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저잣거리에 빈 점포수 '0'이라니, 비결이 궁금하다

양보라 2017. 10. 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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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농임산물 파는 정선아리랑시장
특산품·향토음식 내세워 위기 극복
청량리역~정선역 구간 기차여행도 즐길 수 있어
━ 시장에서 놀자② 정선아리랑시장 강원도 정선은 첩첩이 험한 산으로 둘린 산골이다. 면적 1219㎢에 이르는 정선 땅의 86%는 산지인지라 ‘정선의 하늘은 세 치’라는 옛말이 절로 공감된다. 이런 풍경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들 정선이 고요하고 심심한 벽촌일 것이라 오해한다. 하지만 1966년 상설시장으로 개장한 전통시장인 ‘정선아리랑시장’을 찾으면 정선에 대한 편견이 단박에 깨진다. 해마다 정선 인구(약 3만8000명)의 20배 가까운 방문객에 밀려드는 저잣거리에는 시장 특유의 활력이 가득하다. 정선의 특산품을 쇼핑하고 강원도 향토 음식을 맛보며 신바람 나는 한나절을 보낼 수 있는 시장 놀이법을 소개한다.
강원도 정선의 정선아리랑시장. 수리취·곤드레 등 30여 가지 산나물을 살 수 있는 재래시장이다.
연중무휴지만 오일장이 더 재미나
한해 60만~70만 명이 방문하는 정선아리랑시장. 오일장이 열리는 날 저잣거리는 더욱 북적인다.
정선아리랑시장은 조선 시대부터 날짜 끝에 2·7자가 들어가는 날만 열리는 오일장이었다. 365일 문 닫는 날이 없는 연중무휴 상설시장으로 바뀐 해는 1966년이다. 하지만 오일장 전통이 여전히 남아있어 복작복작한 시장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려면 장날에 맞춰 방문하는 게 좋다. 지난 10월 12일 추석 대목을 치른 후 첫 오일장이 열린 정선아리랑시장을 찾았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평일(목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금요일 저녁 대형 마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붐볐다. “주말이 겹친 장날에는 뒷사람에게 떠밀려 걸어야 하드래요. 왜 이렇게 사람이 많냐는 불만도 나온다니까요. ” 시장에서 만난 정선아리랑시장 상인회 이윤광(58) 회장의 엄살은 뿌듯함이 담긴 자랑으로 들렸다. 재래시장이 단지 지역민뿐만이 아니라 외국인까지 찾아오는 명소가 된 것은 우연한 결과는 아니었을 터. 이 회장은 철저히 "정선다운" 시장을 만든 게 흥행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정선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 정선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거리가 가득한 시장을 추구했다는 얘기다.
한국형 파머스마켓
나물과 버섯 등 정선 특산물을 시식할 수 있는 정선아리랑시장.
이 회장의 말을 듣고 보니, 매대 품목은 정선 특산물인 산나물과 약초가 주를 이뤘다. 봄에 따서 말려 놓은 곤드레, 삼계탕에 꼭 들어간다는 약초 황기, 가을 수확이 한창인 더덕이 가득했다. 시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시식용으로 나온 향긋한 나물 무침, 표고버섯 볶음 등 콕콕 찍어먹으며 시장 구경을 즐겼다. 현재 시장에는 175개 점포가 있는데, 주인을 잃고 파리가 날리는 빈 점포수는 ‘0’개다. 상설 점포뿐만 아니라 장날이 되면 자신이 채취한 나물 등을 파는 노점이 저잣거리를 따라 들어선다. 정선아리랑시장에 새로 노점을 벌이려면 정선군민이어야 하고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이나 산에서 채취한 임산물만 팔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외부에서 들여와야 하는 해산물·육류, 그리고 공산품 등은 철저히 배제하고 정선 특산물로 특화하려는 정선아리랑시장이야 말로 우리식 ‘파머스마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토불이증이 뭐냐면
정선군이 국산품만 취급한다고 인증한 신토불이 상인. 정선아리랑시장에서 이 '신토불이증'을 목에 걸고 영업한다.
시장에 점포를 갖고 있는 상인 중 120명은 특별히 ‘신토불이증’을 목에 걸고 장사를 한다. 정선군에서 국산품만 판매하는 상인으로 보장한 사람들이다. 친절 교육까지 받은 신토불이 상인들은 강원도 사람들은 무뚝뚝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 줄만큼 객지 손님들을 환대해준다. 도시민의 눈에 익숙하지 않은 약초며 나물을 물어보면 “이것은 갓, 저것은 취나물”이라고 설명해줬고 “황기는 잔뿌리가 많은 것을 골라야 하고 곤드레는 줄기를 제거한 것을 사야 요리해먹기 좋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었다. 곤드레 나물은 600g 한 봉지에 1만원 선. 밥에 넣어 쪄먹어볼 생각으로 냉큼 질렀다.
면발에 탄력이 넘치는 콧등치기국수. 강원도 향토 음식이다.
시식만으로는 헛헛해 먹거리를 찾아다녔다. 시장에는 음식점이 70군데 있는데 전국 어디서나 흔한 떡볶이나 김밥을 파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대부분의 식당의 주력 메뉴는 올챙이국수(옥수수묵국수)나 콧등치기국수(메밀국수) 등 재밌는 이름이 달린 강원도 향토 음식이다. 정선황기막국수(곤드레밥 6000원)와 명선집(콧등치기국수 5000원), 회동집(메밀전병 5000원)등은 시장 상인도 찾아가서 먹는다는 맛집으로 추천받았다. 식당마다 길게 줄이 늘어서 있어 허기를 참지 못하고 노점 식당으로 향했다. ‘쫄깃쫄깃함이 가위 콧등을 칠 만하다’는 콧등치기국수를 후루룩 삼켰다. 강원도에서 난 식재료로 단순하게 조리한 국수는 풋풋한 맛이었다.
가는 길도 여행이다
청량리역과 아우라지역을 잇는 정선아리랑열차.
정선아리랑시장에서 만난 정선군 가이드 권인숙(58)씨는 “정선아리랑시장도 원래 부산의 깡통시장처럼 온갖 생필품을 파는 시장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현재 정선 인구는 4만 명도 채 되지 않지만 석탄산업 부흥기었던 70년대만 해도 인구가 14만 명 정도 됐죠. 강아지도 1만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만큼 돈이 흘러넘치는 고장이었어요. 정선아리랑시장은 산골짜기 흩어져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장날마다 만나는 만남의 광장이자, 옷가지며 장신구까지 살 수 있는 쇼핑 특구였어요.” 정선아리랑시장은 정선 경제를 떠받들던 석탄 산업이 기울면서부터 덩달아 위기를 맞았다. 여느 재래시장은 주변 대형 마트가 손님을 빨아들이면서 고전했지만, 정선은 인구 공동화 현상으로 애를 먹었다. 설상가상 2001년 정선선 철로의 기차 운행도 종료됐다.
꼬마열차 운행 정선군과 시장 상인회가 시장을 재생하자고 발 벗고 나선 때는 1999년이었다. 무색무취했던 시장을 ‘정선스러운’ 시장으로 바꾸고, 외부 여행객을 끌어오기 위해 증산역(지금의 민둥산역)에서 정선역까지 이어지는 꼬마열차를 개설했다. 무궁화호 1량짜리 꼬마열차는 장날마다 증산역에서 정선역까지 부지런히 사람들을 태웠고, 철도 마니아와 여행객을 정선아리랑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새마을호 특실을 개조해 만든 정선아리랑열차.
유리창이 달려 있어 바깥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정선아리랑열차.
장날마다 운행하던 정선역 꼬마열차를 전신으로 하는 열차가 2015년 개통한 관광열차 ‘정선아리랑열차’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아우라지역까지 253.1㎞를 운행하며 중앙선~태백선~정선선을 차례로 지난다. 월요일·화요일을 제외하고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왕복 1회 운행하는데, 정선아리랑시장 오일장이 열리는 날과 겹치는 월요일·화요일에는 특별 운행한다. 주말에는 정선으로 향하는 여행객으로 꽉 들어차 빈자리를 찾을 수 없는 인기 열차이기도 하다.
열차 카페 칸에서 풍경 구경 정선아리랑열차를 타고 정선아리랑시장으로 떠나는 여정은 그 자체를 여행으로 즐기기에 충분했다. 카페 칸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커다란 창문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강원도의 산세를 구경했다. 기차는 정선역에 다다르기 전 선평역에서 10분간 정차하는데, 열차가 멈추는 때에 맞춰 간이역에 마련되는 깜짝 장터에서 옥수수 막걸리도 한 모금 마셨다. 기차는 예미역에 들어서자 속도를 낮춰 민둥산역까지 저속 운행했다. 울긋불긋하게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 민둥산 절경이 펼쳐지자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바빴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민둥산.
정선역에서 내려 쉬엄쉬엄 걷다보니 15분 만에 정선아리랑시장에 닿았다. 정선아리랑시장 동문과 남문 사이 공연장에서 때마침 풍물패 공연이 열렸다. 어르신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자리를 잡고 앉아 들썩거렸다. 볼거리·먹을거리·즐길거리를 갖춘 시장, 한해 65만~70만 명이 방문하는 여행 명소 자리매김한 정선아리랑시장의 저력이 이것이구나 싶었다.
정선아리랑시장에서는 장날과 주말에 문화 공연이 열린다.
◇여행정보=정선아리랑시장은 상설시장으로 연중무휴다. 날짜 끝자리가 2·7일로 끝나는 날엔 노점이 크게 느는 오일장이 열린다. 상설 점포는 카드 결제가 자유롭지만 노점은 현금만 받는 곳이 많다. 정선아리랑열차는 수~일요일, 정선아리랑 오일장이 열리는 날 운행한다. 청량리역을 오전 8시 20분 출발해서 정선역에 오후 12시 6분 닿는다. 복편은 정선역에서 오후 5시 37분 출발, 오후 9시 33분 청량리역에 닿는다. 편도 2만7600원. 정선아리랑열차에 동승한 가이드를 통해 정선시티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정선역에서 출발해 정선아리랑시장·정선아리랑박물관·화암동굴 등 정선 여행 명소를 들른다. 어른 1만원, 어린이 5000원.

정선=글·사진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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