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말못해" 암도 서러운데 실직공포까지 덮친 암환자들

김선영 2017. 10. 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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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생존자 150만명 시대, 암환자 현주소
대부분 치료 기간에는 일 중단
치료 후 43% 일자리 다시 갖지 못해
'암 환자 업무 능력 떨어진다' 편견 팽배
직장맘 환자는 회사·가정 편견 이중고
미국, 암환자 장애인 수준 혜택
"사회 인식 개선하고 고용 지원책 마련해야"

윤모(49·충남 천안시)씨는 지난 5월 배가 계속 아팠지만 무시하다 참을 수 없을만큼 통증이 와서 동네 병원에 갔다. 거기서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대장암(직장암) 3기였다. 곧바로 방사선 치료 후 수술을 받았다. 현재 장루(인공항문) 주머니를 차고 있으며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다. 윤씨는 암 못지 않게 생계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 그는 10여 년 인터폰 설치기사로 일했다. 암 진단 후 일을 중단했다. 일을 알선하는 업체에 "다른 일을 한다"며 암 발병 사실을 숨겼다. 가족 외 거의 알리지 않았다. 그는 아직까지 적금과 실손보험금으로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한다. 잔고가 바닥나기 직전이다. 윤씨는 "내가 암에 걸리기 전에 비해 일을 제대로 못할 것이라고 여겨 업체가 일을 안 줄까봐 불안하다"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일을 못하게 돼 조바심이 난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청년일자리센터에서 유방암 환자가 구직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암 경험자들은 사회적 편견, 체력적 한계 때문에 직장 복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문규 기자
암 치료 중이거나 끝난 사람들이 실직 공포와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암 치료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암 생존율이 70%를 넘었다. 암에 걸려도 3명 중 2명은 5년 이상 생존한다. 2015년 기준으로 암 생존자가 146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암 치료 중이거나 치료 후 경제난에 부닥친다.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입원하거나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주기적으로 오가야 해 직장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탈모·위장장애·통증 등 치료 후유증이라도 생기면 몸을 챙기느라 생업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박종혁 충북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암 생존자가 계속 늘고 있지만 복직과 구직의 장벽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암경험자가 일자리를 잃었을까.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센터 윤영호 교수팀이 2014년 폐암 경험자 829명의 암 발병 전후 고용 변화를 조사했더니 43%가 직장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암이 발병하기 전에는 569명(68.6%)이 직장생활을 했다. 암 치료 후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322명으로 줄었다. 직장을 갖고 있던 사람의 43%가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궁경부암 경험자도 사정이 비슷하다. 서울대병원·국립암센터·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 연구진이 2013년 자궁경부암 치료를 마친 858명의 취업 상태를 분석했다. 그 결과, 발병 전 424명(49.4%)이 일을 했지만 치료를 마친 후에는 233명으로 줄었다. 윤영호 교수는 “기업이 중병에 걸린 직원을 복직시키지 않거나 반기지 않은 데가 많다"며 "암 환자도 치료 후 체력과 신체 기능이 떨어져 직장 복귀에 한계를 보인다”고 진단했다.

회사가 대놓고 사직을 종용하기도 한다. 한 백혈병 환자는 환자협회 홈페이지 상담 코너에 이렇게 하소연했다. “저는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입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가끔 얼굴에 부종이 생기는 것 말고는 큰 무리 없이 직장에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직장 상사가 부은 얼굴을 보더니 아픈 사람에게 일 시키기 힘들다며 권고휴직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저는 17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병을 앓게 된 것도 서러운데 직장생활까지 그만두면 정말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요.”(호서대 사회복지학부 이인정 교수 발표 논문)

암 경험자는 '업무 능력이 떨어지고 성과가 좋지 않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편견 때문에 원활한 직장생활이 힘들다. [중앙포토]
암 경험자의 사회복귀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부정적인 시선이다. 특히 업무 능력 불신이 팽배하다. 충북대병원·국립암센터가 지난해 일반인 2000명을 설문조사 했다. '통증으로 직업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질문에 대해 70.4%가 동의했다. 또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져 업무성과가 좋지 않을 것’(60.9%), ‘암 경험자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할 것’(55.3%) 이라고 답했다. 서울대병원 의료사회복지팀 이민경 사회복지사는 “암을 극복했다는 사실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지만 구직할 때는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암 환자들은 편견이 무서워 병력을 떳떳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기업은 재발 우려 때문에 선뜻 채용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워킹맘 암 경험자는 직장과 가정에서 이중고에 시달린다. 워킹맘 김모(44·여·경기 수원시)씨는 지난 4월 유방암 1기 진단을 받았다. 부분 절제 수술을 받은 후 5개월 만에 복직했다. 전보다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더 열심히 일했다. 집에서도 종전처럼 아내와 엄마 역할을 빈틈없이 한다. 그렇지만 김씨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치료 후유증 때문이다. 김씨는 유방암 치료의 일환으로 항호르몬제를 복용하고 배란억제제 주사를 맞고 있다. 체내 호르몬 균형이 깨지면서 체온 변화·감정 기복 같은 갱년기 증상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는 “일상 생활을 똑같이 하기 때문에 힘든 점을 주변에서 잘 모른다”며 “심지어 가족조차 가사 일을 분담하지 않는다. 내가 배려해줘야 할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은 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암 환자들은 항암 및 방사선 치료 때문에 체력적 부담이 커 직업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중앙포토]
암이 중할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게 일을 위협한다. 5년 전 유방암 4기 판정을 받은 이모(30·여·경기 군포시)씨가 그렇다. 1년 2개월간 휴직한 상태에서 수술·방사선·항암 등 1차 치료를 받은 후 복직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암 세포가 뼈에 전이됐고 직장생활을 포기했다. 외근·야근이 잦아 몸이 버티질 못했다. 체력 부담이 덜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두 달 후 간·폐에 암세포가 전이돼 퇴사했다. 일상생활이 가능해 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번엔 부작용이 발목을 잡았다. 손이 부어 3주 만에 그만뒀다. 이씨는 “일을 하지 않으니 자괴감이 심해진다”며 “기존 업무 대신 체력 부담이 적은 다른 직종을 찾고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암 경험자의 직업재활이나 직업훈련, 구직 정보 제공 시스템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미국의 경우 암환자가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다. 김영애 국립암센터 암생존자지원과장은 “암 경험자의 직업 복귀 대책이 좀 더 필요하다”며 “암환자 자체가 낙인처럼 돼 있는 사회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 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 훈련, 취업 상담 등 고용 지원책을 늘릴 필요가 있다.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암경험자가 수월하게 직장으로 복귀하려면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막연한 불안감을 다스리고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로 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미선 아주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암통합지지센터장)는 “환자에게 닥친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맞춤 전략을 짜야 한다”며 “체중이 많이 빠진 환자는 영양 상담을, 정서적 안정이 필요한 환자는 심리치료를,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한 환자는 정신과 상담을, 구직 고민이 큰 환자는 취업 상담을 연결해줘 어려운 점을 덜어줘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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