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유리천장' 최고 두껍다

2017. 10. 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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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관리직 이상 성 격차 79%P… 미국 13%P·영국 29%P·독일 41%P

“말이 유리천장이지, 투명하지도 않아요, 그냥 쎄멘(시멘트)이지.”

‘유리천장’은 투명하게 천장 위편을 비쳐 보이면서도 위 아래의 오고감을 가로막는 역할은 충실히 한다. 여성 직장인이나 공무원이 승진에 한계가 있다는 현실을 가리킬 때 쓰이는 표현이다. 1년간의 육아휴직 후 직장에 복귀한 정모씨(35)는 한국에서는 ‘유리천장’이라는 표현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퇴사하는 여자 선배들마다 비슷한 얘길 해요. 진급 못해도 좋으니 웬만하면 회사를 쭉 다니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지금 아니면 애들이랑 같이 있어줄 시간도 없다고 생각하면 (직장과 가정 중에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정씨는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이 급할 때마다 육아에 바로 투입될 수 있기 때문에 한숨 돌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자신도 진급에 대해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은 3월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여성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여성 노동자들이 '유리천장 아웃(OUT)'이 적힌 우산을 들고 성평등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여성 직장인 지위·승진에서 찬밥신세

한국 직장여성들이 겪는 유리천장은 독특하다. 이달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성평등의 추구(The Pursuit of Gender Equality)’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관리직 이상에서의 고용에 관한 성 격차는 79%포인트(남성 89.5%-여성 10.5%)로 OECD 회원국들과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비교대상국 가운데서 가장 높았다. 여성 직장인의 관리직 이상 승진이 가로막혀 ‘유리천장’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두껍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성 격차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OECD 평균이 37.7%포인트이고, 미국 13.2%포인트, 영국 29.3%포인트, 독일 41.4%포인트인 점과 비교하면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가까운 일본이 관리직 이상에서의 성 격차가 75.2%포인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 한국과 비슷했다.

대체로 직장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승진 문제를 지적하면 여성 직장인이 직장에 들이는 시간이나 노력이 남성보다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반박이 돌아온다. 남성의 직장 내 노동시간이 여성보다 긴 것 역시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특히 한국의 노동환경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실제로 보고서에 따르면 주당 60시간 이상 일하는 남자 직장인의 비율을 보면 한국(26.3%)은 터키(27.5%)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여자 직장인이 주당 60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은 한국에서 17.6%였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남성이 더욱 심했다. 하지만 여성만 놓고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비율에서 한국 여성은 1위를 차지했다.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일하는 여성들이 가장 두꺼운 유리천장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보수가 지급되는 직장에서의 유급노동에 가사노동 등 보수를 받지 않는 무급노동 시간까지 더하면 한국 여성의 노동시간은 남성을 넘어선다.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연령대에서 한국의 남성은 유급·무급노동을 더해 하루 평균 467분을 일하는 데 비해 여성은 501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맞벌이 부부 가구로 한정하면 한국 여성은 가사노동의 88%를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나 62%를 담당하는 독일 여성과 적잖은 차이를 보였다. 바꿔 말하면 한국에서는 여성에게 부과되는 가사노동의 부담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직장에서 동료 남성과 경쟁하는 데에도 불리한 구도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무급 노동시간도 남성보다 길어

이러한 흐름은 유독 고학력 여성에서 두드러진다. 학력이 높은 여성이 일터에서 이전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는 추세는 세계적임에도, 보고서는 유독 한국만이 이 추세의 유일한 에외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전체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은 42.2%로 OECD 평균인 45.4%에 근접하고 있지만, 관리직 이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5%에 불과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보고서는 “한국의 고학력 여성은 어린 자녀를 낳고 돌보는 기간이 지난 뒤 보수가 높은 일자리로 돌아가기 어렵기 때문에, 보수가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감내하거나 그냥 전업주부로 남는 쪽을 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육아를 비롯한 복지 전반의 부재와 여성 일자리의 양극화가 유리천장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보고서가 지적하는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도 아니고, 남성이 여성의 앞길을 가로막는 문제도 아니다.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만연한 장시간 노동, 특히 가사노동에 참여할 수 없는 남성 직장인의 노동환경이 결과적으로 여성 직장인의 퇴사를 고민하게 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민정 연구원은 “남성이 생계부양을 한다는 논리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여성 노동자들을 2차적 노동자 지위로 강등시키는 한국 노동시장이 문제”라며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지원정책들은 그 실효성 측면에서 여전히 논란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여성들이 체감하는 노동시장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며, 일과 가정을 영위하면서 동시에 자아성취를 도모하기란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 같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정규직을 위한 정부 혹은 기업 차원의 복지정책을 마련해도 오히려 소외될 여지가 크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된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의 대책도 가사노동과 병행할 수 있는 단시간 노동 일자리에만 집중한 나머지 이들 일자리에서의 여성 노동자의 지위를 높이는 데엔 기여하지 못하면서 생산성 논란만 낳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를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육아휴직 활용 등을 더욱 자유롭게 해서 여성에게만 집중된 가사노동의 부담을 고르게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업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숙희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 등의 남성 육아휴직제 사례를 보면, 남성 육아휴직제도의 활성화가 남성 본인의 만족도 증가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에 대한 성별 분화 완화, 여성고용 촉진과 출산율 제고라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며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남성 육아휴직 할당제, 육아휴직 급여의 인상은 물론 이런 정책에 적극 동참하는 기업에 대한 우대제도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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