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th W페스타]'최인아 책방' 마님 "내 인생의 화양연화"

김재은 2017. 10. 18.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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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특별강연)
나만의 방식 공감가고 믿을 만 하게
제일기획 부사장에서 책방 마님이 되기까지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부러우면 감당하라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현 최인아책방 대표) 인터뷰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화려하진 않지만 충분히 공감가고 믿을 만하다. 남들이 다 하는 방식 말고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설득하는 것. 사람들은 나를 컨셉츄얼리스트라고 불렀다.”

가을바람이 살랑부는 9월의 끝자락에 최인아 책방의 마님 최인아 대표를 만났다. 선릉역 인근 4층에 자리잡은 최인아 책방은 듣던대로 매우 우아하고, 앤틱하며, 분위기있었다. 높은 천장에 샹들리에, 벽면을 빼곡히 채운 책 냄새까지. 인터뷰고 뭐고 그냥 앉아서 책 한권 읽고 싶어졌다.

왜 책방이었을까. 많은 일중에 책방을 차린 이유가 궁금했다.

“책과 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제일 좋아하는 건 사실이에요. 내가 좋아하지만 나 혼자 재미있다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싶었죠. 안 해봤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 그게 바로 책방이었죠.”

1999년 시카고 출장에서 카페, 지하철역 등 잘 보이는 곳에 ‘앵무새 죽이기’ 책을 진열해놓고 온 도시가 좋은 책을 같이 읽자는 ‘원시티 원북’ 캠페인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몇 년전 제일기획을 관두고 나니 동네 조그만 공간에서 책과 함께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얘기할 곳을 그려보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그녀 인생 점점이 책방을 향해 있었고, 어느 순간 선으로 이어지며 책방이 됐다고.

“우아한 백조에요. 남들이 보기엔 근사해 보이지만, 물밑에선 끊임없이 물질을 하고 있죠. ‘좋다’고 하기까지 안쪽에서 해야 하는 수고들이 굉장히 많아요. 내 뜻을 지키면서 사는데 필요한 수고죠.”

늘 그래왔다. 에고(Ego·자아)가 굉장히 강하고 많다는 그는 언제나 ‘내압(內壓)’을 따른다. 남들이 다 하는 방식 말고, 나만의 방식으로, 내 안에 무언가가 차올라 터져나올때 혹은 대번에 꽂혔을 때 실행에 나섰다.

삼성그룹 최초 여성 상무 6년차 무렵 ‘늙는다’는 불안을 느꼈다.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월급받는 재미로 멍텅하게 보내는 것은 아니다고. 퇴사할 때엔 다시는 일하지 않겠다, 학생으로 살겠다 다짐했다. 여행도 다니고, 대학원에서 공부도 했지만, 2년쯤 지나 해독이 되니 다시 일하고 싶어졌다.

최인아 책방을 연 지 1년여. 월급은 못 가져가지만, 적자는 안 보고 그럭저럭 운영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또 일을 벌렸다.

인터뷰 도중 아랫층 공사소리가 시끄럽지 않냐던 최 대표는 “새로 시작하는 게 두 가지 있다”고 고백했다.

매달 후배들에게 좋은 책 한권을 골라 소개하는 것을 확장해 아예 최인아 책방 북클럽을 만든다고 했다. 멤버십으로 6개월, 1년 신청을 받아 매달 책을 골라 긴 레터를 쓰고 배송하는 형식이다. 그저 책방 마님 최인아의 안목을 믿고 맡기는 셈이다.

두번째는 공사중인 3층에 ‘멤버십 서재’를 만들 계획이다. 월차를 낸 어느 날 멀리 갈 기운은 없고 집에 있긴 싫고, 동네 스타벅스는 너무 시끄러울 때 그럴 때 찾으면 좋은 곳이다. 편안하게 호젓하게 멍때리다 책을 읽기도 하고, 사갈 수도 있다. 음료와 라이트밀도 제공한다. 멤버십 서재는 11월 중순쯤 선보인다.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현 최인아책방 대표) 인터뷰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생각의 숲을 이루다’는 모토의 최인아 책방. 책 분류도 여느 서점과 달리 최인아 대표가 직접 분류한 12가지 세션엔 다양한 책들이 자리한다.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인 그대에게’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우리 사회가 나아지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마흔살들에게’ ‘스트레스, 무기력, 번아웃(Burn out)이라 느낄 때’ ‘돈이 전부가 아니다, 괜찮은 삶을 살고 싶다!!’ 등이다.

책방 한 켠엔 지인들이 꼽은 ‘내 인생의 책’이 가나다 순으로 진열돼 있다. 책방 마님의 인생의 책은 뭘까?

그는 마흔 중반쯤 만난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를 꼽았다. “프랑스 언론인인 필자가 은퇴하고 나서 실크로드 서쪽에서 동쪽까지 1만2000km를 4년여에 걸쳐 걷고 또 걸은 얘기에요. 400~500페이지의 3권짜리 책인데, 은퇴가 그냥 찌그러지는게 아니구나 싶었죠. 보통 은퇴하면 돈 걱정만 해요. 그러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도 중요하죠. 통찰력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지금껏 인생 최고의 장면을 묻자 1초도 안 돼 “2012년 12월 6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일기획을 그만 둘 때다. 보통 임원들은 ‘내일부터 나오지 마’ 하면 죄인들마냥 사라지는 게 싫었다. 짐도 비서가 챙겨 보내주고, 환송회도 회사 밖에서 하든지 말든지였다. 누군가에겐 임원이 꿈일 수 있는데,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에도 근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해 여름쯤 회사를 관두겠다고 얘기했다. 환송회가 열리는 직원식당에 모인 몇 백명 직원들은 동영상도 준비했다. 좋은 일 있을 때 허그하는 서양 문화가 부러웠다는 그녀를 수백명의 직원들은 장미꽃을 하나하나 건네며 안아줬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오늘이 내 인생에 화양연화(꽃처럼 아름다운 시절)다.”

내향적이지만 강한 에너지의 최인아 대표. 일과 삶의 밸런스를 찾기보다 일과 나, 세상과 자신의 밸런스를 찾으려고 했고, 나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고. 지름길을 찾기보다 이 길이 제대로 맞는 길인지 묻고 또 물으며 애써왔다.

“요새는 반(反)시대인 것 같아요. 희망이 좌절되고, 삐딱하게 보고, 부정하고…. 그래도 열심히 하자고 하면 꼰대가 되는 것 같고. 그러나 노력해도 안 된다고 부정할 게 아니라 일이 무엇인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아는 게 필요해요. 찬찬히 나를 지키며 일하는 거죠. 또 하나는 부러우면 감당해야 해요. 그저 부러워하면 지는 거죠. 수고를 안 하고 취하고 싶겠지만, 세상에 그런 일은 절대 없어요.”

내 안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온 최인아 대표는 10월 25일 반포 세빛섬에서 열리는 제 6회 이데일리 W페스타에 선다. 에피소드(특별강연)를 통해 최인아만의 철학과 경험을 공유한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W페스타 홈페이지(www.wwef.or.kr)를 참고하면 된다.

△최인아 대표는…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제일기획에서 내로라하는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20여년을 지냈다. 삼성그룹 최초 여성 상무, 전무, 부사장의 타이틀을 뒤로 하고 1년여전 최인아책방을 열었다. 단순한 책방이상의 문화공간을 지향하는 그가 들려주는, ‘생각의 숲’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김재은 (alad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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