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보컬 트레이닝도 못받은 걸그룹 전속계약 해지는 적법"

김선미 2017. 10. 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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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금 50만원에 계약하고 매니저도 없어
정산금 달라 하니 "엑셀 못해 정리 안 돼"
재판부, "회사가 활동에 필요한 지원 안 해"
전속계약 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계약을 해지한 걸그룹의 활동 모습. 이들 중 3명은 소속사 대표로부터 3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으나 최근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다. [영상 캡처]
아이돌 스타를 꿈꾸고 데뷔했던 4인조 걸그룹의 멤버 3명은 최근 무대가 아닌 법정에 섰다. 2개의 댄스곡이 수록된 음반을 내고 TV에도 출연했지만, 활동은 뜸해졌고 급기야 소속사인 C사 대표 김모씨로부터 민사 소송을 당했다. 화려한 아이돌을 꿈꾸다 3년 여 만에 법정의 피고로 서게 된 20대 초반의 세 여성의 사연을 판결문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 “더 이상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

데뷔 6개월 만인 2015년 12월, 어느덧 20대에 접어든 이들은 소속사인 C사 대표 김모씨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40대 초반의 김씨는 멤버들에게 “사장님의 힘은 여기까지야. 나는 더 이상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만두고 싶은 멤버들이 있으면 이야기 해”라고 말했다. 회사로부터 트레이닝이나 매니저 등 필요한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채 다음 활동을 준비만 하고 있던 차였다.

━ 걸그룹 계약 3년 만에 선 법정

이들은 2014년 9월~2015년 3월 사이에 C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음반 및 연예활동 전반에 있어 가창·제작·연기 등 재능과 자질을 발휘하고 교육받을 기회와 장소를 지원한다. 연예ㆍ음악 활동을 통해 발생하는 모든 수입은 일단 회사에 귀속된다. 수익금 중 의상비·분장비 등 비용을 제외한 순수익의 30%만 멤버들이 갖는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전속계약 기간은 첫 음반 출반일로부터 7년 뒤인 2022년까지였다. 회사가 준 계약금은 50만원이었다.

그러나 댄스그룹을 유지하기엔 회사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데뷔 전후 약 3개월 간 있던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는 ‘프리매니저’라는 일용직원들로 교체됐다. 멤버들이 트레이닝을 요구했지만 회사 사정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3개월에 한 번씩 주기로 한 정산금이 밀려 정산 자료를 요구하자 “엑셀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몰라서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 돌아왔다.

비전도 수입도 없는 상황에서 연예활동을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멤버들은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김씨로부터 “그만둘 사람 있으면 얘기하라”는 말을 들은 다음날이었다.

김씨는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계약서에 ‘계약 위반시 녹음비·홍보비 등을 포함한 투자비용 전액의 3배를 배상해야 한다’는 문구를 내세우며 소송을 제기했다. 멤버들과 부모를 상대로 요구한 손해배상금은 3억8000만원이었다. 재판에선 “회사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실 임대료나 생활비 뿐만 아니라 차량비, 미용비, 홍보비 등 멤버들의 활동을 위한 비용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나머지 한 멤버는 회사에 남기로 했다.

━ 법원,"회사 지원 못 받아 계약해지 적법"

사건을 심리한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1부(부장 신혁재)는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멤버들의 의무이행 요구를 명시적으로 거절한 이상 멤버들로서는 전속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적법한 계약해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는 연예활동에 필요한 능력을 습득·향상할 만한 교육의무, 숙소·매니저 등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개인사업자에 불과하다는 사정만으로는 이같은 판단을 뒤집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멤버들을 대리한 임남택 법무법인 조율 변호사는 “전속계약기간 만료 전에 팀을 이탈하면 손해배상을 해야한다는 게 그동안의 판례였다”며 “이번 판결은 회사가 계약에 따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기간 내에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판단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선미·문현경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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