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여행은 나를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박지종 입력 2017.10.1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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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지종 기자]

나는 과연 나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이 철학적인 질문을 우리는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그리고 답은 분명 부정적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에서의 삶 속에는 나보다 남이 더 많은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예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주변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기에 입고 싶은 옷도 마음대로 못 입는다. 남의 눈치를 봐야 하기에 음식도 다 똑같이 통일해서 시켜야 한다. 심지어 학창시절에는 내 마음대로 머리모양 하나 정할수가 없다. 인간이 로켓을 재활용하는 이 어마어마한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두발제한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 인터넷에 이런 질문이 올라온 적이 있다.

'신입 사원인데 외제차를 몰고 다녀도 될까요?'

아무래도 신기한 일이다. 내가 능력이 있고, 돈이 있고, 외제차를 몰고 다닐 여유가 있다면 그냥 몰고 다니면 될 것인데, 한국에서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눈치를 봐야만 하는 문화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인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주변의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 일상이다. 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둘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뭐하는 사람인지, 스펙은 어떻게 되는지, 벌이는 어떤지, 외모에 학벌에 이런 세부조건을 따지면서 연인을 평가한다. 내게 연인은 어떤 존재인지보다 남이 연인을 어떻게 판단하는지가 중요해져 버리는 것은 이런 일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심지어는 주변의 판단기준을 그대로 가져와 자신의 연인을 재단하기도 한다.

'아... 사람은 좋은데 비전이 좀 없나...?'
'아... 진짜 좋은 사람인데 벌이가 좀 적나...?'
'아... 괜찮은 사람인데 결혼하기에는 좀 그런가?'

세상에서 가장 개인적인 일인 사랑도 남의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 우리는 나보다는 남이 더 중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내 삶을 남이 좌지우지 하게 된다. 그 남은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어느새 내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남의 삶을 사는 이상, 행복은 요원하다. 나의 행복이 아니라 남의 행복을 위해서 살고, 나의 만족이 아니라 남의 만족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 행복하고 만족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것이 되지 않고, 내가 행복하고 만족하는 것은 남에게 질타를 받거나 무시당하기 일 수다. 그러니 삶이 아프고, 고통스럽다.

여행은 이런 우리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려준다. 여행 중에는 스스로 모든 것을 정해야만 한다. 어디서 잘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지, 오늘은 무엇을 할지가 모두 나의 결정에 달려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입지 않을 옷을 입어도 되고, 풀메이크업은 개나 줘버리라며 당당한 생얼 타임을 갖기도 한다. 씻기 싫으면 씻지 않아도 되고, 민망해서 입지 못했던 비키니도 당당하게 입을 수 있다. 여행에서는 내 삶을 가로채려는 남이 없다.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여행자들은 내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어떤 직장에서 일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즐기는지,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지를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변이 내 주변의 무언가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내가 좀 더 '나'다워지게 된다.

물론 여행에서도 남의 눈치를 봐야할 때가 있다. 여행하다 만난 동행에 의해 휩쓸리는 경우도 흔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는 간단하게 동행을 그만 둘 수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관계는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끊어 낼 수가 없다. 그러나 여행 중에는 그냥 끊으면 된다. 동행을 중단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여행을 이어나가면 될 뿐이다. 동행을 멈출 것인지, 아니면 눈치를 좀 보더라도 함께 할 것인지까지도 오롯이 나의 선택일 뿐이다. 이렇게 여행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그리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용기도 함께 준다.

 그 덕에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나'를 좌지우지 하는 내 삶의 연출자가 되고 동시에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남이 지워지고 내가 드러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 pixabay
그 덕에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나'를 좌지우지 하는 내 삶의 연출자가 되고 동시에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남이 지워지고 내가 드러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이 좋지 않았더라도, 여행이 좋았더라도, 여행이 힘들었더라도, 여행이 편안했더라도 상관없다. 내가 주인공인 영화가 액션일 수도, 코미디일 수도, 드라마일 수도, 로맨스일 수도, 심지어는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건 적어도 여행하는 중에 내 삶이란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주연한 여행이 끝나고 난 뒤에 더 이상 내 삶에서 내가 조연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주인공이 된 경험이 그것을 쉽게 허락할리가 없으니까.

여행은 내 삶에서 남을 지운다. 그렇게 내 중심의 삶이, 내가 주연인 삶을 만들어 낸다. 자기를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여행이란 나를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여정이 되어 줄 것이다.