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퀄컴 '불공정 계약', 삼성·LG가 직접 고쳐라?..해외 기업엔 무딘 공정위 '칼날'

김도년 2017. 10. 1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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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 공정위 시정명령 열 달 지나도 이행계획서 제출 안해
시정명령 내용엔 '을'이 '갑' 퀄컴에 요청해 시정사항 반영토록 해
삼성·LG "고등법원 판결 후에나 계약 수정 요구할 수 있을 것"
삼성전자, 퀄컴vs공정위 소송서 변호사 15명 고용해 공정위 도와
"수년 걸리는 판결까지 불공정 계약 유지돼..즉시 시정토록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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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통신칩 독과점기업 퀄컴이 국내 휴대폰 제조사와 맺은 '불공정 계약'을 수정하라는 공정거래위원회 시정명령이 사실상 사문화(死文化)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 시정명령은 대통령령으로 명령 즉시 법적 효력이 생긴다. 하지만 해외 기업엔 시정 내용을 강제할 수단이 마땅찮은 데다 휴대폰 제조사가 퀄컴에 직접 요청해 법 위반 사항을 시정하게 돼 있어 퀄컴 동의 없이는 불공정 계약을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가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전해철 의원(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퀄컴은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명령 이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이행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초 제출한 이행계획서에는 시정명령 이행 완료 시기나 구체적인 내용 없이 '공정위와의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을 고려해 달라'는 취지의 내용만 담겨 있었다는 전언이다. 공정위는 이 때문에 이달말까지 다시 시정명령 이행계획서 제출을 요구한 상태다. 공정위 내부 규칙상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자는 이의신청 기간 이후 열흘 안에 이행계획서를 제출하게 돼 있다. 하지만 퀄컴은 "공정위 시정명령이 국제법의 원칙을 벗어났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퀄컴이 지난해 말 공정위로부터 시정조치를 받은 이유는 경쟁법 위반 소지 때문이다. 2세대(2G)부터 4세대(4G) 롱템에볼루션(LTE)까지 휴대폰 통신칩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퀄컴은 자사 허락 없이는 퀄컴 이외 기업이 만든 통신칩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계약을 국내 휴대폰 제조사와 맺었다. 또 특허 사용료와 사용 방식 등 퀄컴이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퀄컴이 개발한 통신칩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태도도 취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퀄컴의 계약 행태가 시장 지배력을 남용한 불공정 계약이라고 본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휴대폰 제조사 관계자는 "퀄컴이 만든 표준 LTE 통신칩 없이는 LTE 통신이 불가능한 껍데기 스마트폰만 양산하는 꼴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불공정 계약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휴대폰 제조사들은 공정위 시정명령 이후, 이제껏 맺어온 계약 관행이 시정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 시정명령 직후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통신칩 공급을 볼모로 특허 사용(라이선스) 계약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부당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는 행위도 금지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시정명령 내용을 보면 시정 사항마다 '휴대폰 제조사가 계약 수정 의사를 표명할 경우', '제조사의 의사에 반할 경우' 등의 단서가 달려 있다. 계약상 '을'의 입장에 있는 휴대폰 제조사가 직접 '절대 갑' 퀄컴에 요구하지 않으면 시정되지 않는 구조다. 공정위는 또 시정명령을 지키지 않는 곳을 검찰 고발하게 돼 있다. 하지만 해외 기업에까지 국내 검찰이 수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유영욱 공정위 과장은 "계약 상대방(휴대폰 제조사)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계약을 일괄 수정하도록 명령하면, 자칫 일부 휴대폰 제조사들이 수정할 의사가 없었다는 사례를 들어 (퀄컴이) 공정위 조치가 과도하다는 반론을 제기할 소지가 있었다"라고 답변했다.

휴대폰 제조사들은 이를 두고 '노예가 주인에게 직접 노예해방을 요구하라는 격'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삼성·LG전자 등은 "현재 퀄컴이 공정위 결정을 수용하지 않고 고등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놨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소송이 끝나는 시점에 계약 수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거래법 전문가인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은 "공정위가 시장 자율로 맺어진 계약을 원천 무효화하긴 어렵겠지만, 피해 당사자가 직접 요청해 문제를 해결토록 한 것은 시정명령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았다"며 "휴대폰 제조사가 아니라 퀄컴이 먼저 법 위반 소지를 없앤 계약을 휴대폰 제조사들과 새롭게 체결하도록 조치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해철 의원은 "시장 상황이 빠르게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최소 수년은 걸리는 법원 판결을 기다렸다가는 공정위 시정조치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공정위에서 위법성이 인정됐을 때는 '을'의 지위에 있는 업체 요구 없이도 즉시 시정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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