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은 왜 '호갱'이 됐나] ① 통신사에서 휴대전화 구매 강요당하는 소비자

임아영 기자 2017. 10.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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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왜 한국 통신 소비자들은 ‘호갱’(호구 고객)이라고 불릴까요.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단말기 개통과 통신서비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 때문인데요. 이통시장은 소비자가 구조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정보비대칭 시장입니다. 시장 구조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없으니 불신만 높아집니다. 왜 이통사는 단말기(휴대전화)를 판매하게 됐을까요. 통신비 인하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높고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는 선택약정할인율을 상향하고 취약계층 요금 감면폭을 늘리는 등 정책 수단을 쓰고 있지만 체감 효과는 낮습니다. 이제 갤럭시노트8 같은 프리미엄폰의 가격은 100만원을 넘어섰고 단말기 가격이 높아지다보니 통신비는 오히려 더 오르는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호갱이 되지 않으려면 이통사가 단말기와 통신서비스를 동시에 판매하는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비롯한 여러 방안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해결방법은 무엇일까요. ‘왜 한국 통신 소비자들은 호갱이 되었나’라는 3회차 기획으로 짚어보겠습니다.

■통신비는 통신비가 아니다?…왜 이통사는 단말기를 판매하게 됐나

우리가 매달 내는 통신 요금에는 단말기 할부금, 통신서비스 요금, 콘텐츠 비용이 섞여 있죠. 그런데 통신비가 높다 하면 다 이통사에 화살이 가는 구조입니다. 실제 소비자들은 내가 매달 내는 요금 중 단말기값 비중이 얼마이고 통신서비스 요금 비중이 얼마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이통3사가 단말기와 통신 서비스를 묶어 파는 구조 때문입니다. 물론 이통사 대리점에서 단말기도 구입하고 통신서비스도 개통할 수 있기 때문에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통3사가 이 불투명한 시장 구조에서 ‘고가 단말기+고가 요금제’를 유도했고 결과적으로 통신비가 높아졌다는 비판이 높습니다. 비싼 단말기를 쓰고 비싼 요금제를 써야 유리하니 소비자들이 ‘단말기 과소비+통신요금 과소비’를 하고 있는 상황인 거죠. 한국의 경우 휴대폰 이용자의 90% 이상이 이통사가 운영하는 대리점을 통해 단말기를 구매합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의 분석을 보면 지난해 한국의 자급제 비율은 8%로 세계 평균 61%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한국 소비자들이 단말기를 이통사 대리점에서 구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때문입니다. 한국은 칩 제조사인 퀄컴과 함께 CDMA를 2G에 도입하면서 가입자식별모듈(USIM)을 단말기에 내장시켜 ‘CDMA 단말기 규격’을 채택했고 기술적으로 단말기 구매와 통신서비스 가입을 한꺼번에 하도록 강제한 것이죠. 반면 유럽은 GSM 방식을 채택해 USIM와 단말기가 별도로 나와 처음부터 단말기와 통신서비스가 분리됐습니다. 한국의 경우 3G부터 단말기와 USIM이 분리됐습니다.

이통사들이 단말기 유통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은 각 휴대폰에 부여된 고유식별번호인 국제단말기인증번호(IMEI)를 이통사가 관리하게 한 ‘화이트리스트’ 제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단말기가 불법 유통되는 것을 막으려고 이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등 해외에서는 도난·분실 등 문제가 생긴 단말기의 IMEI만 따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습니다. ‘블랙리스트’ 제도인데요. 정부도 2012년 5월부터 블랙리스트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대리점이 아닌 타 유통망에서 구입한 단말기도 USIM을 삽입하면 통신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고착화된 이통사 중심의 유통 구조는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이통사들은 유통권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이죠. 삼성전자·LG전자 같은 제조사들도 고가 폰을 판매하는 정책이 유리하기 때문에 이 구조가 바뀌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통사들은 보조금, 대리점에 주는 리베이트를 무기로 쥐고 있습니다. 보조금 체계가 복잡하다보니 소비자들은 통신비 구조조차 한눈에 알기 어렵습니다. 이통3사가 전국 2만여개 대리점에 쓰는 마케팅 비용이 연간 7~8조원이나 되는데 이 비용은 고스란히 통신 요금에 반영된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이통사들이 대리점·판매점들에 판매 장려금을 차등 지급하면서 고가 요금제 가입을 유도한 게 밝혀졌죠. 그동안 고가 요금제 유도는 대리점의 정책일 뿐이라고 발뺌하던 이통사들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났는데요.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로부터 자료를 받아 SK텔레콤이 월2만9000원 이하의 저가요금제의 유치비율을 9% 이하로 유지하도록 목표치를 부여하고, 이를 넘길 경우 장려금 삭감 및 신규 단말기 물량 차등지급 등 제재를 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요금제와 부가서비스 가입을 일정기간 유지하지 못하면 수수료 정산 때 불이익을 주기도 했는데요. 장려금은 월정액 7만5900원인 ‘밴드 퍼펙트S’ 이상의 고가요금제에 집중됐습니다.

KT와 LG유플러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폰7 신규가입 기준으로 KT의 고가요금제(데이터선택 54.8 이상)와 저가요금제(데이터선택 54.8 미만) 사이의 장려금 격차는 최대 6만원이었습니다. LG유플러스는 요금제와 부가서비스 가입을 180일 이상 유지하지 않으면 장려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조건도 내걸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통사 관계자는 “비싼 차를 팔때 인센티브를 많이 주는 것처럼 고가요금제 유치가 늘수록 기대 수익이 높아지기 때문에 요금제 구간별로 차등 지급하고 있다”고 실토했죠.

■왜 공기계는 대리점보다 10% 비쌀까…“가격담합 말라”

물론 지금 우리도 삼성·LG전자 대리점이나 롯데 하이마트에서 공기계를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통사 대리점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10% 정도 비쌉니다. 녹색소비자연대는 7월 삼성전자와 애플 온라인스토어의 스마트폰 직접판매 가격이 이통3사가 판매하는 출고가보다 10% 비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갤럭시S8(64G)의 공식스토어 판매가격은 102만8000원으로, 이통3사의 출고가 93만5000원에 비해 9만30000원 비싸게 판매되고 있고 갤럭시S8+(64G)의 공식스토어 판매 가격도 108만9000원으로 이통사보다 9만9000원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녹소연은 “직접 판매하는 단말기는 이통사 대리점에 지불하는 판매장려금이 없기 때문에 미국처럼 저렴해야 정상인데, 한국에서는 이통사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가격담합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죠.

9월에는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갤럭시S8 ‘무약정 공기계(Unlocked Phone 언락폰·통신사 약정을 하지 않고 구입하는 휴대폰)’가 미국보다 20% 비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녹소연이 한국과 미국의 삼성전자 공식홈페이지에서 무약정 공기계 가격을 비교하니 한국은 102만8000원, 미국은 724.99달러(약 82만원)으로 20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중고폰 보상판매(최대 300달러)도 이뤄지고 있어 쓰던 중고폰으로 보상을 받으면 갤럭시S8의 실구매가는 424.99달러(48만원)까지 내려갑니다. 반면 한국은 포인트 적립 이외에 다른 보상 프로그램이 없고요.

윤문용 녹소연 ICT정책국장은 “휴대폰 가입자를 유치하는 통신사와 최신 스마트폰을 주기적으로 판매하는 제조사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무약정 공기계의 가격이 낮아지지 않고 있다”며 “출시 당시 가격은 차이가 없을 수 있지만 출시 후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소비자한테만 비합리적으로 비싸게 판매하는 이유에 대해서 삼성전자는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 한계…‘단말기+통신요금 과소비’ 상태를 해결하려면

정부는 불투명한 유통 구조를 해결해보겠다며 2014년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이통사가 단말기와 통신서비스를 묶어 파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어떤 정책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단통법은 통신사들에 요금제별 지원금 공시 의무를 줬고, 저가 요금제에도 지원금을 주도록 강제했습니다. 보조금으로 소비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요. 정부는 이렇게 하면 제조사들이 단말기 가격 경쟁을 하고 통신사들은 요금 경쟁을 할 것이라고 봤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새 정부 들어 선택약정할인율을 25%로 상향하고 취약계층에게 1만1000원 요금 할인을 추가하는 등 통신비 인하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오히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8과 애플 아이폰8 등이 출고가 100만원을 넘기면서 통신요금이 내려간 것을 체감하기는 쉽지 않아졌습니다. 최근 단말기 구매와 통신서비스 가입을 분리하는 ‘단말기 완전 자급제’ 논의가 한창입니다. 자급제는 소비자가 이통사를 통하지 않고 대형 마트나 쇼핑몰에서 직접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통신 서비스는 이통사에서 하는 방식입니다. 2회에서는 ‘단말기 완전 자급제’는 실효성이 있을지 짚어보겠습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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