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받은 마을 후배 2명 교도소 안 암매장됐다가 발견"

2017. 10. 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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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돼야부렀죠, 3m 앞 거리에서 쏴분디."

1980년 5·18 때 광주교도소 앞에서 차량을 타고 가다 공수부대의 총격을 받고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승을(77)씨는 18일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군당국이 '광주사태 진상 조사' 결과를 통해 당시 광주교도소 안팎에서 민간인 2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는데도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희생자는 고규석씨 등 11명에 불과할 뿐 17명의 신원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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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21일 광주교도소 앞 공수부대 총격받고 살아난 이승을씨
5·18기념재단, 18일부터 암매장 추정 장소 교도소 현장 조사 시작
"3공수 부대원 추정장소 그린 약도와 시민 제보 바탕으로 확인"

[한겨레]

1980년 5·18 때 광주교도소 앞에서 공수부대의 차량 총격을 받고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승을씨가 18일 광주 자택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벌집 돼야부렀죠, 3m 앞 거리에서 쏴분디.”

1980년 5·18 때 광주교도소 앞에서 차량을 타고 가다 공수부대의 총격을 받고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승을(77)씨는 18일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80년 당시 전남 담양군 대덕면에 살던 이씨는 5월21일 벽지 등을 사러 광주에 가려고 지인의 ‘픽업 차량’을 빌렸다. 같은 마을 지인 3명이 각자 볼일을 보겠다고 따라나섰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폭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의 아버지 고규석(당시 37)씨도 차량에 동승했다. 하지만 이들은 5월21일 낮 옛 전남도청 앞 공수부대 집단발포로 광주가 뒤숭숭하자 서둘러 귀가하려고 담양으로 가는 고속도로와 국도가 있는 광주교도소 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군용차를 가로로 세워 길을 막아 놔 차를 세운게 공수부대가 총을 쏴불드마.”

이씨는 “다들 총을 맞고 쓰러졌는데, 나는 옷에 총구멍이 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당시 광주교도소 인근엔 3공수여단이 주둔 중이었다. 운전하던 고씨와 임은택(당시 35)씨가 사망했고, 박만천씨는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이씨는 20여m를 도망가다가 결국 공수부대원들에게 붙잡혀 교도소 정문 쪽으로 끌려갔다. “소령인가가 ‘다친 데 있느냐?’고 물어 ‘없다’고 했더니 ‘그냥 살려줘버려’라고 해 목숨을 건졌지요.” 이씨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5시간가량을 걸어 담양 집으로 돌아갔다.

숨진 이들의 주검이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10일 뒤인 5월31일께였다. 광주교도소 안에 암매장됐던 8명의 주검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고 임은택씨의 부인 최정희(70)씨는 “신발 한 짝을 보고 남편인 줄 알았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천불이 난다”고 말했다. 임씨 가족들은 광주 시내 병원을 다 돌고, 교도소 인근 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주검을 찾지 못하던 차였다. 최씨는 “시청에서 공수부대원들이 교도소 안에 묻어 놓고 간 것을 판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다쳤던 박만천씨는 후유증으로 1년여 만에 숨졌다.

군당국이 ‘광주사태 진상 조사’ 결과를 통해 당시 광주교도소 안팎에서 민간인 2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는데도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희생자는 고규석씨 등 11명에 불과할 뿐 17명의 신원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5·18기념재단은 이날 5·18 당시 암매장지로 추정되는 옛 광주교도소 터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옛 광주교도소는 교도소가 광주시 북구 일곡동 새 터로 이전한 뒤 빈 건물 등이 남아 있다. 법의학·법치의학·고고학 전문가들은 19일까지 현장 조사를 하면서 발굴 방법, 유해 확인 뒤 신원확인 절차 등을 논의한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3공수여단 부대원이 암매장 장소라고 작성한 약도와 교도소 암매장을 목격한 시민 1명의 제보를 토대로 암매장 추정 장소를 2곳 정도로 압축해 발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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