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공산당 전통인 집단지도체제 무너트렸다

박형기 중국 전문위원 2017. 10. 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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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중국 공산당의 전통이었던 집단지도체제를 무너트리고 '시진핑 1인 천하'를 열었다.

시 주석은 집권 1기에 왕치산(王岐山) 당기율위 서기를 동원, 반부패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정적을 완전히 제거하고 1인 독재 체제를 열었다.

시 주석은 반부패 캠페인으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한 뒤 공산당의 헌법인 당장에 '시진핑 사상' 또는 '시진핑 이론'을 삽입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권위를 더욱 높이는 한편 장기 집권도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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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대회당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 © AFP=뉴스1 © News1 최종일 기자

(서울=뉴스1) 박형기 중국 전문위원 =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중국 공산당의 전통이었던 집단지도체제를 무너트리고 ‘시진핑 1인 천하’를 열었다.

시 주석은 집권 1기에 왕치산(王岐山) 당기율위 서기를 동원, 반부패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정적을 완전히 제거하고 1인 독재 체제를 열었다.

반부패 캠페인은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 중국의 인민들에게도 큰 지지를 받았다. 중국 인민들은 공산당 고위 간부의 부패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시 주석은 반부패 캠페인으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한 뒤 공산당의 헌법인 당장에 ‘시진핑 사상’ 또는 ‘시진핑 이론’을 삽입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권위를 더욱 높이는 한편 장기 집권도 추구하고 있다.

이같은 그의 행보는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유지됐던 중국 공산당의 전통인 집단지도체제를 무너트리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개혁개방을 통해 단기간에 중국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시켰다. 그 원동력이 바로 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였다. 공산당이 독재를 하지만 공산당 내에서 어느 파벌도 독점적 지위를 누리지 못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의 원리가 작동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했기 때문에 무리한 정책이 아니라 합리적인 정책이 실행됐다. 바로 이것이 중국 공산당의 힘이었다.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한 것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이었다. 그는 공산 중국의 아버지 마오쩌둥(毛澤東)이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야기된 폐해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 창설자로 당내에 압도적인 권위를 행사했던 마오는 말년에 문화혁명을 추진했다. 문화혁명은 대참사였다. 이는 당내에 마오를 견제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중국은 10년 대동난의 시대를 보내야 했다. 덩 자신도 하방을 당했다.

이에 따라 덩샤오핑은 집권 이후 집단지도체제를 선택했다. 그는 권력이 집중된 당주석제를 폐지하고 총서기제도를 도입했다. 당주석은 정치국 상임위에서 안건이 올라오면 비토할 권한이 있었다. 그러나 총서기는 비토권이 없다.

그는 또 죽기 전에 후진타오(胡錦濤)까지 후계구도를 확정해 놓았다. 시진핑 현 주석은 덩샤오핑이 낙점하지 않은 최초의 후계자다. 그런 그가 덩샤오핑 이후 이어져온 공산당의 전통을 무너트리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질 경우, 중국의 또 다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을 혼란의 도가니에 빠트렸던 문화혁명은 마오쩌둥의 독주에 견제장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sino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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