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백년 세월과 유행이 통하는 객리단길

전주 | 글·사진 정유미 기자 2017. 10. 1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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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꽃담 골목·은행로 한지길…전주 한옥마을 ‘걷는 재미’

전주 한옥마을은 한 해 100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로 떴다. 1920년대 지어진 토담집 꽃담을 따라 전통 한복을 입은 중년 여성들이 골목을 걷고 있다.

요즘 전주하면 한옥마을이다. 한 해 1000만명 이상이 한복을 입고 전주 옛 도심을 누빈다. 오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외국인조차 낯설지 않다. 새까만 처마 지붕 아래 오롯이 새겨진 꽃담 골목만 찾아다녀도 한나절이 모자랄 정도다. 온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평일인데도 전주 한옥마을은 듣던 대로 북적거렸다.

■ 한옥마을 꽃담을 누비다

한옥마을의 복합문화공간 ‘교동아트미술관’

전주 한옥마을의 역사는 100년이 채 안된다. 일제강점기 풍남문을 제외한 모든 성문이 무너지면서 일본인이 성 안팎의 모든 상권을 장악했다. 1930년대 한국인들이 일본에 맞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집을 지었다. 지금의 전주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은 태조로를 중심으로 풍남문에서 오목대까지 팔달로, 경기전길, 은행로, 한지길이 교차하는데 얼핏 잡아도 골목이 10여곳이 넘는다. 한옥마을 중에서도 아기자기하고 한적한 길을 골랐다. 은행로와 한지길 사이에 있는 골목과 오목대를 품고 있는 향교길 두 곳이다.

은행로~한지길에서는 ‘꽃담’을 제대로 봐야 한다. 고려말에 심어진 것으로 알려진 은행나무가 이정표다.

골목은 역시 삐뚤빼뚤해야 제맛. 좁았다가 넓었다가 막다른 골목인가 싶으면 또 다른 길이 나왔다. 붉은 꽃담은 매력적이었다. 빨갛게 익은 석류가 매달린 낮은 처마 아래 한 땀 한 땀 십자수를 놓은 듯했다. 장편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생가터를 지나 한참 동안 발길이 머문 곳은 1920년대 지어진 토담집 앞이었다. 황토 꽃담은 가을비에 젖어서 그런지 색이 더 붉어 보였다. 담벼락 위로 가지를 내민 향나무는 탐스럽다.

단 1개 공유 밥상을 내놓는 ‘휴일식탁’

‘승광재’라고 적힌 표지판을 따라 또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다.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은 조선 고종 황제의 손자인 이석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의 집이었다. 가을 소풍을 나온 유치원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역사 공부에 열중했다. <조선왕조의궤>에 나온 영조와 정순왕후의 결혼 장면을 한지 인형으로 재현한 양미영 작가의 집을 지나 소리문화관 정문 쪽으로 나오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젊은이들은 인증샷을 남겼고 외국인들은 근엄하게 사진을 찍었다. 화려하게 꽃머리를 올린 50대 중년 여성은 생기발랄했고 두 손을 꼭 잡은 연인은 사랑스러웠다.

객리단길 사진관 ‘인생네컷’

한옥마을을 호젓하게 둘러보기 위해 향교길로 향했다. 태조로에서 200m쯤 가면 오르막이 나온다. 숨이 가쁘다 싶을 때 검은 한옥 지붕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한옥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울 북촌이 깔끔하게 정돈되었다면 전주는 오밀조밀했다. 조금 더 오르자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 왜군을 물리치고 잔치를 벌였다는 오목대가 나왔다. 박신희 전북 문화관광해설사(57)는 “오목대에서 내려다보는 한옥마을 전경은 한겨울 하얀 눈이 쌓였을 때가 아름답다”고 말했다. 수백년 세월을 간직한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향교와 행정기관인 동헌에는 기품이 서려 있었다.

■ 한옥마을 객리단길을 걷다

서울 경리단길에서 이름을 딴 전주 객리단길에 최근 이색 공간이 40여개나 생겼다. 객리단길에 가장 최근 생긴 ‘제주옥’, 한지길의 ‘운세뽑기’, 일제강점기 쌀창고에 들어선 ‘1924’, 객리단길 꽃집 ‘화공간’(위 사진부터).

“서울 경리단길처럼 전주에 객리단길이 생겼어요. 1년도 안됐는데 전주 객사(客舍) 뒤편에만 40여개가 넘는 개성 만점 공간들이 들어섰습니다. 매일매일 동네가 달라져 주민들도 헷갈릴 정도입니다.” 전주시청 손지영씨(30)는 “객리단은 행정명이 아니라 최근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름”이라며 “주말이면 한복을 입고 골목을 누비는 여행자들로 넘쳐난다”고 말했다.

서울에 경리단이 있고 경주에 황리단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전주에 객리단이라니…. 조선시대 유적지 ‘객사’ 뒤편의 이색적인 공간들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명해지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핫플레이스라고 했다. 낡고 허름한 건물이 앙증맞은 카페와 맛집으로 변신 중이었다. 전주시민들의 오래된 만남의 장소라는 객사부터 찾았다. 한옥마을에서 15분 정도 중앙동 쪽으로 걸었을까. 대로변에 ‘보물 583호’인 객사가 보였다. 초서체로 큼지막하게 쓰인 ‘풍패지관(豊沛之館)’은 중국 명나라 사신 주지번의 글씨다. 주지번이 과거시험에 낙방해 어렵게 보내던 시절 조선 중기 사신이던 송영구를 만나 장원급제한 인연이 애틋했다.

객사에서 나와 10분 정도 걸어가자 객사 1~3길에 생겨나고 있는 청년 창업가들의 이색공간이 나왔다. 객리단길의 원조로 통하는 ‘브라운 테이블’은 이탈리아 음식점인데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밖에서 보기에도 근사했다. 공유 식당으로 불리는 ‘휴일식탁’은 하루 딱 한 가지 음식만 내놓는데 기다란 일자형 테이블이 단 1개였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 보거나 옆에 앉아 한 끼 식사를 나눈다는 발상이 놀라웠다. 파스타 전문점인 ‘1924’는 옛 쌀창고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었고 수제햄버거 전문점 ‘슬로우 워커스’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김밥이 유명한 경아분식과 분홍색 헤어롤(구르프)을 머리에 말고 있는 미장원 아주머니는 정겨웠다.

객리단길은 한옥마을에서 걸어서 20~30분이나 떨어져 있는데도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전통 공예점이 사라지는 대신 한복대여점은 한 집 건너 한 집 들어서고 있다. 한복도 화려해져서 금은박 치장을 달고 있다. 전주 비빔빵을 들고 팔달로를 지나는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한복을 입은 소녀상이 놓여 있었다. 객리단길은 1920~19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전주 | 글·사진 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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