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사유를 정하겠다는 정부.."기업, 고용 줄어들 수도"

경계영 2017. 10. 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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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일자리로드맵]비정규직 기간 제한에서 사유 제한으로 기간제법 개정

[이데일리 산업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에 결국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이 담겼다.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비정규직이 허용되는 사유는 정부에서 정한 것만 가능하다는 것으로 사실상 민간기업에도 정규직 채용을 의무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재계와 경제단체는 기업의 자율성을 배제한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비정규직 정책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히려 고용이 더 줄어들 수 있다며 부작용도 우려했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정부가 법으로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사유를 정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육아휴직 등 기간제 인력이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일자리위원회는 우선 업무가 상시적으로 지속되거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분야라면 비정규직을 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비정규직 고용 사유 기준에 해외 입법례와 실태조사 결과 등을 반영하고 이를 경영·노동계와 협의해 내년 말 기간제법 개정과 함께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이유는 성수기 등 계절적 요인, 근무 외 시간 등 시간적 요인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라며 “이런 수요 요인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고용 사유를 제한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성토했다.

유통업계도 곤란한 처지에 놓여있다. 대형마트의 경우 협력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직원이 제품 판촉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직접 고용하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인건비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지속해야 할 비정규직 업무는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중소기업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중소 교육업체 A사 대표는 “학원과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 등 교육 관련 업체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대부분 수강료와 학습지 등에서 나오는데 수강료와 학습지 가격 등은 이미 정해져 있고, 급작스럽게 인상할 경우 수강생과 거래처 이탈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며 “이렇듯 실적이 어느 정도 정해진 상황에서 방과 후 교실 및 학습지 교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인건비가 늘어날 경우 적자를 감수하고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교육뿐 아니라 통상적으로 중소기업과 영세한 업체들이 소위 ‘갑’인 대기업, 중견기업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실적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며 “열악한 사업구조에 인건비 부담마저 더해질 경우 경영 환경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고용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사유의 범위가 어떻게 될지 관심이 모인다. 비정규직 고용을 인정하는 사유 폭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면 외려 기업이 고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마다 특색이 다른데 정부가 일괄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며 “기업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합리적 사유라곤 하지만 합리성은 정부가 아닌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정하고 사회적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며 “최악의 경우 헌법이 정한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침해해 위헌소지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영계에서는 정부가 정규직 고용에 있어 당근 없이 채찍만 들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자율성이 떨어지면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깎을 수 있다”며 “비정규직 전환에 비용 부담만 있고 이를 상쇄할 만한 보완책이 눈에 안 띈다”고 역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일자리 문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중장기적 정책 로드맵이 마련된 것은 시의적절하다”면서도 “노동시장 경직성을 심화할 만한 정책도 있어 노사정 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규제 강화보단 고용 여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자료=한국경영자총협회

경계영 (kyu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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