1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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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미 샌타클래라 카운티 교도소 심리분석관 최재동씨
ㆍ자살은 예방 가능한 죽음…매년 휴가 얻어 한국서 예방 강의
ㆍ자살공화국 불명예 벗으려면 컨트롤타워 구축 등 지원 필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카운티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의 심리 상담과 치료를 맡고 있는 최재동씨가 지난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nag.com

“누군가 한강 다리 난간에 서서 ‘강물에 뛰어들겠다’며 자살 소동을 벌였다고 가정해봅시다. 경찰이 출동해 상황이 정리되면, 대체로 자살 시도자를 ‘다시는 이 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가족에게 인계하거나 훈방 조치하죠. 비슷한 상황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떨까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카운티 교도소에서 심리분석관으로 일하는 최재동씨(60·미국명 제이 최)는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미국에서는 자살 시도자를 사흘간 강제 입원시킨 후 상담과 치료를 병행합니다. 전문가 판단에 따라 입원을 연장하는 일도 가능하죠. 이게 우리와 큰 차이점인데, 실제 이런 다소 강압적인 방법이 자살 재시도 비율을 낮추는 걸로 나와요. 그런 면에서 자살은 예방이 가능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나라는 자살공화국이란 불명예를 안고 있다. 지난해에만 1만3092명, 하루 평균 35.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최씨는 자살 시도자에 대한 우리와 미국 당국의 대응 사례를 예로 들며, 보다 직접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응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휴가차 귀국한 그를 지난 17일 서울 정동에서 만났다. 최씨는 “미국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거나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한해 본인과 가족이 거부해도 입원 후 3일(72시간) 동안 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한국도 관련법이 있긴 하지만 당사자와 가족의 항의가 심해 제대로 격리 조치를 할 수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지역의 법원마다 정신질환 범죄와 관련한 판결을 맡는 판사가 있고, 이 판사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판결과 무관하게 최대 14일까지 격리 조치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했다.

최씨는 강제 입원 조치로 인한 인권침해 우려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자살을 맘먹은 사람들은 몸보다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 순간만이라도 누군가 얘기를 들어주면 당사자가 맘을 고쳐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권에 앞서 생명권을 우선하기 때문에 이런 조치가 가능한 거죠. 따라서 누가 보더라도 자살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은 그대로 방치해둬선 안됩니다.”

최씨는 고등학교 다닐 때 가족의 이민으로 미국에 정착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가 심리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심리분석관으로 일한 삼촌의 영향을 받아서다. 삼촌을 따라 대학원(샌프란시스코대)에 진학해 정신건강을 공부한 그는 졸업 후 지역 내 비영리단체에서 심리 상담과 치료 업무를 했다. 10년의 노력 끝에 45세가 돼서야 공인 자격증(가정상담심리치료사)을 따고 지금의 교도소에서 일하게 됐다.

“대학원을 마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3000시간 인턴십 교육을 마쳐야 할 만큼 자격증 획득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이 자격증이 있어야 법원이나 교육청 등 관공서에서 공무원 신분으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지역에서 개인 사무실을 차리고 일반인들을 상대로 정신과 상담과 치료도 하고 있는 그는 매년 휴가를 받아 한국을 찾는다. 그는 “주로 고향인 대구에서 지역 학생들과 사회복지사 등을 상대로 자살 예방 강의를 하는데, 이 일정에 맞춰 휴가 계획을 세운다”고 했다. 강의에서는 자살 예방 관련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이론과 실무 지식, 자신이 경험한 재소자들의 심리분석 등을 교육한다. 최씨는 “무엇보다 자살 예방 시스템의 일원화와 체계화 등 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자살 예방 활동에 필요한 전문가를 적극 양성하고, 또 미국의 정신건강청이나 일본의 자살종합대책회의 등과 같은 컨트롤타워를 통해 인력과 예산,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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